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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Apr 12. 2019

덩컨 박사와 111세 묘령의 집시 할매 파헤치기(2)

장수長壽의 역사#3. 150년 전 111세 집시 할매의 이야기

엘리자베스 리터룬드(Elizabeth Leatherlund)는 한결같은 삶을 살았다. 100살을 훌쩍 넘겼다고 한들 남에게 의지하는 법이 없었다. 추수 철이 되면 특유의 빨간 망토를 걸치고 밭으로 나왔다. 한 손에 든 낫으로 거침없이 밀을 벴다. 뜨개질도 능헀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나이에 한쪽 눈이 떠지지 않았지만 연륜이 또 하나의 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덩컨 박사는 평범한 삶에 빠져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나이에 이른 여인을 심문해야 했다. 그녀가 110살이란 걸 어떻게 증명해내야 할까.

Elizabeth Leatherlund
첫 번째 단서. 엘리자베스, 그녀의 인생사

엘리자베스의 원래 성은 헌(Herne)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집시였다. 그들이 속한 집시 부족은 법적으로 규제받기 전에 허츠(Herts), 벅스(Buck) 등을 돌아다니는 꽤나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떠돌이 생활 와중에 엘리자베스는 옥스퍼드 주(Oxfordshire)에서 태어났는데, 1763년 4월 24일 세례를 받았다. 기록으론 "Elizabeth, daughter of Thomas Horam, Travailer, Apr.24"이라 적혀 있었다. 집시 역시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례를 받았고, 직업은 '여행자'로 기재되곤 했었다. 어머니는 엘리자베스를 낳고 곧 죽었기에, 이름에 적히지 않았다.


집시답게, 엘리자베스는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야영을 하면서 보냈다. 그러다 조셉 리더룬드(Joseph LEatherlund)라는 군인과 1785년에 결혼했다. 이들은 도버 주에서 한동안 정착하며 지냈다. 아쉽게도 이들의 결혼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는 집시 풍습 때문인 걸로 추정되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사망한 기록이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돈을 최대한 아껴야 했던 집시들은 모든 절차를 간소화했었다.


남편을 따라 주둔지를 옮겨 다니며 생활하기도 했다. 총 5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사뮤엘, 쌍둥이 윌리엄과 토마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새보라(Saborah)였다. 사뮤엘은 추후 단서 중 하나이기에 소개를 차치하고, 윌리엄과 토마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다 어머니보다 일찍 세상을 떴다. 새보라는 인터뷰 당시 옆 동네에서 여전히 살아있었다. 남편 조셉은 1814년 아일랜드에서 주둔할 때 죽었다. 이때 엘리자베스는 무연고인 아일랜드에서 살기보단, 친척들이 있는 영국에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그녀는 트링이라는 마을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삶의 무게를 견뎌냈다.


두 번째 단서. 동네 주민들의 증언

베티. 마을 사람들은 엘리자베스를 베티라는 애칭으로 불러주곤 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증언쯤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웬이란 목사는 엘리자베스가 45년 간이나 할머니로 살아왔다고 증언했다. 그 모습은 자신의 아버지도 봐왔다는 첨언과 함께. 마을 노인네들도 발 벗고 나섰다. 90살 먹은 할아버지와 95살 먹은 마을의 원로도 굳이 베티는 자신들보다 '훨씬' 늙었다고 말했다. 책장수의 증언도 비슷했다. 무덤에서의 증언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93세에 죽은 한 노인은 베티를 소녀 시절부터 봐왔는데, '늙은' 베티가 자신보다 8-10살 정도 많다고 주장해왔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엘리자베스는 상록수 같았다. '여전히' 늙은 베티는 빨간 망토에 지팡이를 50년간 끌고 다녔다. 추수철이면 터프한 그녀는 장신구처럼 낫을 몸에 치장하고 다녔다. 그물을 만들고, 특유의 터벅이는 걸음걸이로 시장바닥을 누비기도 했다. 그녀가 100살은 됐을 거라는 소문이 돈 지 10년이 지나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일관된 증언. 하지만 증명이라 보기엔 어려웠다. 그때 엘리자베스의 첫아들, 사무엘이 새로운 단서로 떠오른다.


세 번째 단서. 사무엘의 비극

엘리자베스와의 인터뷰 도중 덩컨 박사는 단서가 될만한 존재를 찾아낸다. 바로 그녀의 첫아들 사무엘이었다. 감을 잡은 그는 그의 친구 에드워드 후커(Edward Hooker) 박사에게 편지를 쓴다. '사무엘의 묘비를 찾아줘."


Hartlake bridge

1853년 10월 20일. 날씨는 흐렸다. 전에 잔뜩 내린 비로 메드웨이 강(Medway River)은 성이 잔뜩 난 상태였다. 그날, 맥주를 만드는 원료 중 하나인 홉을 따는 농장으로 가는 마차가 있었다. 사람을 가득 실은 마차. 이들 대부분은 집시였다. 온갖 피로를 잔뜩 실은 마차는 다리 위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굴러가던 바퀴 하나가 빠졌다. 균형을 잃은 마차는 옆으로 처박혔고, 방패막이되어야 할 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화가 나있던 강물은 순식간에 40명을 집어삼켰다.


