GPT를 떠나 손끝에 머무는 생각들

GPT를 끄고, 나를 켜는 일

by 디자이너 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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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GPT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업무도, 일상의 소소한 호기심도, 복잡한 개념까지도 어느새 그에게 묻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오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듯.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모순 같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정보를 더 많이 얻게 되었고, 표현도 유려해졌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떠돌고 있었다. 생각은 점점 많아지는데, 그 생각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점점 더 흐려졌다.


정보는 넘치는데 방향이 없었고, 답은 많아졌는데 질문은 오히려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 그럴 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빽빽해졌고, 그 안에서 나는 길을 잃은 탐험가처럼 헤매고 있었다. GPT는 언제나 빠르게 내 질문에 답을 해주었지만, 그 속도에 휩쓸려 나의 질문은 점점 더 얕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멈춰섰다. GPT는 문서를 요약하고 개념을 정리하는 데는 정말 탁월하지만, 내 안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감정과 기억, 고민을 꿰어주는 데에는 어쩌면 무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로 필요했던 건 정보가 아니라 '정리'였고, 그 정리는 결국 나의 손끝에서만 시작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이패드를 펼치며 떠올린 장면 하나


그래서 그날, 나는 GPT를 로그아웃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아이패드를 꺼냈다. 손글씨 노트 앱을 열자마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순간, 새벽 공기의 결이 떠올랐다. 아직 도시가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시간, 커튼 틈으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햇살, 먼지가 부유하는 고요한 방 안.


그날의 나처럼, 과거의 나도 생각이 많았다. 혼란스러운 감정들로 속이 뒤엉켰던 시절, 나는 조용히 노트를 펼쳤다. 활자로는 다 옮기지 못할 마음들을, 키워드 하나하나로 눌러 적던 시간들. 문장이 되지 않아도 좋았고, 맞춤법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돈된 글이 아니라, 내면의 가장자리에서 맴도는 속삭임 같은 것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복잡함", "불안", "의존", "정체성", "속도", "깊이", "침묵"... 마치 고요한 호수에 조심스레 조약돌을 던지는 것처럼. 단어 하나가 수면 위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 잔물결이 내면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는 듯한 감각. 키워드는 기억을 깨우고, 감정을 어루만지며, 오래된 나의 문을 다시 열어주었다.


나는 단어 하나하나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몇 분이고 바라보기도 했고, 낙서처럼 곁에 다른 단어를 붙여가며 그 단어의 온도를 느껴보기도 했다. 단어는 곧 감각이었고, 그 감각은 나를 내면의 방으로 이끌었다. 그 방은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조용하고 따뜻한 장소였다.



속도와 연결, 그 사이의 균형


나는 GPT를 사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세계를 더 확장시켜주는 그 능력을 사랑한다. 모호했던 생각이 명료해지고, 표현할 수 없던 감정이 언어를 갖게 된다. 이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도와 정확함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나의 '느림'과 '흐릿함'을 점점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고민하는 시간, 어설프게 끄적이는 문장, 완성하지 못한 채 멈춰 있는 생각들. 그것들이 점점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건 참 아픈 일이었다. 내가 디자이너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긴 감각은 바로 '흐릿한 것에 머무는 능력'이었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효율적인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그 흐릿함 속에서 무언가를 직조해왔고, 그 모호함 속에서 새로운 형태를 발견해왔었는데...


GPT는 분명 나를 더 빠르고 유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속도에 익숙해질수록 나의 감각은 서서히 희미해졌다.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다 숨이 턱 막혀 멈춰선 순간,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감각처럼 내 안의 리듬은 어긋났고, 중심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 속도는 마치 터널을 지날 때 창밖 풍경이 선처럼 스쳐 지나가는 느낌과 닮았다. 분명 무언가를 지나고 있지만, 무엇을 봤는지는 남지 않는 것 처럼... 빠른 속도는 도착을 앞당겨주지만, 여정의 온기와 결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여정을 다시 느끼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시 키워드, 다시 나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끔, GPT를 로그아웃한다. 그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사랑하고 여백의 온기를 간직하고 싶어서. 그리고 다시 키워드를 쓴다. 그건 회복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내면", "지연", "여백", "기다림", "관계", "물성", "손끝"...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속 어디선가 숨죽이고 있던 감정을 건드린다. 그렇게 적고 나면, 마치 잊고 지냈던 나의 얼굴을 다시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표정의 나.


어떤 단어는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지연"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떠오른 장면, 오래전 친구와의 대화, 아직 끝맺지 못한 질문들. 키워드는 마치 내 기억의 문을 하나하나 두드리는 열쇠 같다. 잊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거기 있었다.


여전히 생각은 많고 머리는 복잡하지만, 그 복잡함이 나라는 사람의 지층임을, 그리고 그 지층 속에는 여전히 단단한 무엇이 존재함을 확인하게 된다. 키워드는 나에게 다시금 '나만의 언어'를 되찾게 해준다. 그것은 어쩌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비밀 정원을 걷는 일 같기도 하다.

그 정원은 아무도 함부로 밟을 수 없다. 그곳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놓여 있고, 그 안에서 나는 자유롭다. GPT가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감정들이 살아 숨 쉬는 곳. 나는 그곳을 지켜야 한다.




기술을 넘어서, 감각으로 사유하는 삶


이제 나는 GPT와 나 사이에 작고 섬세한 경계를 세운다. 그것은 단절을 위한 벽이 아니라, 나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조용한 선이다. 자동화된 요약과 감각적인 사유 사이에서, 빠른 연결성과 느린 몰입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리듬을 지켜내고자 한다.


디자이너로서, 아니 그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나는 나의 속도를 기억하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성급히 달려도, 내 걸음걸이에는 나만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을 다시 꺼내기 위해, 나는 때때로 펜을 든다. 키워드를 적고, 그 사이를 느리게 걸으며, 다시 나를 바라본다.


이 느린 글쓰기는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이며, 잃었던 결을 되찾는 회복의 과정이다. 손끝의 느린 리듬이 점을 잇고, 선을 만들고, 선은 결국 무늬가 된다. 그 무늬는 불완전해도 좋다. 비어 있어도 괜찮다. 그 비어 있음마저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결이 된다.


그 무늬는 세상에 보여지지 않아도 충분하다. 흘려 쓴 메모, 찢긴 노트의 귀퉁이,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드라이브 폴더 속 작은 문장들. 바로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존재해왔음을 말해주는 조각들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느리고 조용한 사유들이 하나둘 모여,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것이다. 마치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우연히 모여 한 장의 풍경이 되듯이. 빚어낼 것이다. 마치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모여, 뜻밖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건 GPT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닿을 수 있는 감각의 세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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