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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몸과 마음

임신 초기 증상 :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

밤 9시 30분. 혼자 치킨을 시켜먹었다. 단골집 배달이 끝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곳을 검색해 주문해 와그작와그작 먹어댔다. 그 후 2주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소와 자궁의 혹들로 무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는 잘 크고 있다는 신호를 입덧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어떤 날엔 입덧 증상이 하나도 없어, 혹시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닐까 라고 생각도 해봤다. 또, 화장실을 다녀온 뒤 단단하게 불러온 배가 흐물흐물 없어져있을 때는 혹시 변기에 빠져 없어진 건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작은 증상 하나에도 긴장하고, 깜짝 놀라 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몸에서 갖가지 신호를 보내주며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 같았다.

임신 초기 증상 1. 잠

9시간을 잤지만, 낮잠까지 포함해 14시간을 자고 나서야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원래도 잠이 많은데, 임산부의 숙면시간은... 거의 12주까지 유지되었다.

임신 초기 증상 2. 잦은 소변과 변비

5번은 화장실을 다녀와야 잠을 잘 수 있다. 외출을 했을 때도 당황스러운 상황은 지속되었는데, 5분 정도 걸으면, 화장실을 찾게 되었다.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15주 차인 자궁이 배로 올라온 지금도 유지되는 증상이다.

임신 초기 증상 3. 어지러움

잠과 함께 당황스러운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밤 6시면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고 잠을 청해야 했는데, 멀쩡하게 돌아다니다가도 뜬금없이 어지러웠다.

임신 초기 증상 4. 두통

제일 최악의 증상이었는데, 두통약도 먹지 못해 괴로운 시간을 반나절 이상 보내야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하는 약도 조심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고통과 앞머리가 쏟아질 거 같은 통증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어찌할 바 몰라하며 동동거리는 남편이 괜스레 미워졌다.

임신 초기 증상 5. 코막힘

꼭 밤이면 찾아오던 증상 중 하나인데, 코가 없어진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무리 실내 습도를 70%까지 끌어올려도 나의 코는 뚫릴 기미가 없었다.



임신을 알고 난 뒤, 그 어떠한 생산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야심 차게 들어갔던 <위워크>도 나에게는 버거운 일자리 공간이었고, 더 많이! 더 빨리! 를 외치며 돌아가는 이웃 스타트업 멤버들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몰아붙이기 위해 선택했던 공간이 몸과 마음의 짐이 되었다. 거의 1달은 그 비싼 공간을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남들은 직장생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 잘 하고 야근도 하던데... 그것보다 더 늦게 나와 일하는데도 어렵다니...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상황을 생각했나 보다 라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몸에 생기는 변화와 함께 나에게 주어진 이 공허한 시간들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뒤쳐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두려움보다 다른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쉬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하기 전에 이미 몸이 반응해서 잠을 재워줬고, 더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몸과 마음이 셋팅 되어가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점령한 독감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다. 넘쳐나는 자극에 힘겨워하며, 과로로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더욱 빠른 정보 처리 능력을 자랑하는 컴퓨터가 아쉽고, 훨씬 더 기능이 좋은 핸드폰을 갖지 못해 안달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항상 온라인 상태이어야 하고 언제 어디서라도 접속 가능해야만 한다. 무언가 놓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 뒤처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갈수록 시간은 빠듯해지기만 하고, 속으로는 휴식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처럼 두렵고 괴로운 일도 없다.

지난 세월 동안 수면 연구가, 의학자, 신경생리학자 등은 잠자며 꿈을 꾸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여기서 확인된 사실은 편안히 쉴 때 우리 몸은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활발히 활동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지만, 우리 몸은 회복과 재생 과정에 몰두하며, 동시에 기억력과 자신감, 창의력을 키우는 작용을 한다.

- 울리히 슈나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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