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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Jul 30. 2019

평범함이란 폭력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그리고 하인리히 뵐

정의를 내리라거나 해당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라고 했을 때 어려운 단어가 있다면, 내게는 평범함이다. 누구나 다 평범하지 않으면서 평범한 척한다. 조직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평범함의 농도를 조절하곤 한다. 내재된 구석탱이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생각이나 취향 따위가 있으면서 드러내진 않는 것이다. 사실 드러낼 필요도 없다. 원치 않는 상황만 만들 개연성이 크니깐. 어쩌면 통상적인 사회적 의미에서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깐.


그래서인지 평범함은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조직 내 가치 중 하나인 듯하다. 독특한 구석이 있거나 남다른 면모가 있다면 그 즉시 특별한 존재로 부상한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 조직을 말할 때면 일 순위로 언급되는 존재가 되며, 누군가와 다른이 아닌 조직과 다른 이가 된다. 그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평범한 척은 시작된다. 조직에 섞이기보단 조직에 덧칠해진다.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신기하게도 언제든 우리는 그 덧칠을 벗겨낼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집 문턱만 넘어서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런 사람들이 모여 누군가의 평범하지 않음을 기대한다.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누구보다 평범함을 드러내려는 듯 말이다. 알게 모르게 폭력은 시작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속 카타리나 블룸은 언제든 마주칠 것 같은 이웃 같은 사람이다. 27살 이혼자로 가사관리 일을 하고 있다. 주 52시간은 거뜬히 넘기며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은행 대출을 껴서 괜찮은 아파트를 구입했으며, 은행의 자비에 보답하기 위해 부단히 힘쓰고 있다. 인심도 있는 편이라 약간의 돈은 가족들에게 용돈처럼 쥐어준다. 파티가 열리면 그녀를 초대해주는 친구도 있고, 그녀가 곤경에 처할 때면 소매부터 걷고 나서는 친구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지켜봤을 카타리나의 평범한 모습들이다. 옆집 누나라고 해도 별반 놀랍지 않지만, 카타리나 블룸은 사람을 죽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타리나가 감춰뒀던 평범함이란 허물이 철저히 파괴된 것이다. 그것도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발단은 이러하다. 카타리나는 파티에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는 마침 철저한 감시를 받는 수배범이었다. 파티장을 떠나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으며, 너무 사랑한 나머지 비밀 통로를 통해 그를 내보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경찰은 카트리나 블룸을 체포했다. 대중지 <차이퉁>은 그런 그녀를 온 세상에 내보인다. 모두가 감추길 바라는 평범하지 않은 구석 낱낱을.


<차이퉁>은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체포 과정을 알차게 찍고, 무성한 추측을 쏟아냈다. 평범하고, 자기 일을 착실히 해내는 것처럼 보였던 카타리나는 파티장에서 범죄자와 어울리는 파렴치한이 됐다. 덧대어, 신문은 그녀가 원래부터 그런 작당이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문장을 남겼다. 


블룸 부인의 진술을 다소 바꾼 것에 대해 그는 기자로서 '단순한 사람들의 표현을 도우려는' 생각에서 그랬고, 자신은 그런 데 익숙하다고 해명했다. (p. 107)


다정하기보다는 치근덕거리기만 했던 남편, 좌파와 관련된 발언 한 번으로 수세에 몰린 아버지, 해준 것도 없이 병상에만 누워 있는 어머니, 잡범으로 수감 중인 오빠까지. 마을 주민들은 카타리나 블룸의 모든 걸 알게 됐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그 정도가 대단치 않음에도 거리를 나서는 카타리나는 눈초리를 받기 일쑤였다. 애매하게 친했던 이들은 배려로 한껏 포장하며 카타리나를 이해하는 척한다. 와중에 <차이퉁>은 성실히 힘을 보탠다. 카타리나의 친구들까지 파탄 냈다. 블로르나 부부가 친하다는 이유로 카타리나와 중상모략을 꾸민 것처럼 묘사된 것이다. 카타리나에게 집적이던 정치인은 오히려 그녀의 주도면밀성에 파탄날 뻔한 유능한 가장으로 그려진다. 


카타리나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짐으로 시작하여 드러난 평범치 않았던 요소들은 차근히 굴러가는 입방아들을 거쳐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평범해지려는 욕망은 타인의 드러난 그것을 점점 극적으로 만들었다. 일종의 폭력으로.




카타리나는 <차이퉁> 기자와 인터뷰를 원했다. 그녀를 괴물로 만든 그는 카타리나를 보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듯 섹스나 하자고 한다. 그녀는 그에게 권총을 쏜다. 한 발, 한 발. 기자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쓰러진다. 카타리나는 진술한다. "그가 섹스나 한 탕 하자기에 나는 총으로 탕탕 쏴주었어요." 그녀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은 사실 확인없이 날조하는 언론사를 비판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차이퉁>은 도처에 있다. 정도만 다를 뿐. 우리는 누군가의 평범하지 않음에 주목하고, 재미를 위해 풍선인양 조금씩 입김을 불어넣는다. 터지는 것보다 불어넣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한다. 터지는 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숨기에만 급급하다. 쓸데없이 결과보다 과정에만 집중한다.


이렇듯 평범함이란 장막 아래 모여든 우리는 서로에게서 평범하지 않음을 발견하기 위해 안달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뵐은 보여준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미디어가 되는 오늘, 허튼 소리가 낳을 결과를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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