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좋다.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의 두려움
고2 때 피씨통신을 접하게 되었다. 파란 화면 나우누리 속에 마음에 쏙 드는 모임이 있었다. 인간이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결한 정의와 올바름에 대한 외침은 항상 나에게 매력적이었나 보다. 18살 나에게 학생의 주권과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에 홀딱 반해 있었고, 그 모임에 녹아 한 부분이 되었다. 어느새 19살 고3이 되었고, 나름 열정적인 활동들은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 “이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주변 어른들의 말을 되새기며, 다시 평범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몇 해 동안 기대했던 대학 입학을 못했다며 주변의 질타를 듣기도 했는데, 어린 나에겐 생각보다 크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득이 있었던 건, 말도 안 되는 가족들의 기대는 크게 할 풀 꺾여 부담감이 줄어들었었다.
실패보다 도전
30살이 넘으며 세상이 말하는 실패와 성공이 꼭 정답이 아니라고 느낄 때쯤. 실패를 해도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도전"했다는 뿌듯함이 더 다가왔다. 그래서 10년 동안 익숙해진 영역에서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영역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면, 남들이 바라보는 곳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남들이 걱정하는 곳이어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일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스몰스텝 1 : 글쓰기
작년엔 3달에 한 번씩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서 3편을 완성했다. 그리고 지금은 1주 한 번씩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도전"에 대한 뿌듯함에 대해 쓰고 있다. 내가 집중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씩 글을 남긴다는 것은 두리뭉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내용을 기록하며 좀 더 명확히 해나가는데 상당히 도움을 준다.
글을 쓰며 가장 좋은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이야기를 다양하게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 친척, 친구, 동료였던 분들이 우리 서비스의 예비 수요자가 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서비스에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주고 있다. 실패할 것 같아 우물쭈물하며 알리지 않는 것보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 서비스를 한걸음 나아가게 해주었다. 성공적인 시장 진입을 위한 고객 리서치라는 것이 고액의 비용이 필요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좀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 글을 쓰게 된 “좋은 공기청정기, 스스로 만들기” 글은 카카오 채널에 주말마다 노출되며 10,000회 조회수를 바라보고 있다. 결코, 두려워하거나 우물쭈물하고만 있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몰스텝 2 : 수영
수영은 30살이 넘어서야 배웠다. 9살쯤 삼촌을 따라가 수영을 배우다 물을 잔뜩 먹고 수영에 대해 공포심을 잔뜩 갖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두세 번 다시 배우기 위해 시도했었는데, 대학 수영 수업은 구멍 난 엄마 수영복을 입은 자유수영도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겨우겨우 F를 면하며 수업을 마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성적을 위한 수영 수업은 도움이 안 되었고, 수영을 할 수 없었다. 30살이 넘어, 관절이 좋지 않은 나에게 남편이 다시 수영을 권하며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장에서 물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해하며 다녔다. 허우적대도 다시 하고 숨을 쉬다 물을 먹으면 잠시 쉬다 그렇게 6개월 지날 때쯤 자유형을 하며 숨을 쉴 수 있었다.
요즘은 주말에 수영장에 가는데, 빠르게 물살을 가르기도 하고, 느릿하게 여유 부리며 배영을 하기도 한다. 레인 끝에서 쉴 때는 말도 안 되는 춤을 추며 남편과 노는 게 즐겁다. 여러 번 도망쳐도 다시 돌아와 수영을 배운 내가 기특했다.
스몰스텝 3 : 프런트 개발
자바스크립트는 대학 때 인터렉티브 디자인을 좋아하며 시작하게 되었다. 웹사이트 제작일을 동아리에서 하다 보니, 자주 개발 관련 이슈를 해결해야 했다. 선배가 대신 해결해주던지, 복붙 하는 수준에서 마감되었다. 그러다 회사 입사 후 전문인력이 있음에 감사하며 디자인에 올인하게 되었다. 디자인만 해도 되겠네 안도하는 순간, 프런트엔드 개발까지 하는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몰라도 먹고사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배워야 하나 불안함을 안고 있었다. 기초적인 html과 css, js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작업을 하는 과정은 나에게 즐겁지 않았고. 찾아서 하지 않았다.
창업을 한 뒤, 다시 개발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게 되었다. 하루빨리 오픈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느린 이해와 작업 속도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디자이너 치고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는 나지만 너무 많은 과제가 밀려와서 좌절을 느끼는 시기가 아주 자주 찾아온다. 정말 마음의 허들이 대단하다. 순식간에 동아리 골방에서 우울해하던 20대 초반의 나로 되돌려둔다. 인생의 조력자인 남편은 나를 혼내기도 기다려주기도 하며
천천히 해보자고 제안해주었다. 그후 심신의 안정을 찾고 다시 배움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제 html과 css를 반복하며 다시 보기 시작했고, Sketch App을 실행하기보다 기획이 끝나면 바로 코딩을 한다. 프로세스가 정말 줄어들었고, 더 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그래도 2-3페이지 작업을 마친 상태니... 아 기특하구나.
실패의 미덕
어릴 적 꿈꿨던 당돌한 도전을 다시금 시도해보고 있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도전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결국 이뤘던 작은 일들처럼 이뤄나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당장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 급한, 경쟁이 심한 시장에 대응하기엔 더디게 걸어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사실 다른 방도는 없다. 도전하고 부딪히는 것밖에.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내실을 단단히 하여 외풍에도 견뎌나가는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우리만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다운 행동들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배우기로 마음먹고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한 뒤로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가득한 하루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몰스텝을 통해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큰돈이나 대단한 명성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꾸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삶이다.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 철학을 가지고 사는 삶이다. 나답게 사는 이들은 음식 하나, 책 한 권, 모임 하나를 나가더라도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 더 많은 경험을 한다. 타인을 존중하지만 맹목적으로 따라가진 않는다. 이런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실천과 경험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그것도 오랜 기간 쌓인 ‘축적의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공부처럼 삶에도 왕도는 없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실천할 수는 있다. 그것이 바로 스몰 스텝이다.
- 박요철 [스몰스텝]
패배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 이 모순된 말에 인간 존재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하면 성공했을 때보다 현실을 더 잘 알게 된다. 현실은 절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모든 각도에서 살펴보고 질문한다.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비상할 발판을 찾는 것이다.
키플링은 패배와 승리를 ‘두 거짓말쟁이’라고 지칭한다. ‘패배’와 마찬가지로 ‘승리’도 우리를 그 이름으로 정의 내리고 축소하고 옭아맬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배는 우리를 패배자라고 믿도록 속인다. 승리는 한순간의 성공 또는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이미지를 진짜 우리 모습이라고 착각하도록 속인다.
- 샤를 페팽 [실패의 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