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고 싶은 하루, 아모르 파튀!
평생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손님들
임신테스트기를 보고 기쁜 마음으로 첫 전문 여성병원을 찾았다. 딸 하나 있는 엄마에게 소소한 삶의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의사는 우리의 기쁨을 함께 해주기보다 걱정스러운 상황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난소의 혹과 자궁의 혹들은 종양이 의심되며 안정기 이후에 추적검사가 필요하며, 산전검사 없이 생긴 나이 많은 산모의 첫 아이에 대한 다양한 우려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없을 줄 알았던 아이가 6년 만에 찾아왔고, 죽음의 그림자도 3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빠르게 돌아가던 내 인생시계는 어느새 느려지다 멈춰졌다. 엄마와 나는 아침의 밝고 즐거웠던 표정은 사라지고, 돌아오는 길은 금세 무거운 공기로 지배당하고 있었다. 엄마가 조심스레 “현주야 우리 어디 놀러 갈까?”라는 말을 건넸다. 엄마가 종양 의심으로 큰 병원을 다니게 되었을 때, 내가 엄마에게 건네었던 말이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내가 죽을 수 있구나. 이미 아이의 탄생보다 나의 소멸이 나를 어둡게 짙눌렀다.
미리 찾아온 손님, 다시 집에 돌아가다.
첫 검진이 있던 4주 차 소식을 들은 남편은 거의 초상집 상주가 되었다. 별일 아닐 거라며 꾹꾹 참던 눈물이 터져 2시간을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남아야 할 남편을 생각하며 내 눈에도 눈물이 쉴 새 없이 맺혔다. 결국 2주 동안의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대학병원으로 병원을 바꾸었다. 2-3 병원에서 초음파와 피검사만 여러 번. 뱃속의 아이 때문에 다른 검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병원 의사 선생님들의 다양한 진단을 듣게 되었다. 임신 초기 있을 수 있는 증상이며,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남편과 나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새롭게 살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임신 초기, 미리 찾아온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살아가기 위해 늘 바쁜 일상에 치였던 내게 두 손님은 다양한 변화를 선물해주고 갔다. 원래, 나의 밤은 일상의 지침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가 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인사는 자연스레 ‘요즘도 바빠?’였다. 내 주변 친구들은 모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모두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은 서로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챙기고 있는지 들여다봐주는 것이 우리만의 우정을 나누는 법이었다. 몸에 비축된 모든 체력을 하루 12시간 이상 소진해야 하던 나는 이젠, 4시간밖에 활동을 할 수 없었다. 4시간을 다 써버리면 밤새 일한 사람처럼 쓰러져 자야 했다. 평소 걷던 속도보다 훨씬 느려졌고, 내 시계는 느리게 흘러갔다. 먼저 보내는 일이 많았다. 몰아쳐하기보다 한 템포 쉬고 내 몸과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생겨났다.
바쁘게 살아가던 친구들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 후 예전엔 자연스러웠던 나의 인사말은 어느새 불편한 인사말이 되어있었다. 최근 들어, 자영업을 하는 가족들과 더 자주 인사를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바빠?’라는 인사말은 어느새 ‘오늘 매출은 잘 냈어?’라는 말로 전해졌고, 손님이 없던 그 하루를 되돌아보며 씁쓸한 미소와 우물쭈물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 살고 싶은 하루
바쁘게 살아오던 때보다 지금은 가난하다. 기존에 쓰던 쓰임새를 줄여야 하고, 새로 온 손님을 맞이하며, 생활방식이 바뀌었다. 전문가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내 삶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고, 변화된 내 삶을 사랑해야 한다. 새로 온 손님, 임신과 죽음은 오히려 내 삶을 갑자기 무겁게 했다 가볍게 만들어줬다.
새로운 문이 열렸다.
"내가 살아온 이 하루를, 다시 살고 싶다는 확신이 들도록 이 순간을 살자. 아모르파튀! "
스위스의 극작가 막스 프리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자신의 우상을 만들지 말라." 니체도 똑같이 이야기합니다.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네 존재를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낙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서 'You Should'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사자는 그렇게 결코 안 산다면서 'I Will'이라고 했습니다. 이 단계를 극복해야 비로소 어린아이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라면서 'I AM'이라고 합니다.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예술가적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니체는 "삶은 예술을 통해 구원된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예술은 삶의 예술입니다. 실존의 예술이에요.
- 이진우 [니체의 인생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