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長壽의 역사 #4. 공인받은 세계 최고령자 잔 칼망을 둘러싼 의혹들
장수長壽를 논할 때면,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잔 칼망Jeanne Calment(1875~1997). 평범한 프랑스 아를(Arles) 시의 부유층이었던 그녀는 122년을 살아내며 기네스북이 인정한 공인된 세계 최고령자가 됐다. 그 기록은 22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그녀의 일화는 전설처럼 남아있다. 85세에 펜싱을 시작하고, 110세까지 자전거를 탔다. 118살이 돼서야 건강을 이유로 금연을 시작했다. 90세에는 공증인 라프리에게 주택연금과 같은 계약을 맺었다. 죽을 때까지 매달 380유로를 지급받는 대신, 그녀가 죽으면 재산을 넘기는 조건이었다. 장수한 그녀는 아파트 값의 2배를 더 받아냈으며, 라프리는 그녀가 죽기 2년 전에 세상을 떴다. 114세 때는 빈센트 반 고흐(그녀는 고흐를 본 사람 중 최후의 생존자기도 하다)와의 연을 바탕으로 영화에 출연하며 세계 영화 최고령 출연자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연이은 대단한 기록. 초고령자라기엔 믿을 수 없는 행보들. 의심의 눈초리를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잔 칼망은 정말 122년을 살았을까.
칼망 가家는 아를 시 유력 가문 중 하나였다. 배를 만드는 목수 집안이었던 칼망네는 이를 기반으로 부유하게 살았다. 조선소에서 60-80명가량을 거느릴 정도. 1875년에 태어난 잔 칼망은 가톨릭 계열 학교에서 수학했고, 21살에 가문의 일원인 페르난드 니콜라스Fernand Nicolas와 결혼한다. 아를 시에서 직물업을 했던 남편 역시 돈이 많았고, 잔은 특별한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널찍한 집은 하녀들이 챙겼다. 1898년엔 딸 이본Yvonne이 태어났다.
내성적인 스타일이었던 그녀는 바깥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유력 가문들이 모인 사냥 클럽에만 왕왕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평탄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1934년, 유일한 딸이 생일날 늑막염으로 사망한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은 잔 칼망을 둘러싼 의혹의 시작점이 된다.
잔 칼망은 진짜 잔 칼망인가
잔 칼망의 길쭉한 생애는 여러 죽음들을 마주하게 했다. 딸 이본의 죽음 이후 남편, 부모님 그리고 유일했던 손자까지 잃었다. 혈족이 거의 없었던 잔 칼망은 이후로도 평소 그대로 조용한 삶을 이어간다. 그녀가 100살이 되던 해인 1975년에도 아무 소동이 없었다. 당대 100살은 희귀한 일로 지역 신문 혹은 시장이 축하해줄 만한 일이었다. 이후 지역 언론에 95살을 맞이한 노인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다.
잔 칼망이 슈퍼센터네리언(110세)이 되고, 거처를 양로원으로 옮기자 분위기는 급변한다. 지역 언론을 위시한 사람들이 잔 칼망의 장수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녀 역시 무료한 생활이 지겨웠던 듯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다. 다채로운 인터뷰를 진행했고, 자서전도 남겼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 곁에는 어두움도 있는 법. 그녀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2000년, 나탈리아Natalya Gavrilova와 레오니드Leonid Gavrilov를 시작으로 2018년, 러시아 노인학자 발레리Valery Novoselov와 니콜라이Nikolay Zak까지. 잔 칼망의 122년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잔 칼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목한다.
잔 칼망이 사실은 딸 이본 칼망이라는 것이다.
#1 '지나치게' 동안인 잔 칼망
"잔 칼망이 100살이 되던 해, 그녀를 만나 축하해주고, 선물을 주려고 했어요. 공손히 거절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넘어갔었죠. 결국은 그녀가 직접 시청에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리셉션에서 그녀를 꽤나 오랜 시간 기다렸었죠. 그런데 사실 그녀는 근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80살도 안 돼 보이더군요. 우리는 정치적으론 의견 차가 있었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떠났을 때, 잔은 사냥꾼처럼 걷더군요." 아를 시의 전前 시장 자크Jacques Perrot
노인학자들에 따르면, 슈퍼센터네리언들은 그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보다 어려 보인다고 한다. 겉으로 봐서는 노화가 느리게 작용하는 것이다. 잔 칼망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소싯적부터 동안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딸 이본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잔 칼망이 지나치게 어려 보여 이본과 비슷한 나이대인줄 알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성적이던 모녀, 잔과 이본은 곧잘 어울리곤 했다. 옷장을 함께 쓰며 스타일을 공유했다. 이본이 16살이 되던 해에 잔은 딸을 이끌고 사냥 클럽에 나서기도 했다. 잔은 지역 사냥 클럽에서 유일한 여성 멤버였다. 당시에는 비슷해 보였던 연령대와 취미 그리고 성격까지. 딸 이본의 얼굴이 아버지 쪽인 페르난드를 닮았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둘은 똑 빼닮았다.
문제는 잔 칼망의 노화가 지나치게 늦게 시작됐다는 점이다. 아를 시의 전 시장 자크의 인터뷰처럼 100살의 나이에도 그녀는 70대처럼 보였다. 동네 주민도 잔이 30년은 더 어려 보인다고 말했다. 노인학자 니콜라이가 117살 생일 사진을 수 백명의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대부분이 90대 노인일 거라 추측했다. 딸 이본의 나이대다. 105살이 지나면 인간의 노화는 더욱 급격히 진행되는 경향성이 있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을 두고 100살이 넘어 보인다고 추측하기엔 무리가 있는 점 역시 고려해야겠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노화과정을 지켜본 사람은 거의 없다. 명목상 남편의 직물사업에 고용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 한 번도 직장에 나온 적이 없었다. 빌라와 별장이 여러 채 있었기에 동네 주민들은 그녀를 지켜볼 수 없었다. 잔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110살 이후부터였다. 혈족도 거의 없었기에, 말년에 들어 그녀를 지켜봐 온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참고,
(학술논문)
Bernard Jeune, Robert Young(2010) Jeanne Calment and her successors. Biographical notes on the longerst living humans. Research Gate.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26813486_Jeanne_Calment_and_her_successors_Biographical_notes_on_the_longest_living_human
Karen Ritchie(1995) Mental Status Examination of an Exceptional Case of Longevity J. C. Aged 118 Years. British Journal of Psychiatry (1995). 166. 229-235
Lamy J.-C.(2013) Le mystere de la chambre Jeanne Calment/Fayard, 2013. 264c.
Nikolay Zak(2018), Jeanne Calment: the secret of longevity, Research Gate.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29773795_Jeanne_Calment_the_secret_of_longev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