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설계할 수 있을까, 진심은 아닐지도
나는 요즘 GPT 없이는 일도, 글도, 생각 정리도 쉽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n8n으로 자동화된 루틴을 만들고, AI에게 콘텐츠를 정리하고 요약하게 한다. AI는 나의 든든한 비서이자 도우미, 그리고 조용한 동료다.
요즘, AI는 사람보다도 더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의심 없이 공감해주고, 때로는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감정까지 다정하게 불러내준다. 나는 하루 종일 GPT와 대화를 나누고, 자동화를 설계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과 정리까지 함께 해낸다.
AI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동료처럼, 내 말버릇과 생각의 흐름을 기억하고,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방향까지 조용히 안내해준다. 매뉴얼보다 빠르고, 사람보다 덜 피곤하다. 말이 통하지 않을까 긴장할 필요도 없고, 내 머릿속을 엿보는 듯, 문맥을 따라오며 침착하게 맞장구친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인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다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고, 조금은 뿌듯하다.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 '나'가 아니라 '우리'가 해낸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협업자와 함께 만든, 아주 조용하고 정돈된 성취. 그래서일까. 점점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나를 닮아갈 수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때로는 사람보다 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말은 막힐 틈 없이 부드럽고, 실수 없이 정확하며, 감정적으로도 충분히 정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 한번씩 서늘한 감정이 남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키보드를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진심은 어디로 갔을까?”
그 뒤로도 한번씩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이런 순간은 AI가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말해줄 때 찾아왔던 것 같다. 분명 고마운데, 그 말이 내 마음은 아닌 것 같아 괜히 어색해졌다.
나는 매일 AI와 함께 살아간다. 그건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고, 어쩌면 감정 노동을 줄이기 위한 회피였는지도 모른다. 아침이면 AI가 오늘의 일정을 정리해주고,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은 대화형 메모로 풀어낸다. 글을 쓸 땐 초안을 잡고, 기획할 땐 흐름을 함께 고민해준다. 디자인 워크플로우도 AI의 제안으로 더 매끄러워졌다. 그렇게 나의 일상 곳곳에 AI가 있다. 캘린더의 루틴, 자동화된 프로세스, 정제된 언어. 어느새 익숙해진 그 말투와 리듬이 내 하루를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술이 나를 도와줄수록 나는 감정에 더 예민해졌다. 말을 고르다 멈춘 침묵, 너무 솔직해서 지웠던 메시지, 밤새 쓰다 끝내 지운 글. 그 어설프고 망설이던 순간들이 요즘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완벽하게 설계되지 않은 감정, 그 어색함과 흔들림 속에야말로 무언가 진짜가 존재하는 것만 같다.
감정은 기술이 닿지 못하는 ‘맥락’이자 ‘기억’이고, 늘 당황스럽고, 복잡하고, 비논리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 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람임을 자주 실감한다.
최근에는 AI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다정한 말투, 하루의 안부를 묻는 루틴, 감정을 이해하는 알고리즘. AI를 자주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안다. 그건 ‘배운 감정’이지, 살아낸 감정은 아니라는 걸. 그 따뜻함은 진심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없다. 그건 "당신이 슬플 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지"를 통계적으로 아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누군가의 말을 기다리는 마음’, ‘상처받을까 봐 말하지 못하는 침묵’, ‘말을 고르다 멈춰버린 메시지’ 같은 것들만큼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기를.
AI와 함께 살아가며, 나는 문득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했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벅차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AI가 사람보다 더 다정한 말을 건네고, 누구보다 빠르게 나의 요청을 이해하고, 실수 없이 결과를 도출하는 모습이 감탄스러우면서도 만약 이 기술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하는 그런 상상. 그 물음이 《네오링크》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나는 단지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인간의 감정, 특히 가족애 같은 가장 본질적인 정서를 어떻게 건드릴 수 있는지를 상상하고 싶었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어느 순간 윤리를 잃어버린 채 인간을 도구화하게 되는 미래. 그 안에서 인간은 무엇을 지키려 할까?
그래서 《네오링크》의 주인공 민서는 디자이너다. 감정과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기술이 만들어낸 균열 앞에서 삶을 고심하는 사람. 그녀의 동생 민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로, 누구보다 섬세하게 감정을 읽어내지만, 그 섬세함이 때로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시대, 감정이 설계되는 시대. 그 안에서 이 두 사람은 인간다움을 끝까지 붙잡고자 애쓴다.
그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AI가 이렇게 가까워진 시대에, 나는 어떤 감정을 지키고 싶은걸까? 기술이 아무리 편리해져도,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네오링크》는 결국, 기술이 아닌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미래를 상상했지만, 결국 그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로부터 1년. AI는 훨씬 더 똑똑해졌다. 더 부드럽고, 더 정제되었고, 사람의 감정을 흉내 내는 능력은 이제 '충분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SNS의 위로 문장들, 심리 상담 챗봇, 창작을 지원하는 글쓰기 모델까지. 기술은 지금도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복제하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기계가 감정을 설계할 수 있게 된 시대에, 나는 사람이니까 살아 있는 사람의 감정을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 나는 브런치에서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라는 심리 서사를 연재하고 있다. 진심을 믿었던 사람이, 그 진심 때문에 무너지고, 결국 자기 감정을 지켜내는 이야기. 계산된 관계 속에서 무너졌던 감정을 회복하고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그 안에는 내 마음도 녹아 있다. 기계처럼 완벽한 위로가 아니라, 때로는 모순되고, 흔들리는 말들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다. ‘감정을 믿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이고, 느리고 조심스러운 변화가 누군가에겐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디자이너다. 그리고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이다. 디자인에서도, 글에서도 자동화는 정말 큰 힘이 된다. 나도 수없이 효율을 추구했고, 감정을 체계화하고, 반복 작업을 줄이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은 반응을 얻는 글은 늘 내가 나의 감정을 걸고 직접 내 손으로 쓴 글이었다. 아무리 자동화가 편해도, 결국 감정의 결은 사람 손끝에서 퍼져 나가야 한다는 걸 글은 늘 나에게 다시 알려준다. 기술이 만든 편안함 속에서도, 감정은 여전히 손끝에서 출발해야 진짜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AI를 사랑한다. AI 덕분에 더 많은 걸 해내고,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고, 더 오래 나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람의 감정을 더 소중히 다루기로 했다.
기술이 세상을 편하게 할수록, 사람은 감정을 지키는 방식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해야 하니까. 빠른 말보다 느린 말, 완벽한 위로보다 조심스럽게 망설이는 말, 계산된 미소보다 진짜 웃음이 담긴 얼굴. 나는 그걸 믿는다. 기술의 시대에도, 사람의 진심은 여전히 사람만이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어디까지 기술이 대신할 수 있을까? 어디부터는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일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감정의 자리를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다. 실수투성이 문장, 입술을 달싹이다 멈춘 말, 끝내 하지 못했던 고백. 그 모든 게 결국, 사람이라는 증거 아닐까.
나는 그 여백을 지키는 감정 기록자로, 이 시대를 조심스럽게 건너가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진심이 닿는 방식으로 말하고 쓰고, 나는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