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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Mar 02. 2019

얼굴을 파는 가게: The Tin Nose Shop

프랜시스 우드와 안나 콜먼 래드의 1차 세계대전 병사들을 위한 마스크샵 

1915년 9월 29일. 제1차 세계 대전의 포화 속에서 찰스 빅터(Charles Victor)는 그에게 날아오는 수류탄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앞에 터진 수류탄의 파편들은 그의 얼굴과 등에서 흩어졌다. 몇 번의 수술 끝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성형수술이 이제 막 기지개를 켰을 무렵, 얼굴 잃은 병사들은 전쟁의 잔재를 그들의 얼굴에 아로새긴 채 일상으로 복귀해야 했다. 의학에 기댈 수 없는 처지. 찰스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병사들을 위한 샵이 파리의 적십자 병원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늑한 분위기, 제 집 같은 편안함을 간직한 샵에서 여주인이 그를 맞았다. 코코아를 즐겨 마신다는 그녀는 그에게 티를 권하기도 했고, 담배도 자유롭게 피라며 격려했다. 저 멀리 미국 땅에서 건너왔다는 외국인 여자였지만 따듯한 분위기와 환영 속에서 찰스는 안정을 찾았다. 다만, 이 샵이 다른 가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선반대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진열돼 있다는 점이었다.

안나 콜먼 래드가 운영했던 얼굴 잃은 용감한 자를 위한 샵 (출처: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개인에겐 상처만을 남겼던 제1차 세계대전

1914년에 발발하여 1918년에 막을 내린 제1차 세계 대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여러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전쟁은 의학 쪽에서도 나름의 의의가 있는 전쟁이었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전 전쟁들보다 부상당한 병사들을 살릴 확률을 높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당장 병사를 생사의 늪에서 구하기는 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영국에서만 60,500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얼굴과 눈에 손상을 입었고, 사지 중 하나 이상이 잘린 사람도 41,000명에 달했다. 켄트에 얼굴을 다친 병사들만을 위한 병원이 따로 설치되고, 성형수술학의 아버지 격인 해롤드(Herold Gilles)가 환자들의 피부조직을 약간이나마 되돌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얼굴을 다친 젊은이들은 전쟁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먼저 그 자신부터 전쟁 이전에 비해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졌다. 변해버린 얼굴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흉하게 변해버린 얼굴에 적응하지 못하고 슬퍼하기만 했으며, 그 외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공포감을 느꼈다. 실제로 얼굴의 절반이 날아가버린 한 영국 청년은 자신의 얼굴에 어머니가 놀랄까 봐 2년 동안이나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고도. 영국 정부는 얼굴을 잃은 병사들이 일상에 복귀하기 어렵다고 판단, 평생 연금을 줄 정도로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영국 조각가 프랜시스 우드는 The Tin Nose Shop을 통해 얼굴 잃은 병사들을 도왔다
의학으로 안되면 예술로, 프랜시스 우드의 The Tin Nose Shop

이때 조각가 프랜시스 우드(Francis Derwent Wood)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성형수술로 회복이 되지 않은 병사들을 위해 마스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의견은 곧 받아들여졌고, 1915년 4월 왕립 군의대(Royal Army Medical Corps)에 들어간 그는 첼시 예술가 클럽의 사람들과 함께 조그만 샵을 연다. The Tin Nose Shop. 얼굴 잃은 병사들을 위한 선택지가 그로 인해 하나 늘었다. 


그의 작업 목표는 전쟁 이전의 얼굴을 최대한 복원하는 것이었다. 환자에게 얼굴의 특징을 듣기도 했고, 연인이나 가족으로부터 그의 사진을 제공받기도 했다. 마스크 제작과정은 수술이 최종적으로 끝난 환자의 얼굴을 석고 형태로 따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다음 그가 잃은 신체부위인 코나 뺨, 턱과 같은 부위에 맞춰 석고 모형을 변형시킨다. 대게 동으로 만들어질 이 마스크는 은으로 코팅되고, 환자의 피부색에 맞게 칠해졌다. 눈을 잃은 환자를 위해선 그 부분을 비워놨다. 눈썹이나 속눈썹은 진짜 털을 이용 하여 실제의 그것처럼 재현하였다. 각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마스크는 완벽하게 그의 얼굴이 복원했다고 보긴 힘들지만 그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는 데엔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구리 조각을 얼굴에 이고 살아야 했기에 큰 불편함은 감수해야 했다.

