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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컴퍼스 Jul 01. 2020

#27. 나만 모르는 노래

프린세스 크루즈의 안전 훈련 영상. aka 러브 보트 안전훈련 영상

이제 슬슬 더워지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니 딱 작년 이맘때쯤이다. 크루즈 마니아들에게 여름 피서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 바로 알래스카. 그렇다. 작년 7월 13일 나는 여름 피서지로 알래스카를 갔었다. 프린세스 크루즈의 스타 프린세스를 타고 시애틀에서 출발해 케치칸, 주노, 스케그 웨이, 빅토리아를 거쳐 시애틀로 돌아오는 6박 7일의 일정이었다. 


글로벌 선사 대부분이 알래스카 노선을 운항을 하고 있지만, 2019년은 프린세스 크루즈가 알래스카 노선을 운항한 지 50주년을 맞이 했던 해였기 때문에 다른 선사가 아닌 프린세스 크루즈를 선택한 것이 더 의미가 있었다.  


사실 알래스카 노선을 소개하려고 쓰는 글은 아닌데 서론이 더 길어질까 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작년 6박 7일의 스타 프린세스 크루즈의 일정 중에 일어난 한 사건?으로 인해 알게 된 것들이다.  




크루즈 보딩 데이에는 배가 출항하기 전 게스트 머스터 드릴(Guest Muster drill: 승객 비상대피 안전훈련- 짧게 드릴 Drill이라고 부름)을 반드시 실시한다. 비상 알람이 울리면 모든 승객은 하던 일을 다 멈추고 즉시 자신의 시 패스 카드(Seapass Card: 방 카드)에 적힌 머스터 스테이션 (Muster Station: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승무원들의 지시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는 법, 비상시 대피하는 방법을 듣는다.  선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이 드릴(Drill) 시간이 짧게는 10분 길게는 40분까지도 소요된다. 물론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승객 입장에선 이 드릴(Drill) 시간만큼 지루한 시간은 없다. 비행기 안에서도 눈 앞에서 승무원이 구명조끼 입는 방법을 데모로 보여줘도 대부분의 승객들은 한눈을 팔지 않는가? 


그래서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이목을 끄는 안전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처럼 제작하기도 하고, 승무원이 춤을 추면서 구명조끼를 입기도 하며, 블록버스터급의 안전대피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선사들도 이 안전 훈련을 어떻게 하면 승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집중을 하고,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제임스 본드가 생각나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처럼 제작한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의 선내 안전 영상


역시나 프린세스도 꽤나 획기적인 방법으로 안전 훈련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의 캡틴이 승객 안전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희망찬 음의 BGM이 깔리고 크루즈의 캡틴, 바텐더, 의사, 객실 청소 직원을 소개한다. 여기까진 "음, 뭐 평범한데?" 싶다. 그 뒤로 갑자기 "여러분의 러브 보트 직원들"이라는 화면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배우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소개된다. 하지만 화면 속의 그들의 직업은 배우가 아닌 크루즈 디렉터(Cruise Director), 캡틴 (Captain),  의사다. 그 후 그 배우들이 승객들에게 대피방법을 설명해주며, 안전을 강조하였고, 영상의 구성이 마치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시트콤 같은 안전 훈련 영상 뒤에 깔린 배경음악이 나는 신의 한 수 같았다. 마치 추억의 포크송을 듣는 느낌이랄까. 그 포크송에다 안전 훈련의 내용을 가사로 담았다.  

Safety, It's important to review.       
Listen Close, We need you to
You will love Your time while onboard
for a few minutes,  watch our video
It's Safety~~
Soon we will all be having fun
But right now, 
This must be watched by everyone 


노래가 쉽고 느려서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된다. 크루즈 끝날 때까지 내내 내 머릿속에 "It's Safety~"가 떠나가질 않았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저 음은 안 잊힌다. 



하지만 신기한 건 이 중독성이 강한 안전 훈련 노래가 아니었다. 바로 드릴 중에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프린세스 크루즈를 한 두 번 타신 분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는데 뒷자리에 앉아있는 부부도 허밍을 하고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아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본 것이다. 그래서 옆 자리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이 노래를 아세요?”

“러브 보트 주제가잖어”


아.... 그렇구나! 


이 노래는 바로 프린세스 크루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러브 보트 Love Boat>의 주제곡이었고, 주제곡의 음에 안전 훈련 내용의 가사를 붙여 만든 안전대피 주제곡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왜 연예인들이 안전 훈련 영상에 출현했으며, 배우마다 포지션이 있었는지 매칭이 되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소개한 배우들은 <러브 보트>라는 드라마에서 맡았던 역할이었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과연 <러브 보트>라는 드라마는 어떤 드라마인지. <러브 보트>는 1977년에서 1987년까지 10년 동안 ABC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코미디 드라마였다. 시즌 9편과 5편의 스페셜부까지 제작된 이 드라마는 장장 248편의 에피소드나 된다고 한다. 이 정도 분량이라면 당시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짐작되지 않은가? 


이 드라마의 주 특징은 바로 드라마의 배경이 크루즈라는 점이며, 프린세스의 퍼시픽 프린세스호에서 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드라마의 내용은 크루즈의 승무원들과 승객들과의 에피소드 그리고 승무원들 사이의 로맨스 코미디도 함께 담았다.  


러브 보트 드라마의 흥행은 바로 프린세스 크루즈의 브랜드와도 자연히 연결되었다. 프린세스 크루즈는 <러브 보트>의 홍보를 크루즈 안에서도 하고, 출연했던 연기자들을 프린세스 크루즈의 대모로 선정하기도 하며 드라마의 효과를 제대로 활용했다. 하지만 프린세스만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접한 드라마 배경인 크루즈라는 곳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크루즈라는 곳이 1930년대의 고위층 사람들이 타는 대형 오션 라이너가 아닌 평균, 평범한 사람들도 휴가철에 휴가지로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바로 이 <러브 보트> 드라마가 크루즈로 가는 문턱을 낮춰주었다고 할 수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크루즈는 어떤가? 크루즈는 정말 누구나 꿈꾸고,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되지 않았는가?

 

<러브 보트>는 이미 옛날 옛적 드라마가 되었지만 프린세스 크루즈를 좋아하는 마니아들과 크루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러브 보트>는 레전드 드라마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시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주제곡을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있고, 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실제 프린세스 크루즈의 크루즈 디렉터(좌)와 러브 보트에서 크루즈 디렉터를 연기한 Lauren Tewes(우)


Written by Kim

@bakku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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