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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Mar 02. 2019

영혼의 메신저, 강령술사 폭스 시스터스

낯선 그녀들의 역사 #4. 최초의 강령술사 폭스 시스터스의 일대기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죽은 자가 어둠에 노크를 한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으니

휘몰아치는 죽음의 강은 밝게 빛나고

그 물결의 광채는 부드럽도다

- 강신론자 엠마 루드 터틀(Emma Rood Tuttle), "영혼의 노크", 1880

강령술사 폭스 시스터스. 마가렛, 케이트 그리고 리아
평범한 가정집에서 들리는 괴이한 노크 소리

강신론자들(Spiritualists). 이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 강령술사들이 주장하는 사후세계는 인간사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특정한 방법을 통해서 죽은 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었고, 1848년 3월 31일 영국 하이즈빌(Hydesvile)의 한 가정집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이 가정집에는 3달 전 이사 온 한 가족이 있었다. 이들은 존과 마가렛 폭스(John&Margaret Fox) 부부의 가족. 슬하에 여섯 명의 자녀들이 있었다. 장남인 데이비드는 28살로 분가하였고, 딸 리아(Leah, 1814년생)도 마찬가지였다. 리아는 남편을 따라 로체스터(Rochester)로 갔으나 곧 버림받았고, 10대 때부터 홀 엄마로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자녀들을 키우고 있었다. 또 존과 마가렛 부부에게는 두 딸인 마가렛 "매기"(Margaret "Maggie", 1833년생)와 케이트(Kate, 1837년생)가 있었다. 한 명은 일찍이 죽었다.


다시 3월의 하이즈빌로 돌아가자. 두 딸과 살고 있는 존과 마가렛 폭스 부부는 딸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그들 방으로 달려갔다. 딸들은 귀신을 본 것처럼 침대 위에서 몸이 굳은 채로 침대 위에 꼿꼿이 서 있었다. 딸들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침묵의 순간.


똑... 똑..


누군가 노크를 하는 듯한 소리였다. 딸들은 벌벌 떨면서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노크 소리는 이 순간에도 이어졌고, 아빠는 밖에서 엄마는 안에서 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애썼다. 그들이 내린 소리의 진원은 벽과 벽 사이.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소리였다. 공포스러운 소리는 자정까지 계속되었고, 딸들이 잠에 들면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다시 울리는 것을 반복했다. 수 일째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가족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참이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노크 소리는 점점 강해지고 딸들은 정체불명의 차가운 손길을 느끼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노크 소리가 들렸던 하이즈빌의 폭스 시스터스 하우스
하이즈빌에는 말이 통하는 귀신이 있다!?

그러다 케이트가 노크 소리가 뭐든지 간에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케이트가 허공에 "날 따라 해 보세요!"라 외치며 박수 두 번을 치자, 곧이어 노크 두 번이 울렸다. 폭스 시스터스와 영혼의 대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가족들은 노크 대화를 통해 영혼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대개 Yes면 노크 2번 이런 식이었다. 노크의 정체는 5년 전 이 집에서 살해당한 31살의 한 청년. 폭스 부부는 이 기괴한 장면을 이웃들에게 알리기로 하고, 곧 이웃들도 영혼들과의 대화에 동참하게 된다. 이웃들은 청년과 노크 대화를 통해 이전 집주인인 존 벨(John Bell)이 청년의 300달러를 노리고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고소한다. 하지만 증거는 영혼의 노크소리뿐이었고, 고소는 기각된다.


이 괴랄스러운 소식은 곧 언론에 퍼져 하이즈빌의 폭스 하우스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게 된다. 매일같이 방문객으로 넘쳐나자 폭스 가족은 분가해 살고 있는 데이비드 집에서 잠깐 머무르기로 한다. 그러나 노크 소리는 데이비드의 집에서도 계속됐다. 영혼들의 노크는 마가렛과 케이트 폭스를 따라다니는 듯했다. 동생들에게 영혼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들은 리아는 이 불상의 노크 소리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동생 케이트를 로체스터로 데려가 영혼과의 대화를 빌미로 돈벌이를 하기로 작정한다. 이때 그녀를 데려가는 보트에서도 노크소리는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노크 소리가 매기 주위에서도 들리는 현상이 이어지자 매기와 어머니도 로체스터로 합류한다.