1853년 10월 22일, 타임즈(the Times)에 이날의 비극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거기엔 사무엘의 이름이 있었다. 사무엘 59, 샬롯 56, 콤포트 24, 셀리나 22, 앨리스 18 그리고 사촌 가족들까지. 사무엘의 가족 중 단 한 명, 패니만이 살아남았다. 패니는 부모님과 자매들 그리고 매부와 조카 전부 잃었다. 


지금까지도 켄트 주에서 기억하고 있는 이 날의 비극은 묘령의 집시 할매, 엘리자베스의 또 다른 단서가 됐다. 덩컨 박사가 사무엘을 언제 낳았냐고 묻자,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29살이라 대답했는데 산술 해보면 그녀의 나이와 일치했다. 그리고 사무엘이 1853년에 사고사로 죽었다고 답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단서냐 아니냐, 막내딸 새보라Saborah

새보라는 1815년 3월 28일 태어났다. 조셉은 1814년 2월 4일에 죽었으니 약간의 오차가 있어 보인다. 엘리자베스가 53살에 낳은 딸. 평균 수명이 50 줄을 넘기도 전인 당시에 50대에 자식을 낳는다는 건 희귀한 일이었다. 그러나 덩컨 박사는 미심쩍은 부분을 간단히 해치운다. 코크 잡지(Cork Advertiser)의 1830년 10월 2일 기사에 클레어(Clare)라는 할머니가 63세의 나이로 출산한 것이다. 부부는 지난 20년간 아기가 없었다.


아쉽게도 큰 증인이 될 수 있던 새보라에 대한 단서는 이게 끝이다. 덩컨 박사가 인터뷰할 당시 옆동네에 버젓이 살아있었으나 굳이 만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단서, 늙었던 엘리자베스

1875년 1월 19일, 덩컨 박사에게 마지막 단서에 관한 정보가 들어온다. 엘리자베스가 살던 동네인 트링의 외과의 R. N. 립스콤(Lipscomb)이 전보로 놀랄만한 소식을 알려줬던 것. "베티가 죽었어." 다음날 아침, 덩컨은 아침 기차를 타고 트링으로 떠난다. 그리고 당일 오후 12시 30분, 덩컨은 마지막 증거 수집에 나선다. 엘리자베스를 해부함으로써.


엘리자베스가 죽은 지 36시간이 지난 후 해부가 이뤄졌다. 145cm 정도의 작은 키. 바늘을 찔렀을 때 쉽게 뚫리지 않을 정도로 피부는 거친 상태였다. 외에도 덩컨 박사는 엘리자베스의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사망의 원인이 된 폐부터, 잘 떠지지 않던 눈 그리고 온갖 피부조직까지. 박사답게 어려운 용어로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슈퍼센터네리언만의 뚜렷한 특징은 없었다. 그저 엘리자베스가 110살의 나이에도 비교적 건강한 장기를 유지했고,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던 시력의 경우도 사실 괜찮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는 정도.



덩컨 박사의 111세 묘령의 집시 할매 파헤치기는 여기서 끝난다. 발표가 끝나자 영국&아일랜드 인류학 협회(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회원들은 저마다 발언에 나섰다. 브라브룩(Brabrook) 씨는 출생증명서는 증거가 없으며 결혼 증명서가 없다는 점 그리고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난 29살에서야 첫아들을 낳았다는 점을 의심했다. 늦은 나이에 잉태한 새보라 역시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갤튼(Galton) 씨는 52살에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는 것과 112살까지 장수의 복을 누리는 행운들이 동시에 겹친 점을 지적했다. 


증명 서류가 불충하다는 점 외엔 딱히 답할 가치가 없는 지적들. 덩컨 박사는 유쾌히 답한다. 첫 자식이 늦은 게 결코 잘못된 게 아닌 점, 우연의 일치를 어찌할 수 없는 점 그리고 그 밖의 장수한 사람들(i.e. Count Waldeck<1766~1865>, 골동품 애호가로 99세까지 살았다)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렇게 시답잖은 대화들로 끝을 맺은 후, 모임은 해산한다.


센터네리언(Centenerion), 그중에서도 슈퍼센테네리언(Supercentenerion)에게 관심을 쏟았던 덩컨 깁 박사. 그 덕분에 공인받기 전, 슈퍼센테네리언들의 삶을 간단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의학적으로도 명성을 쌓아 후두경(후두를 진단하는 데 쓰이는 거울)의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를 해부한 지 1년 만인 1876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뜬다. 55세의 나이로.  


참고,

(인터넷)

A short article on the life and work of George Duncan Gibb. https://internatlibs.mcgill.ca/index.htm


(기사)

BBC Kent(19 October, 2003) Tribute to Drowned Hop Pickers.


(학술논문)

Duncan Gibb(1876) Ultra-Centenarian Longevity.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Vol. 5 (1876) pp.8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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