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이 아닌 내가 쓸 서비스
변화
임신을 확인한 건 3월 말이었다.
그때 창업 후 주 7일 출근을 하며 2달을 갓 넘기고 있었다.
하나에만 집중되어 있던 몸 컨디션이 들쭉날쭉 변했다. 졸음이 쏟아지고, 먹는 대로 체하고 먹지 않으면 메슥거리었다. 밤만 되면 코가 막혀 괴로웠다.
임신 초기 입덧으로 실제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시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3주를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떤 변화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출산, 육아책을 읽어보았다. 입덧은 시작이고, 이후 나에게 닥칠 다양한 변화에 나의 계획이 수정되야했다.
역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추가 변화
임신과 함께 3주의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여성들이 많이 생긴다는 5cm의 난소혹이 함께 발견되어 종양 의심을 받게 되었다. 경과가 좋지 않을 경우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의사선생이 무심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르신 돌봄 서비스를 생각하며 존엄사에 대해 고민했는데, 어느새 나의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 새 생명, 벌려놓은 일들, 남겨질 나의 남편... 계속 눈물이 났다. 나의 뒤처리를 맡을 가족들의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하나. 매일 그 생각을 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삶은 정말 달랐다.
다행히 3군데의 병원을 방문하여 단순 물혹이니 염려 말라는 이야기와 함께 나의 죽음의 그림자는 3주 안에 지워졌다.
타깃이 아닌 나
공감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겪지도 않은 일들을 다 알고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오만한 것이 있을까. 새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밀려오며 내가 오만했었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인터뷰나 책 읽기로 알 수 있는 타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당신에게"가 아닌 “내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일까로 질문이 바뀌었다.
안 그래도 이게 가능할까 긴가민가했던 부분이 명확하게 맞고 틀리고도 나뉘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는 돈으로만 엮인 분에게 내 부모,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내 소중한 이를 나는 맡기기 힘들다. 인터뷰 대상이었던 유치원 교사 지인이 왜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는지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왜 미혼자식이 고령부모를 떠안게 되는지 공감하게 된다. 필드에 있는 전문가들도 지금 시스템으론 내 소중한 사람을 맡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떤 서비스라면 가족처럼 맡길 수 있을까.
마음을 다한다는 건
지금 돌봄 시스템은 꾸준히, 마음을 담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돈 받은 만큼 티 나지 않게 치고 빠지면 된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돌보미여도 자신을 파출부로 부리거나 하대하는 경험을 축적해왔다면 그 상황에 염증을 느껴 좋은 돌보미분들은 그 인력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요는 있고, 정부지원금은 있으니 돈이 급한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시장구조일 것이다.
리서치 중 대정 요양병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드림호스피틀 인증을 받은 병원이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었다. 낙후된 요양원, 요양병원 홈페이지와 뉴스만 보다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하루를 꼬박 그 홈페이지 콘텐츠를 보았다. 첫 소개부터 마음에 드는데, 줄줄이 이어진 리얼 후기들은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10년 이상 의료봉사자로서, 대정 병원의 기부자로서,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손발이 되겠습니다."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즉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분이 내 부모와 아이를 돌보아 준다면
그것보다 더 믿음이 가는 것이 없을 것이다. 돈이 먼저 급한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 같다.
온전히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분들이 귀한 대접을 받으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우리가 바라는 변화된 서비스이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자라지 못할 그 새싹을 키울 수 있는 서비스의 힌트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