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망설임의 온기

자동화의 시대에, 사람 간의 조심스러운 대화가 남기는 온기에 대하여

by 디자이너 야니
ChatGPT Image 2025년 8월 5일 오후 07_43_52.jpg


"소연 튜터님, 혹시 정답이 없는 질문? 넋두리? 좀 해도 괜찮을까요…"


점심시간 즈음, 조용히 도착한 슬랙 메시지 한 줄. 질문이라기보다는, 질문을 꺼내도 괜찮을지 묻는 말이었다. 마침 따뜻한 차를 손에 쥐고 있던 나는, 그 문장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


잔잔하게 퍼지던 그 말은 마음 깊은 곳의 어딘가를 건드렸다. 망설임, 배려, 신중함, 그리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의 결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타고 도착했다. 그 말이 다 닿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 여백을 천천히 읽고 있었다.


요즘은 질문이 너무 쉽다. AI는 누구보다 빠르게, 정확하게 답을 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처럼 조심스럽게 건네진 한 문장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자동화의 리듬, 인간적인 망설임


우리는 이제 질문을 사람보다 기계에 더 많이 한다. 메일은 자동으로 분류되고, 일정은 자동으로 정리된다. 질문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챗봇이 대답을 건넨다. 편리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그 속도가 빠를수록,

감각이, 감정이, 사람의 리듬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AI는 묻기 전에 답한다. 하지만 사람은, 먼저 묻는다. “지금, 괜찮을까?” “이런 말, 해도 될까?” 그 머뭇거림 속엔 상대를 향한 마음의 주파수가 있다. 나 혼자 흐르지 않으려는, 조율의 감각.


질문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정이 있다. 그건 ‘당신의 시간을 잠시 빌려도 될까요’라는 작은 신호.
그 속에는 눈치보임이 아닌 존중, 조심스러움이 아닌 따뜻한 용기가 있다.



챗봇은 모르는 말의 온도


‘괜찮을까요?’라는 말은 그 자체로 대화다.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 그 사이에 흘러가는 공기의 결, 눈에 보이지 않는 따뜻한 정적. 그 말 뒤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숨어 있다. 혹시나 방해가 될까 조심스러운 마음, 상대의 하루를 존중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마침내 용기 내어 말을 건네는 작은 떨림.


AI는 이런 정적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과 말 사이의 여백, 눈치보는 마음, 혹은 앞선 마음이 흔들리는 감정의 진폭. 정보는 줄 수 있어도, 관계는 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일하는 시간 속에서도 결국 우리를 움직이는 건, 그런 감정의 파동이라는 것을.



효율보다 깊은 연결의 리듬


우리는 점점 ‘정답’을 빠르게 찾는다. 짧고 똑똑한 말들이 오가고, 정확한 정보가 칭찬받는다. 하지만 마음이 진짜 움직이는 순간은, 언제나 그 반대편에 있다. 정리되지 않은 문장, 말끝을 흐리는 망설임, 한 번 더 물어보는 용기.


그 모든 것이 ‘당신과 이어지고 싶다’는 조용한 신호처럼 다가온다. 사람은 어쩌면 대화라는 방식으로 서로의 시간을 어루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때로는 질문의 형태로, 때로는 그냥 ‘괜찮을까요’라는 말 하나로 다가온다. 그 말은 이미, 관계를 시작한 것이다.


그날의 메시지는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질문의 내용보다, 그 말투와 타이밍이 더 선명하게. 감정은 언제나 디테일에 머문다.



나는 왜 이 문장이 좋았을까


튜터로서 나는 매일 많은 질문을 받는다. 질문은 업무의 일부이고, 답변은 책임의 일부다. 하지만 어떤 질문은, 묘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건 정보의 복잡함 때문이 아니다. 질문하는 ‘방식’ 때문이다. 말투의 온도, 타이밍의 결, 그리고 망설임의 길이.


“질문해도 될까요?”라는 말엔 관계를 시작하려는 신호가 담겨 있다. 내 시간을 존중해주는 섬세함, 내 존재를 향한 믿음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성의껏 대답하고 싶어진다. 누군가의 마음이 여백을 타고 나에게 와닿는 순간이니까. 빠르고 정확한 것들 사이에서, 이렇게 천천히 다가오는 말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말과 말 사이에 머무는 것들


그날, 학생은 약속한 시간에 찾아왔다. 우리는 슬랙이 아닌 목소리로, 텍스트가 아닌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질문은 예상보다 단순했지만, 더 오래 남은 건 그 말의 리듬이었다. 천천히 꺼내던 말, 조심스럽게 시작된 대화, 그리고 말과 말 사이를 채우던 따뜻한 공기. 그건 정보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리듬이었다.


일은 결국, 사람에게 닿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진심은 자동화되지 않는다. 느리고 엉성한 대화 속에서 오히려 더 진하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말이 좋다.


“질문해도 될까요?”


그 말은 곧, 누군가가 나를 믿고 있다는 작은 신호이자, 자동화 되지 않는 인간만의 따뜻한 감정의 연결이 아직 살아 있다는 조용한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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