파리에 프랜시스의 The Tin Nose Shop의 분점(?)을 낸 안나 콜먼 랜드
병사들을 돕기 위해 대서양을 건넌 조각가 안나 콜먼 래드

191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랜시스는 그의 작업과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미국 보스턴에서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던 안나 콜먼 래드(Anna Coleman Ladd)에게도 전해진다. 당대 미국의 여성들 역시 제1차 세계 대전에 관심이 많았으며 돈이라든지 물품이라든지 지원을 하려 했다. 안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곧장 파리로 날아갔다. 그리고 적십자에 요청을 해서 병원 근처에 프랑스 병사들을 위한 The Tin Nose Shop을 오픈한다. 상세 작업과정은 프랜시스에게 물어 파악했고, 3-4명 정도의 조각가들이 그녀의 일손을 도왔다.


그녀는 마스크 작업에 앞서 병사들이 편하게 그리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코지한 분위기와 가정집 같은 가구 그리고 다과세트. 흡연도 자유로웠기에 병사들은 적십자와의 연관성은 찾을 새도 없이 여유와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환자들을 '얼굴 없는 용감한 자들'이라 불렀던 그녀는 환자들을 진정으로 존중했다. 

안나의 작업 과정이 담긴 1918년 필름

전반적인 작업 과정은 프랜시스의 그것을 따왔기에 크게 차이점은 없었다. 다만 그녀는 더 섬세했다. 단순히 환자의 얼굴을 복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가 어떤 환경에서 다닐지를 고려한 것이다. 마스크 피부톤은 비올 때 비치는 색과 해가 뜰 때의 색의 중간 정도로 칠해져 어느 날씨에서나 이질감이 없도록 했다. 또 보다 자연스러운 얼굴이 되도록 상처부위를 가리는 방법도 생각해냈다. 눈과 눈 사이에 해를 입은 피부조직을 위해 안경을 씌우고, 인중이나 턱 부분은 콧수염, 턱수염을 더해 연출했다. 이렇게 마스크 하나하나를 만드는 데엔 한 달이 꼬박 걸렸다.

얼굴 잃은 용감한 자들을 위한 작품들

제1차 세계 대전이 막을 내리자 The Tin Nose Shop도 문을 닫아야 했다. 정부의 지원이 중단된 것. 안나의 경우엔 적십자의 지원이 중단됐다. 원조인 프랜시스가 마스크를 얼마나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안나는 100개 후반 정도를 만들었다. 얼굴 잃은 병사들을 위한 프로젝트는 이렇게 전쟁과 더불어 끝이 났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고, 일부 병사들은 그 상처를 안은 채 평생을 사아야 했다. 프랜시스와 안나는 그들에게 평범함을 선물하기 위해 마스크를 만들었고 상처 입은 병사들은 일상으로 돌아간 듯한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감사의 말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젊은 병사는 안나에게 덕분에 집을 갖고, 자신의 얼굴에 실망할 수도 있었던 약혼녀와 결혼하게 됐다고 했다.


서론에 소개했던 얼굴 잃은 병사 찰스 역시 1919년 크리스마스, 안나에게 감사의 편지를 남겼다.

"가엾은 프랑스인과 그의 조그만 가족들이 진정으로 비는 감사를 받아주세요. 해피 뉴 이어"


참고,


(학술논문)


David M. Lubin(2008) Masks, Mutilation, and Modernity: Anna Coleman Ladd and the First World War. Archives of American Art

Suzannah Biernoff(2011) The Rhetoric of Disfigurement in First World War Britain. Soc Hist Med 2011 Dec; 24(3) 666-685


(기사)


Allison Meier (September 8, 2016) The Sculptor Who made Masks for Soldiers Disfigured in World War 1. Hyperallergic

Caroline Alexander (2007), Faces of War; Amid the horrors of World War 1, a corps of artists brought hope to soldiers disfigured in the trenches, Smithsonian Magazine.

David Friend (June 4, 2014) World War One: Soldiers helped at Wandsworth 'Tin Noses Shop'. BBC.

Kelly Quinn (November 10, 2014) Anna Coleman Ladd: an artist's contributions to World War 1. Smithsonian 

Michael E. Ruane (September 22, 2014) An American sculptor's masks restored French soldiers disfigured in World War 1. The Washington Post

Olga Khazan (August 4, 2014) Masks: The Face Transplants of World War 1. The Atlantic


(다큐멘터리)


Fabien BéziatHugues Nancy(2014). ELLES ÉTAIENT EN GUERRE 1914-1918


(인터넷)


npr (September 25, 2014) One Sculptor's Answer TO WW1 Wounds: Plaster, Copper and Paint. https://www.npr.org/2014/09/25/351441401/one-sculptors-answer-to-wwi-wounds-plaster-copper-and-p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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