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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Aug 01. 2019

'공식적'으로 최고령자 되는 법

하우 투 비 어 슈퍼-센터네리언

우연히 내가 쓰는 글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다. 주제는 덕질이었고, 부끄러우면 밝히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였다. 창피할 건 아니기에 나는 슈퍼센터네리언(Supercentenarian, 돌려 말하면 長壽, 정확히는 110세 이상 산 사람)에 관심이 많으며, 중학생 때부터 이들을 관찰해 왔다고 말했다. 순간 오덕이라도 만난 듯, 숙연+이건 이길 수 없는 덕후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에 관련 논문이나 기사를 읽으며, 슈퍼센터네리언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는 글을 브런치에 썼다는 멘트로 마무리지었다.


그러자 건강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듯한 사내 하나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어요? 나는 간단하게 장수 비결엔 정해진 게 없으며, 118살까지 담배를 폈던 잔 칼망을 예로 들어 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게 화제는 넘어갔다. 돌이켜보니 내 설명이 빈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 덕후라면 신이 나서 슈퍼센터네리언이 되는 방법까지 설명해줬어야 하는데! 구두로는 처음 입을 터 본 거라 원하는 만큼 나오지 못한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브런치에라도 끄적여 본다. 이른바, How to be a supercentenarian.



슈퍼센터네리언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① 110세 이상 살거나, ② 출생 연도에 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록이 있어야 한다. 1번은 간단한 기준이니 넘기겠다. 생일을 110번 맞이하면 된다. 1번을 채운 사람은 의외로 많다. 영혼 없이 세계 뉴스를 주야장천 틀어 놓으면 어쩌다 한 번 120세 넘은 노인이 나와 자신의 장수 비결을 설명하고, 늙어도 이렇게 잘 살아요 하고 뽐내곤 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가족 혹은 도시 혹은 그 나라만이 인정하는 슈퍼센터네리언이다. 진정으로 슈퍼센터네리언이 되기 위해서는 ②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IDL(International Database on Longevity)이나 GRG(Gerontology Research Group, 노인학 연구 그룹)의 확인이 필요하다. 즉, 200살 넘게 살아도 메이저 노인학 그룹들의 인정이 없으면 공식적인 슈퍼센터네리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구자들로부터 슈퍼센터네리언이라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① 출생 당시에 적힌 정확하고 공식적인 기록이 있어야 하며, ② 110세 이상을 살아야 하며 ③ 동일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정말 간단해 보이지만, 100년 전 출생한 이들에겐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네덜란드나 영국처럼 출생기록을 정확히 하는 나라들이 당시엔 얼마 없었던 것이다. 이에 자신이 120살을 살았더라도, 120년 전 기록이 없으면 인증절차를 밟기 어렵다.


슈퍼센터네리언으로 공식 인정받을 확률 (출처: Robert Young, Typologies of Extreme Longevity Myths 2010)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비非인증인은 사칸 도소바(Sakhan Dosova)다. 사칸과 카자흐스탄 정부에 따르면 그녀는 1879년 3월 27일에 태어났다. 단 것은 먹지 않으며, 치즈와 밀 음식을 즐겨 먹었던 그녀는 2009년 130살이 됐다. 증거는 스탈린 집권 시절 시행된 인구조사기록으로 1926년 사칸은 47세로 기록돼 있었다. 낙천적인 성격에 민요를 즐겨 부르던 것을 장수 비결로 꼽던 사칸은 카자흐스탄 정부의 환영을 받고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정부의 선물로 받은 아파트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유명해진지 2개월 만에 사망한다.


그러나 그녀는 공식적인 슈퍼센터네리언이 될 수 없었다. 앞서 강조했듯이, 기록은 출생 언저리에 공식적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사칸의 경우 1926년 기록이 있지만, 당시 실제 나이가 47세임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특히 120살이 넘는 사람은 공식적인 인증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없기에, 그 절차가 훨씬 까다롭다. (잔 칼망이 122세로 인증을 받았지만, 이전 글에서 소개했듯이 분분한 상태) 부모, 가족 등 기본적인 개인 관계에 대해 빠삭해야 하며, 결혼, 출산, 교육 등이 출생연도에 합리적으로 들어맞아야 한다.


자신이 130세라고 주장한 사칸 도소바Sakhan Dosova (출처: Daily Mail 11 May 2009)


노인학을 연구하는 Robert Young의 2010년 논문에 따르면, 사칸의 주장은 당시 128세라고 주장한 이웃국가 우즈베키스탄의 Tuti Yusupova 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일종의 One-upman-ship(한 발 앞서기)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기록의 역사가 짧고, 문맹률이 높은 지역에서 하나라도 더 우월하기 위해 가끔씩 있는 일이라고.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슈퍼센터네리언은 없다. 우리나라 역시 출생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국가 중 하나이며, 슈퍼센터네리언이 되는 것 자체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 서울대 박상철 연구팀을 필두로 노인학(Gerontology)에 관한 연구가 빛을 봤을 때, 슈퍼센터네리언에 대한 언급이 시작될 뻔했으나 곧 흐지부지해졌다. 대신 주민등록 상이라도 최고령자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면 선거철을 노리면 된다. 투표 독려 차원에서 각 지역별 최고령자의 투표 행사 광경을 보도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사실 슈퍼센터네리언 등록하는 방법보다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할 것이다. 거기에 대한 답은 정말 없다. 다만 슈퍼센터네리언들 중 높은 확률로 가족들 대부분이 센터네리언(100세)에 가까이 산 전력이 있으며, 여성이다(유전자&성별). 소식少食을 하는 경우가 많으나 월터 브류닝Walter Breuning도 114세로 죽기 35년 전인 80세 즈음부터 시작했다. 그는 시가를 즐겼으나 103세에 비싸서 관뒀다고도. 115세를 일기로 떠난 거트루드 베인스Gertrude Baines는 건강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계란과 베이컨을 즐겼다. 개인적으로 의외로 자주 봤던 이유들 중 하나는 virginity를 유지한 것이었는데, 반대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자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113세에 세상을 뜬 헨리 알링햄Henry AllinghamHenry Allingham은 장수 비결로 거친 여자를 꼽았다. 공통점이 정말 없다.


고로, 단순히 오래 사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그저 현재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조언으로 끝맺을 수밖에:)

 

참고,

The telegraph, 'Oldest woman in the world' about to turn 130, 25 Mar 2009 https://www.telegraph.co.uk/news/worldnews/asia/kazakhstan/5046448/Oldest-woman-in-the-world-about-to-turn-130.html


Rober Young 외 4명(2010). Typologies of Extreme Longevity Myths. Current Gerontology and Gerlatrics Research Novemb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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