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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컴퍼스 Jul 09. 2020

#28.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바다 위 세상

그리고 그곳을 만드는 사람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바다 위 크루즈 안에서 일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이색적이다. 크루즈 안에 승선해서 일하는 직업이니 '승무원'이라는 호칭이 틀린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 직업을 단순히 '크루즈 승무원'이라고만 부르는 건 어딘가 많은 디테일을 놓치는 느낌이 든다. 나도 이전의 나를 '크루즈 승무원'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어딘가 조금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운송이 주 목적인 비행기나 기차와는 달리 크루즈는 떠다니는 리조트를 넘어 이제는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안에 너무나도 다채로운 시설과 환경이 갖춰져 있으며, 때문에 크루들의 포지션도 다양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물론 크루즈 운항과 서비스의 메인스트림을 담당하는 포지션의 크루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직업이 그것도 크루즈 안에 있다고?" 하며 크루들도 놀랄만한 특이한 직업들이 있다. 그들을 한번 소개해보려고 한다. 



1. Guest lecturer (교양수업 강사)


사진 출처 https://www.neamb.com/travel-and-vacations/


다양한 주제의 강의나 각종 강좌를 크루즈 안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크루즈의 특징이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를 방문하는 것인 만큼 기항지에 관한 배경지식이나 역사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강의는 특히 인기가 많다. 이런 수업은 누가 할까? 승객의 신분으로 탄 전문 강사인 'Guest lecturer'이다. Guest lectuerer는 엄밀히 말하자면 '크루이자 승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크루가 업무시간이 아닐 때에도 배 안에서 행동의 제약이 따르는 반면에 이들은 일반 승객과 똑같이 게스트룸에 머물며 모든 크루즈 시설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또 크루와는 달리 비상훈련을 받지 않으며, 비상시에는 승객 행동요령에 따른다. 또 단기로 고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짧으면 1주일, 길면 3-4주 정도까지 크루즈에 머문다. 


그렇다면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3시간도 채 안되면서 승객처럼 배에 머무니 이거야말로 크루즈 승무원보다 나은 직업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은 무료로 크루즈를 타는 조건으로 고용된 강사이기 때문에 따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 또 하나의 혜택이 있다면 원하는 경우 동반자 한 명과 함께 승선이 가능하다는 것.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매력적인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2. Fruit carving chef (카빙 셰프) 



크루즈 첫날 뷔페에 가면 아름답게 조각(carving)된 각종 과일과 야채를 볼 수 있다. 선사의 로고는 기본이고 여러 가지 표정의 얼굴, 꽃 모양, 또는 시즌과 어울리는 재치 있는 카빙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 크루즈에는 과일이나 야채 카빙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요리사가 있다. 이들은 과일이나 야채뿐만이 아니라 얼음도 조각한다. 물론 그 바쁜 크루즈의 키친에서 이들이 카빙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고 평소에는 요리사의 포지션으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매우 빠른 손놀림으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크루즈 기간 중 메인 극장의 커다란 무대에서 셰프들이 보이는 카빙 시범은 늘 승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3. Lawn keeper (잔디관리사) 


사진 출처 https://www.dailymail.co.uk/travel/article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크루징을 오래 하다 보면 카펫이나 데크가 슬슬 지겨워지고 새삼 땅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기항지에 도착하면 맛있는 식당을 찾아 점심을 테이크 아웃하여 주변 공원에 가서 피크닉을 하곤 했다. 그런데 셀리브리티 솔스티스 클래스(Celebrity Solstice)는 이런 크루저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 분명하다. 이 배들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바로 옥상 정원! 아니 옥상 잔디밭이다. 배의 가장 높은 층 top deck에 올라가면 600평 정도의 초록 초록한 진짜 잔디밭이 펼쳐져있다. 푸른 바다와 연둣빛 잔디의 조합이라니. 솔스티스 클래스의 시그니처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이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농학과 원예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잔디 관리사 크루'가 상주하며 이를 담당한다는 재미있는 사실!




4. Horticulturist (원예사) 


사진 출처 https://flic.kr/p/9LDaHq


 

셀리브리티 크루즈에 잔디밭이 있다면 로열캐리비안의 오아시스 클래스 안에는 센트럴파크가 있다. 벤치를 몇 개 갖다 놓은 작은 인공적인 공원을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해이다. 이 '바다 위 야외 공원' 센트럴파크는 길이 100미터, 너비 19미터의 사이즈에 이 파크뷰를 가진 발코니 객실만 254개이며 각종 레스토랑과 와인바, 카페가 입주(?)하여 있다. 오아시스 안의 오아시스랄까. 센트럴파크를 거닐다 보면 12,000개가 넘는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 넝쿨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곳이 바다 위인지 정말 도심 속 어딘가의 공원을 걷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앞서 언급한 셀리브리티의 잔디밭처럼 이 공원도 아주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공원과 그 안의 식물들을 아름답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칫하면 배 안의 커다란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 해충관리도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Horticulture and Integrated Pest Management 즉 원예 및 해충관리부서는 오아시스 클래스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5. Dog butler (반려견 전담 버틀러) 


사진 출처 https://skift.com/



대부분 두 발로 걷는 승객들이 크루징을 하러 오지만 (물론 휠체어나 스쿠터를 타기도 하고) 영국 큐나드 라인의 퀸 메리호 2에는 네 발 승객들도 크루징을 한다. 바로 Pets on Deck 즉 '배 위의 반려동물' 프로그램 덕분이다. 배 안에 서비스견이 아닌 반려동물을 데리고 탈 수 있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고 보면 되지만 퀸 메리호 2는 이런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승객들이 데리고 탄 반려견들은 지정된 장소에 따로 머물러야 하지만 걱정 없다. 주인이 크루징을 즐기는 동안 그들도 전문 버틀러로부터 후한 서비스를 받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온 강아지들이 바다 위 내 고객이라는 건 꽤 즐거운 일이 아닐까.




Written by Hong
@jayeon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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