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경계
한 달 후,
민우가 테라콘을 떠난 뒤 예술계는 더욱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네오아트는 이제 단순한 기술을 넘어 하나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제물들이 바쳐지고 있었다.
"이번 주 S등급 신작, '죽음의 문턱' 출시!"
전광판의 광고가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작가 이민석의 신작이었다.
실제 목매달기를 통한 임사체험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민우는 Hope Bridge 연구소 창가에서 민서와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S등급 인증' 스티커가 붙은 작품 포스터들이 즐비했다.
"완전히 선을 넘었어."
민서가 뉴스 화면을 가리켰다.
"신예 작가 박서현, 실제 자해하며 '고통의 순수성' 추구"
"베테랑 작가 강민호, 환각제 직접 투여... '의식 확장 예술' 표방"
"예술가들이 미쳐가고 있어."
민우가 중얼거렸다.
"아니야. 이미 미쳤어."
민서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분노가 깔려 있었다.
"규격화된 채점 시스템이 도입된 후,
높은 표준화 지수를 받기 위해 점점 더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게 됐어."
화면이 바뀌자 더 충격적인 장면이 나타났다.
한 작가가 고층 빌딩에서 번지점프를 하며 추락 공포를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었다.
"이게 예술이라고?"
민우가 분노했다.
"시스템상으로는 완벽한 최고급 작품이야. 순도 99%, 강도 98%, 진정성 97%."
민서가 다른 탭을 클릭했다.
"더 심각한 건 이거야."
'감정 거래소'라는 제목의 뉴스가 떠올랐다.
"생계형 감정 판매자들 급증... '내 상처도 돈이 된다'"
"노숙자, 실직자들 극한 체험 후 감정 데이터 판매"
"감정 암시장 거래액 월 100억 원 돌파"
민우의 입이 바짝 말랐다.
"이게 뭐야?"
"작가들이 직접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우니까, 다른 사람의 경험을 구매하는 거야.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상품화하고 있어."
화면에는 얼굴을 가린 중년 남성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가족 먹여 살리려면...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한 번에 200만 원씩 받으니까."
기자가 물었다.
"어떤 경험을 하시는 건가요?"
"말 못 해요. 너무... 너무 끔찍해서."
민서가 화면을 끄며 말했다.
"이게 바로 네오아트의 진짜 모습이야.
부유한 작가들은 안전하게 앉아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구매해서 작품을 만드는 거지."
그날 오후, 민우는 오래간만에 갤러리 구역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더 자극적인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구매한 절망', '타인의 공포', '빌린 죽음의 순간'...
제목만 봐도 소름이 돋는 작품들이었다.
한 갤러리 앞에서 포스터를 봤다.
"신예 작가 장현우, 화제의 신작 '구매한 살인 충동' 전시 중"
"100% 실제 살인자의 감정 데이터로 제작된 몰입형 작품"
"업계 최초 오감 헤드셋 방식 도입 - 보다 강렬한 감정 동조 체험"
민우는 그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봤다.
민우의 전시와 달리 장현우는 관람객들에게 개인 맞춤형 헤드셋을 착용시키고 있었다.
홀로그램이 아닌, 뇌에 직접 감정을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와, 진짜 소름 돋아. 이게 진짜 살인자의 마음인가 봐."
"S등급은 역시 다르네. 완전 실감나."
"근데 이거 진짜 사형수 데이터라던데?"
"맞아, 교도소랑 계약해서 샀대."
민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그곳을 떠났다.
저녁, 민우는 유나를 만나러 갔다.
유나는 작은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뭘 그리고 있어?"
"무서운 꿈이요."
유나가 그림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마음을 기계에 주입하고, 그 대신 돈을 받는 그림이었다.
"이 꿈을 꿨어요.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팔고 있었어요."
민우는 소름이 돋았다. 유나가 현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무서웠지?"
"네. 마음을 팔면... 마음이 없어지잖아요. 그럼 그 사람은 뭐가 되는 거예요?"
민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민우에게 충격적인 연락이 왔다.
김도윤으로부터였다.
"민우씨, 큰 일이에요."
"무슨일이죠?"
"제가 아는 후배가... 자살했어요."
민우의 심장이 멎었다.
"뭐라고요?"
"이수영이라고, 신예 작가였는데... 며칠 전에 '완벽한 절망' 작품을 만들겠다고 하더니..."
김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진짜로... 진짜로 자살해버렸어요. 그 순간의 감정을 헤드셋으로 녹화한 채로."
민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 작품이... 그 작품이 S+등급을 받았어요. 사후에 발매됐는데 대박이 났어요."
"미쳤네요..."
"더 미친 건, 다른 작가들이 이수영을 부러워한다는 거예요. '진짜 예술가'라고 추앙하고 있어요."
다음 날, 민우는 직접 이수영의 추도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추도식 분위기가 이상했다. 슬픔보다는 흥분과 동경이 가득했다.
"이수영은 진정한 예술가였어."
"자신의 생명을 바쳐 완벽한 작품을 만들었지."
"우리도 저 정도의 각오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예술가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민우는 경악했다.
한 젊은 작가가 민우에게 다가왔다.
"선배님, 윤민우 작가님이시죠?"
"네."
"저도 이수영 작가처럼 진정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직접 하기는... 너무 무서워서요."
"그래서요?"
"감정 거래소에서 사려고 해요. 거기서 진짜 자살 시도자의 감정을 판다더라고요."
민우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 걸 사서 작품을 만든다고요?"
"네. 요즘은 그게 트렌드예요. 직접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서도 진짜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 순간 다른 작가가 끼어들었다.
"아, 그거 장현우 작가가 잘해요. 그 사람은 감정 구매의 달인이거든요."
"장현우?"
"네. 최근에 떠오르는 신예예요. 남의 감정을 사서 작품 만드는데 정말 천재적이에요."
민우는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추도식이 끝난 후,
민우는 한 구석에서 박지원을 마주쳤다.
"민우씨."
"박지원 CEO님."
"이수영 작가 일... 안타까워요."
박지원의 표정에는 진짜 안타까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데..."
박지원이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박지원이 민우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깊은 상실감이 있었다.
"제 조카 지수도 그림을 정말 좋아했어요.
지수는 민우씨와 비슷한 아이였어요. 숫자들이 춤춘다고 했죠.
7은 수줍음이 많다고, 3은 따뜻하다고..."
박지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아이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 아이의 세계를 보고 싶어서 네오링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요?"
"지수는 이미...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제가 네오링크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민우는 놀랐다. 박지원의 동기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민우와 함께 이수영의 추도식에 참석했던 김도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민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AVA를 만든 거예요.
지수 같은 아이들의 세계를 보존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 특별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네오아트는 소수의 작가와 관람자에게만 닿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AVA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릴 수 있다고 믿었죠."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제가 원했던 게 아니에요."
박지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수영 작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팔아야 하는 상황도 제가 원했던 게 아니에요."
민우는 잠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차갑게만 보였던 그녀의 얼굴 뒤로, 깊은 상처와 후회가 스며 있는 듯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막을 수 있잖아요."
"어떻게요?"
"AVA 시스템을 중단하고, 감정 거래소도 없애는 거요."
박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 커져버렸어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됐고,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어요."
"그럼 포기하겠다는 거예요?"
"아니에요. 하지만... 혼자서는 힘들어요."
박지원이 민우를 바라봤다.
"도와주시겠어요?"
민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추도식의 검은 꽃잎처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 깊은 곳에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