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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쓴다는 것

나의 삶을 다시 산다는 것.

파괴, 그리고 새로움

쉼 없이 달려온 직장생활과 바로 이어진 창업에 이르기까지.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큰 일들을 해내기 위해 애쓰던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가고 있고, 그 무리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다 보면 불현듯 불안이 나를 덮어버린다. 전문가로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이름이 지워진 엄마와 주부로 남게 될 것이라는 불안으로 말이다. 특히 30-40대 여성이 겪는 공통된 불안이 함께 몰려오면 몇 배가 되어 나를 삼켜버린다. 

집에 쌓여있는 책을 돌아보았다. 지적 허영이 많았던 나는 크고 두꺼운 책을 좋아했고, 책들을 집에 쌓아놓기 바빴었다. 그 책들이 이제야 나에게 도움을 주다니 너무 고마웠다. 너무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질문이 떠오르면 그 키워드를 통해 책을 찾았다. 도움이 되는 책은 그 내용 안에서 또 다른 새로운 책을 추천해주었고 다양한 키워드와 질문을 다시 던져주었다. 
 


느리게. 다시. 

조직생활을 접고, 1인 기업으로 2달여간 나의 컨디션에 맞춰 일하고 있었다. 자유롭게 일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 실험이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만 된다면 아이와 행복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 기대감으로 남들보다 늦게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임신이라는 것은 내 몸이 변하는 것이고, 그건 몸속 변화로 인해 컨디션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했다. 원래 뛰던 속도로 뛰지 못하고, 계속 걷기는커녕 몇 번을 쉬며 아주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시간들이다. 욕심을 부려 원래의 삶의 속도로 달리다 보면 어지럽도록 빠르다고 느끼며 털썩 주저앉게 된다. 

만들어내는 일을 멈추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몸과 마음 생각을 더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무수한 질문과 키워드들을 다시 적어내고, 적어냈다.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들을 찾아보고, 활자로 된 이야기에 감성이 실리기 시작했다. 바쁘게 살았던 삶을 느리게 되돌아보며 기록했다. 다시 나의 삶을 살아보는 느낌이었다.  


거칠고, 서툴게. 

진솔한 나의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불안보다는 안정감이 마음을 감싼다. 불신보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힌다. 바로 옆에 있어 지나쳐왔던 것들을 다시 발견한다. 거칠고 서툴지만 더 재미있는 삶이다. 조금은 천천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나. 꾸준히 책 읽기와 글쓰기를 이어가야겠다. 



우선 기존의 자신에게 새로운 지식과 스킬이 더해지는 것이 공부라는 생각부터 버리기로 하자. 공부란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 오히려 생산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공부의 ‘파괴성’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 공부란 곧 자기 파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무엇을 위해 자기 파괴로서의 공부라는 무시무시한 행위를 하는가?

공부란 기존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기존의 생활 속에 마련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또 다른 ‘타임라인’이 생긴다. 기존의 생활에서 ‘겉돌며’ 존재하는 공부의 타임라인이다.

- 지바 마사야 [공부의 철학] 


저는 쓰면서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면 읽으면서만 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책이 쑥 나와요. 마치 엄마 자궁에서 작은 태생 동물이 쑥 나오듯이요. 읽으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이게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요.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을 다시 삽니다. 읽으면서, 내 삶을 시험하면서. 

음악에서도 무음으로 줄어드는 동안 준비되는 것이죠. 소리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폭발적 에너지. 이처럼 센 강도가 있어야 존재에 인상이 생깁니다. 죽음에 이르도록 강렬한 매혹 

-파스칼 키냐르, 샹탈 라페르데메종 [파스칼 키냐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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