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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ng Oct 05. 2020

술, 그게 뭐가 좋다고  

술에 관한 이야기

 그때가 9월 중순쯤 되었나 싶다. 일 끝나고 집에 오는데 너무 지쳐서 배도 안고픈데 술은 당겼다. 맥주 딱 한 캔만 먹고 술기운에 자야겠다 싶었다. 남편이 술을 먹을 수만 있다면 편의점에서 만원 주고 4캔을 사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남편은 알코올 한 방울도 섭취를 못한다. 후다닥 씻고 잘 준비를 마친 후 집 앞 슈퍼에서 산 맥주를 거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술은 언제나 첫 모금이 제일 맛있다. '역시 이 맛이지!'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시원함에 절반 정도 마셨을까? 갑자기 오른쪽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믿고 살아왔던 나인데, 고작 맥주 반캔에 편두통까지 올 일인가 싶었다. 남은 반캔을 싱크대에 부어 버리고 내가 많이 피곤하구나 생각하며 잠들었는데 다음날까지 머리가 아픈 탓에 덜컥 내 몸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이 30이면 제2의 인생 시작이라고 한참 젊은 나이라고들 말하지만 그날 나는 이제 사려야 하는 나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체력이 거지(?) 체력이라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내 20대와 비교해보자면 예전 같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뭐랄까.. 좀 서글퍼진다. 스스로 고작 30에 유난이라고 생각도 들지만 친구들 만나면 꼭 한 번씩 들리는 말이 "야 우리 이제 30이야 예전 같지 않아" 이 말이다. 아마 40이되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술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술보단 술자리의 그 즐거운 분위기가 좋았다. 술 하면 생각나는 나의 리즈(?) 시절은 대학시절로 학교 동아리 활동과 아르바이트 딱 이 두 곳에서 많은 흑역사들을 만들었다. 내 주량은 최대 소주 1병밖에 안되는데 늘 분위기에 취해서 주량을 넘기곤 했다. 만취상태로 잠들면 왜 꼭 다음날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지는지 모르겠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내가 어떻게 집에 왔지부터 시작해서 몸 어딘가는 왜 아플까 원인을 찾아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조각난 기억은 맞춰본 적이 없다. 그래도 다음날 뜨끈한 국물만 챙겨 먹으면 오후 2~3시 즈음이면 멀쩡해졌고 '내가 젊긴 한가 보네'라고 기고만장했던 날들이 있었다. 


 사실 이제 술 좀 그만 먹어야겠다 라고 생각할만한 사건은 없었다. 취업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술자리도 뜸해지고 점차 안 먹게 되었을 뿐이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술은 나쁜 기억, 부정적인 감정들을 위주로 생각나게 한다. 분명 시작은 즐거웠는데 끝이 찝찝해서 그런 게 아닐까?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 술이 긍정적인 생각을 나게 했다면 지금 나에게 더 나쁜 일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동생도 만취상태로 남의 집 거실에서 대자로 뻗어 잔 이후 술을 거의 끊었다. 왜 사람은 직접 호되게 당해봐야 아는 걸까... 


 추석 때 친정에서 저녁을 먹으며 엄마와 나는 막걸리 한 잔씩 먹었는데, 집에 와서 또 머리가 아팠다. 멀쩡한 엄마를 보자니 창피해서 차마 나 머리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반찬을 이것저것 많이 싸주신 덕에 짐이 많아 아빠 차를 얻어 타고 왔는데 엄마가 내일도 할머니 댁에 반찬 가져다 드려야 한다면서 가방을 다시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며 반찬 정리를 하려고 냉장고를 딱 열었는데 지난주에 지인이 집에 들르면서 사다 준 4캔짜리 편의점 맥주가 눈에 띄었다. 먹을 엄두가 안 나서 쟁여만 두고 있었는데 이때다 싶어서 엄마한테 다 줘버렸다. 어쩜 그리 홀가분하던지! 엄마가 놀라며 물었다. 


"어머 너 이거 왜 안 먹니? 나 줘도 되는 거야?"

"어어 빨리 가져가 나 안 먹어"


 엄마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다가 혹여 내가 맘이 바뀔까 후다닥 가방에 챙겨서 가셨다.(우리 엄마는 맥주를 좋아한다.) 우리 집에 이제 알코올은 없다. 맘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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