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은 감정의 전달이며 소통의 시작
엊그제는 남편과 소소한 다툼이 있었다.
내가 평일에 외식을 많이 한다는 탓이다.
내가 건강하게 집밥을 먹기를 바라는 남편이
외식을 줄이라는 말을 처음 내뱉은 것은 아니다.
나도 수긍하면서도 바뀌는 건 쉽지 않았다.
평일에 나를 돌봐주는 내 친동생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은 매우 즐겁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즐겁고 다 먹고 나면 내일은, 그다음 날은
무얼 먹을까 얘기하는 시간도 즐겁다.
나는 환자이기에 남편이 아침마다 건강식을 차리고
출근한다. 토마토, 오트밀, 블루베리, 바나나, 두유
이렇게 쭉 먹어온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지만 좋은 습관이 든 것은 좋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원래 하던 대로'의 의미도
있지만 '만들어진'의 의미도 뜻할 수 있으므로
나의 아침은 만들어진 좋은 습관이나 내가 원하는
아침은 결코 아님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하루에 한 끼는 행복하게 먹고 싶은 걸로'의
의미에 크게 집착했던 것 같다. '아침도 건강식 점심도 집밥 저녁도 집밥' 이면 하루가 참 재미없지 않은가? 난 밖에서 일도 안 하는 사람인데?
나에게 외식은 하루 중 소소한 일탈이었다. 일할 때도 그랬다. 일은 힘들어도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과 커피 한 잔은 힘이 나게 했다. 그래서 남편의 질책이 순간적으로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먹는 걸로 뭐라 하니 더 그랬다. 부모님도
뭐든 잘 먹으면 좋은 거지 라며 크게 터치하지는
않는다. 암환자들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는 게
좋으니깐. 하지만 나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먹는 것을 조금 신경 써야겠다고. 왜냐하면 살이
급속도로 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릎이
좋지 않아서 살이 찌면 무릎관절이 아프다.
하하 왜 이리 아픈 곳이 많은 건지 참. 서럽다.
아프면 서럽다. 예전에 하던 대로 하고 싶은 대로의 삶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처럼
살아갈 수가 없다. 먹는 거, 일하는 거, 여행 가는 거, 그 외 기타 등등.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이렇게 불쑥불쑥 서럽고 화가 난다.
왜 나야? 답이 없는 질문만 떠다니는 날이 있다.
내 글은 나의 희로애락을 다 보여주는 것 같다.
힘내자! 하는 글을 쓰다가도
힘들어! 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할 수 있잖아! 하다가도 우울해지는 내 모습이
웃기고 슬프다. 왔다 갔다 허둥지둥 쇼를 한다.
동생과는 평일 5일 중 최소 2일 이상은
집밥을 먹자고 약속했다. (너무 적은가? 하하)
남편과도 다시 이야기하여 화해했다.
다툼의 끝은 서로가 한 발씩 물러나며 양보하는 의미 있는 소통으로 해결한다.
"나는 모든 면에서 날마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