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고 Apr 09. 2019

덩컨 박사와 111세 묘령의 집시 할매 파헤치기(1)

장수長壽의 역사#2. 빨간 망토 집시 할매는 정말 슈퍼센터네리언일까

1875년 3월 9일 늦은 7시. 저명한 고고학자 아우구스투스 피트 리버스(Augustus Pitt Rivers) 회장의 주재로 정기 모임이 열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영국&아일랜드 인류학 협회(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회원들. 간단히 신입 멤버 충원에 대해 논의한 후, 한 박사의 발표가 이어졌다. 가운데 머리는 벗겨졌지만 옆머리가 덥수룩한 수염까지 이어진 모양새. 약간 큰 매부리코에 졸린듯한 눈. 집시 할매의 111년 인생을 함께 파헤칠 의사 덩컨 깁(Geoorge Duncan Gibb) 박사가 슈퍼센터네리언을 주제(Ultra-centenarion Longevity)로 막 발표할 참이었다.

의사 George Duncan Gibb(출처: David Crawford's Home)

잠깐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살던 시골엔 언제부터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을지 모를 얼굴들이 넘쳐났다. 하얗게 센 머리를 치렁이며 한 손엔 곧은 지팡이를 짚고 늘 산책을 나가던 할머니. 인사를 할 때면 세상 밝은 얼굴로 "이쁜 사람"이라며 인사를 받아주던 할머니. 5평도 채 안 될 좁다란 집에서 늘 앉아 사람 구경을 하던 할머니. 어린 시절 줄곧 마주치던 할머니들은 이제 모두 다른 세상에 있다. 지팡이를 짚던 할머니는 어느 순간 휠체어를 타시더니 곧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예쁜 미소를 지녔던 할머니의 집은 허물려, 말끔한 정원을 가진 중년 부부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쪼그리고만 있던 할머니는 조그만 집과 함께 떠났다. 


오늘 덩컨 박사와 함께 파헤칠 하트퍼트셔 주의 트링(Tring)에 살던 엘리자베스 리더룬드(Elizabeth Leatherlund)는 위 할머니들처럼 어쩌면 평범한 사람이었다. 극도로 나이 먹었다는 것만 빼면. 1763년 4월 24일 세례를 받은 그녀는 1875년 1월 18일에 죽었다. 111세의 나이로.


영국의 저명한 의사 조지 덩컨 깁(George Duncan Gibb) 박사는 1873년 8월 16일, 런던 타임스(The London Times)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한다. 트링에 사는 할머니가 110년을 살았으며, 110년 전 세례 기록은 미스터 톰킨스(Mr. Tompkins)에게 있다는 것. 1871년과 1873년에 이른바 골든 에이지(Golden Age)라 칭하며, 센터네리언(Centenerion, 100살 이상 산 사람)에 대해 연구했던 덩컨 박사는 이 기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유명인은 바쁜 법. 9월 내내 출장을 다녀야 했던 그는 한 달 동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덩컨은 미스터 톰킨스에게서 엘리자베스의 사진을 받는다. 그리고 1873년 10월 15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트링으로 떠난다. 그녀는 어떻게 110살까지 살 수 있었을까. 그녀는 정말 110살일까. 그녀에게 어떤 걸 물어봐야 할까. 궁금함을 한 아름 안은 채 박사는 트링에 도착한다.




1873년 10월 15일 영국의 트링은 햇살이 맑고, 청청했다. 영국 특유의 날씨 덕택에 간간히 소나기가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곤 했지만, 엘리자베스를 만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른 오후, 덩컨 박사는 미스터 톰킨스를 만난다. 그는 교회 뒤편에 움츠려 있는 숙박시설로 박사를 인도했다. 레드 라이언 민박(Red Rion Inn). 그녀는 여기서 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심스레 '콕, 콕'이는 소리를 앞세워 엘리자베스가 나타났다. 작은 키에 굽은 허리. 갈색으로 치장한 그녀는 영락없는 집시의 자손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박사가 이때까지 만났던 백수(百壽)들 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엘리자베스는 박사를 만나자마자 악수를 건넸다. 그리고 비교적 명확한 발음으로 그의 인터뷰에 응했다.


110살 엘리자베스는 시력이 좋지 않았다. 글을 읽을 수 없었지만 사물과 사람을 식별해낼 수는 있었다. 뜨개질도 거뜬히 해내 박사에게 선물로 손수 만든 가방을 줄 정도였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박사의 질문에 유창하게 답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대화 능력이 충분하다는 걸 확인한 덩컨 박사는 이제 그녀가 110살이라는 걸 증명해내야 했다. 의학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지금처럼 기록이 필수적이지 않았던 19세기에. 틀림없어야 할 증언과 증인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들로 말이다.


참고,

(인터넷)

A short article on the life and work of George Duncan Gibb. https://internatlibs.mcgill.ca/index.htm


(학술논문)

Duncan Gibb(1876) Ultra-Centenarian Longevity.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Vol. 5 (1876) pp.82-101


매거진의 이전글 장수長壽한 사람을 일컫는 말, 슈퍼센터네리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