"여기 귀신이 있다면 노크 두 번 해주시겠습니까?"
인기폭발, 폭스 시스터스의 강령술 모임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소녀들에 대한 소식은 로체스터에도 퍼져 이름난 상태였다. 이에 리아는 동생들을 메인으로, 강령술 모임을 열었다. 로체스터의 명망 있는 사람들이 참여한 자리였다. 모임은 원목 테이블에 케이크와 티를 올린 상태로 진행됐다. 초대받은 영혼은 모임에 참여한 한 부유한 부부의 죽은 딸이었다. 사람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테이블과 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기와 케이트의 주위에 죽은 딸이 찾아온 것이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노크 대화를 통해 딸이 남편에게 살해당했음을, 신이 존재함을, 섣불리 상상할 수 없는 천국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강령술 모임은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영혼과의 대화에 환호했고, 모임을 구경하기만 해도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중 폭스 시스터스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모임은 1848년 11월 14일에 열렸다. 입장료는 명 당 25센트. 수 백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폭스 시스터스는 트레이드 마크인 원목 테이블에 앉았다. 곧 조명이 희미해지고, 침묵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러다 한 사람이 영혼이 여기 있냐고 묻자 Yes를 가리키는 노크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수 백 명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는 영혼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추종자들은 환호했고, 회의론자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비웃었다. 하지만 여자들이 폭스 시스터스의 몸에서 위조의 흔적을 찾아내려 해 봐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거지?"
노크 소리와 함께 해외진출에 성공하다

로체스터에서 꽤 쏠쏠한 돈벌이를 이룩한 폭스 시스터스. 1850년 욕심 많은 리아 폭스는 노크 귀신들로 더 큰돈을 벌어보고자 동생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녀들은 바넘 호텔(Barnum's Hotel)의 응접실에서 강령술 집회를 열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한다. 이 소식은 백악관에도 들어갔다. 당시 대통령은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 재임: 1853~1857). 대통령의 가족은 때마침 2명의 자식을 잃어 슬픈 상태였다. 특히 기차에서 목재들이 떨어지는 바람에 죽음을 당한 11살 아들 베니(Benny)에 대한 그리움으로 영부인 제인 애플턴(Jane Appleton)은 하루가 다르게 슬퍼하고 있었다. 때문에 제인은 베니와 대화를 해보고자 폭스 시스터스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인다. 백악관의 체면상인지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지만 매기가 베니를 소환했고, 베니는 엄마를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폭스 시스터스의 강령술 집회는 많은 추종자를 양산해냈다. 1860년대의 남북전쟁으로 많은 젊은이가 사망하자 그들의 어머니, 부인, 딸들을 위시한 가족들은 전사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싶어 했고, 강령술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들 추종자 중에는 신문사 뉴욕 트리뷴(New York Tribune)의 편집자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y)도 있었다. 강령술에 집착한 그는 폭스 시스터스를 집으로까지 초대하였다. 그리고 친구들도 불러들여 사후세계의 증거가 여기 있다면서 폭스 시스터스를 치켜세웠다. 그는 1872년 죽을 때까지 폭스 시스터스를 따랐으며, 죽는 순간에도 폭스 시스터스에게 죽음을 준비할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노크 소리 하나로 큰돈을 끌어당긴 폭스 시스터스
돈 냄새와 함께 넘쳐난 강령술사들

열성적인 추종자들이 생겨나자 자연스레 폭스 시스터스의 지갑도 두둑해졌다. 그녀들의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선 한 사람당 1달러가 필요했는데, 현재 가치로는 약 16000원 정도. 한 집회 당 30명에, 하루에 3번을 했으니 하루에 약 170만 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폭발적인 인기라서 매번 30명 정원이 다 찰 정도였다. 한편 바빠진 노크 귀신들 역시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소환에 응해줬다. 그리고 각종 희망적인 메시지도 남겼는데 노예 폐지론자들에게 강령술이 개혁에 기적을 행할 것이라는 말을 남겨 힘을 북돋워 주기도 했다.


하지만 돈벌이에 영원한 독점은 없는 법. 폭스 시스터스를 표방한 강령술사들이 여기저기서 돈벌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단순히 노크로만 존재를 알리는 노크 귀신들보다 더 활발한 귀신들을 불러들여 손님들을 끌어모았다. 가구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으며, 펜도 없이 외국어로 쓰인 글귀들이 생겨난다든지. 온갖 트릭과 다채로운 영혼들이 난무했다. 위기감을 느낀 케이티 폭스도 더 재능 있는 영혼들을 섭렵하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손을 안 대고 쓸 수 있는 필기법이나 그림을 그리는 귀신들을 초빙하였다. 또 경쟁 강령술 집회에 잠입하여 본인들 집회에 힘을 보태고자 했는데 귀신 들린듯한 누드쇼라서 질색을 하기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강령술 집회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매기 폭스, 변심하다

한편 매기는 당시 아메리카의 영웅 엘리샤 케인(Elisha Kane)*과 사랑에 빠졌다. 엘리샤 케인은 류머티즘열을 앓아 몸이 불편했지만 탐험가로 북극을 누비며 이름을 알렸다. 몸이 불편하자 오히려 두려움이 없어지는 케이스였고,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안고 있었다. 가톨릭교도였던 그는 강령술 집회엔 믿음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지만 매기 폭스에게 한눈에 반해 매일같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13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맏누이 리아 폭스는 그녀의 돈벌이가 결혼으로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매기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혼인은 오래가지 못했다. 몸이 약했던 엘리샤 케인이 37세로 요절해버린 것이다. 열렬히 사랑했던 신랑이 세상을 뜨자 매기는 강령술에 회의를 갖기 시작한다. 가톨릭교도였던 남편의 뜻을 이어받고 싶었던 것이다.


