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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스템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 : 그들의 사명감과 행복을 위한 시스템

어느 평범한 주말 오후, 고속도로 큰 사고가 났다. 친정집에 있었던 나는 여느 때처럼 크게 틀어진 티브이 소리를 흘려듣고 있었다.  그 날밤 12시쯤 나들이 갔다 돌아온 친정아버지는 사색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씻고 잠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고가 난 대형 버스에 아버지가 함께 타 있었고, 안전벨트를 한 덕에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신없던 사고 현장에서 본인도 찰과상을 입은 상태였다. 뉴스 속 이야기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였다. 이미 음주운전 전력이 있고, 이번엔 졸음운전으로 이 큰 사고를 일으킨 고속버스 기사에게 화가 났다. 그날 이후 고속버스 기사들의 졸음운전 실태를 고발하는 뉴스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운전기사분들을 욕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이가 드실수록 어르신 친구분들과 패키지여행을 다니신다. 저렴한 가격에 콧바람을 쐬고 오는 그 여행이 즐거우신지 매년 1-2번은 다니신다. 사고 이후 건강이 회복된 지금도 그 여행길을 오르기 위해 고속버스에 올라타신다. 그럴 때마다 걱정이 된다. 여러 생명을 태우고 가는 운전기사의 직업의식, 안전운전에 대한 철저한 교육,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지닌 분이 우리 부모님의 버스운전기사님이시기를 마음으로 빌 수밖에 없다.


한참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져, 고속버스 운전사 개개인에 대한 욕이 도배된 지 1년쯤 지났을까? 고속버스 운영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버스기사들 근무환경 재조명되고, 하루 16~18시간씩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실정에 과로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졸음운전으로 이어져, 큰 사고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근로시간 노사합의도 안 지켜지고, 신규 채용보다 연장 근로 임금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에 이 같은 사회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들도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일 갓이고.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한 일정. 업무. 적은 비용이 부른 참사들. 아까운 생명들의 죽음들... 그 개개인만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엄마 청소하는 거 아무도 안 알아줘도 세상에 필요한 일이야. 경찰 일도 남들이 안 알아줘도 세상에 필요한 일이야. 힘내

tvN 토일 드라마 '라이브(Live)'(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 - 
힘든 경찰일 그만두라고 했던 엄마가 징계를 앞둔 아들 염상수 (이광수) 에게 건넨 말 


전 오늘 경찰로서 목숨처럼 여겼던 사명감을 잃었다. 지금껏 후배들에게 어떤 순간에도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라. 경찰의 사명감을 가져라. 어떤 순간도 경찰 본인의 안위보다 시민을, 국민을 보호라고 수없이 강조하고 말해왔다.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했던 모든 순간들을 후회한다. 누가 감히 현장에서 25년 넘게 사명감 하나로 악착같이 버텨온 나를 이렇게 하찮고 비겁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는가.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는가. 대체 누가 가져갔는가


tvN 토일 드라마 '라이브(Live)'(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 - 

피해자와 동료를 구한 염상수(이광수)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게 된 후임을 위해 징계위원회에 참석한 오양촌(배성우)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고속버스, 지하철, 택배, 환경미화원, 경찰... 우리 곳곳에 있다. 저절로 이뤄지는 일 같지만, 곳곳의 것들이 사람들의 손이 닿아 이뤄지는 일들이고, 그 속에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쌓여간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적어도 줄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계속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분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고속버스처럼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사명감을 목숨처럼 여기던 드라마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기 전에 어떤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까?


디어라운드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돌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꼭 필요한 돌봄이라는 일. 하지만 돌보미라는 직업은 알아볼수록  능력 있고 이타심 많은 좋은 사람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경력이 많고, 전문성이 있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은 낮춰보는 인식과 저렴한 비용 책정에 돌봄 산 업을 떠나고 있다. 직업을 낮춰보는 인식,  낮은 비용, 과중한 업무, 단순 정부지원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들... 좋은 인력이 남아 있기 힘든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이득으로, 무관심으로 해결되지 않은 일들. 어렵지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는 주체가 열심히 일할 수록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과 웃으며 행복하게 살 앞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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