북극 탐험으로 이름을 알렸던 엘리샤 케인. 정작 그 자신의 유리몸을 버티지 못해 37세를 일기로 요절한다

엘리샤가 죽자 리아는 매기에게 다시 강령술에 참여하라고 타이른다. 하지만 가톨릭으로 전향한 매기에게 강령술은 이단이었고 둘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 결국, 1888년 10월 21일 매기 폭스는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폭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기 폭스의 중대 발표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홀에 모였다. 매기는 그간 있었던 노크 귀신들이 사실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매기 폭스가 털어놓은 노크 소리의 정체

노크 영혼이 처음 부름에 응한 날짜는 3월 31일로 만우절 전날. 매기와 케이티는 마음 약한 어머니를 골려주고자 끈으로 사과를 묶어 지하에 설치한 후 끈을 조절하여 똑, 똑, 똑 소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스케일이 마을 전체로 커지자 어린 자매들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곧 그녀들은 발목 관절을 꺾으면 똑, 똑, 똑 소리가 나는 것을 발견했고 그날부로 훈련에 돌입하여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는 관절들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매기는 이를 증명해보고자 그녀의 발목을 직접 보여주면서 직접 똑, 똑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간 성실하게 집회에 참여해준 노크 영혼들이 사실은 자매들의 발목관절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강령술 추종자들은 사기당한 것에 분노했다. 하지만 과욕의 리아에 시달리는 것에 지겨웠던 매기와 케이티는 속이 다 후련했다. 만우절 장난으로 비롯된 발목관절 쇼로 40년을 벌어먹었던 강령술사로서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Mrs. Fox Kane's Big Toe' 1888년 10월 22일 시카고 트리뷴에 실제로 실린 기사
대사기극의 끝맺음

40년 해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낸 매기와 케이티. 하지만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시련뿐이었다. 발목관절 고해성사 덕분에 그녀들은 강령술 집회를 더는 진행할 수 없었고, 그 외에는 생계유지를 위한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에 그녀들은 배고플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매는 술독에 빠졌다. 몇 년 후 강령술로 돈벌이를 다시 해보고자 매기는 고백을 철회하기도 했다. 그녀의 변명은 노크 귀신이 쉬고 싶어서 그렇게 시켰다는 것. 하지만 대중은 두 번 속지 않았다. 그 여파로 매기와 케이티는 술로 건강을 해쳐 1893년과 1892년에 60세와 5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고해성사가 있고 난 뒤 5년도 채 안 돼서였다. 한편 나이 차가 많았던 리아 폭스는 충분한 돈을 벌어들인 후 1890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다.


폭스 시스터스들이 영혼 귀신들을 따라 하늘로 간 지 10여 년 후. 1904년 강령술의 발원지인 하이즈빌에서 노닐고 있던 꼬마들이 의문의 뼛조각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곧 폭스 시스터스의 진위를 다시금 의심하게 된다. 노크 소리는 발목 소리가 아니라 정녕 귀신들이었단 말인가. 의사들이 뼈 감정에 나섰고 실제 사람의 뼈임을 확인했다.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실제로 '귀신이 있다'와 '영악한 폭스 시스터스가 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지어냈다' 등 사람들은 이리저리로 나뉘었다. 하지만 다른 의사가 재감정에 나섰고, 사람의 뼛조각이긴 하지만 치킨의 뼈도 섞여 있다면서 이웃이 장난으로 숨겨놓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폭스 시스터스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각주,* 엘리샤 케인은 탐험가이자 해군 군의관으로 직접적으로 북극 탐험에 나서진 않았다. 대신 북극에서 조난당한 존 프랭클린 경(Sir John Franklin)을 구출하기 위해 2차례 모험에 나섰다. 류머티즘을 앓아 몸이 약함에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용기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구출의 결과는 프랭클린 경의 첫 번째 베이스캠프를 발견하긴 했지만 그들의 흔적을 찾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참고,


(기사)

The Sisters Who Spoke to Spirits, Ada Calhoun(narratively, Setemper 2, 2015)

The Fox Sisters and the Rap on Spiritualism, Karen Abbott(Smithsonian, October 30, 2012)

Mrs. Fox Kane's Big Toe, (Chicago Tribune, October 22, 1888)


(논문)

A Skeleton's Tale: The Origins of Modern Spiritualism, Joe Nickell(Skeptical Inquirer Volume 32.4, 2008)


(도서)

The Death-Blow to Spiritualism: Being the True Story of the Fox Sisters, Davenport, Reuben Briggs(Forgotten Book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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