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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Jul 04. 2022

[13주차 임신일기] 임신기 단축 근무 종료.

그리고 '일'과 '사람'에 대하여.

12주 차, 정밀초음파로 만난 써니

13주 차, 초기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종료, 그리고 '일'과 '사람'에 대하여.



6월 27일 월요일 (13주 1일)

여느 때와 같이 3시에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또 출장을 떠났고, 다시 혼자 남겨진 저녁이다. 저녁 식사로 무얼 먹을지 고민해야 하는 이 시간이 전혀 반갑지 않다. 결국 결론은 김밥과 떡볶이. 자주 시켜먹던 김밥집이 오늘은 배달 주문을 받지 않아서, 프랜차이즈 김밥집에 주문을 넣었다. 참치 김밥이 무슨 5천원이나 한다. 나 어렸을 땐, 참치김밥 2천원짜리도 아까워서 천원짜리 그냥 김밥만 먹었었다구...

이번 달에 배달로만 20만원을 넘게 썼다. 6월엔 남편이 주중 내내 출장으로 평일엔 거의 부재중이었던 데다가, 주말에도 한 끼는 해 먹고, 한 끼는 배달해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먹는 양이 많지 않아 한 번 시키면 2~3일은 먹었는데. 이전에 야무지게 요리 잘 해먹던 때에 비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라떼는 말이야,, 이 조합이 만원도 안 됐다구...

13주 차 들어서면서, 임신 소식을 주위에 더 알리고 싶었다. 내 인생의 큰 사건이자 기쁜 소식이기도 하고, 매주 최선을 다해 기록하는 이 임신일기를 지인들에게 공유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자주 이용하는 SNS는 인스타그램인데, 비공계 계정으로 정말 나를 아는 사람들만 팔로우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소식을 전하고, 내 글이 도움이 될까 싶은 팔로워에게 임신일기를 공유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깝고 싶은 친구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정말 감사하고 다정한 마음들이다. 근 2~3년간 코로나로 인해 자주 못 만나고, 작년에 있었던 내 결혼식에도 정성 담아 초대하지 못했다. 결혼식 이후로도 감사함을 표현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는데, 계속해서 축하만 받는 것에 고맙기도 하지만, 고마움을 되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꼭 이 다정함을 돌려주리라.


6월 28일 화요일 (13주 2일)

엄마가 집으로 오기로 한 날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역시나 집이 깨끗해져 있었다. 오늘 엄마의 타겟은 냉장고다. 요즘 냉장고 문을 열면 내 코를 강타하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냉장고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엄마가 냉장고를 열어서 반찬통 몇 개를 열어보고는 식겁했나 보다. 임신 전 베이킹하려고 남겨둔 재료,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오래된 과일, 무엇인지 모르겠는 음식이었던 것(?)들... 냉장고 냄새가 역했지만 엄마가 도와줄 때 치워야 한다. 코를 부여잡고 오래된 유물들을 꺼냈다. 유물 선별 작업을 끝내고 나니 엄마가 저리로 가라며 나를 밀어냈고, 미안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나는 소파에 앉아서 엄마가 치워주는 모습을 지켜봤다. 미우나 고우나, 역시 우리 엄마다.

저녁 늦게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마음에 걸려서, 하루 자고 가라고 했다. 우리 집 침대 엄청 좋다고, 나 먼저 잘 테니 꼭 내 옆에 와서 같이 자라고 했지만, 잠에서 깨어보니 나 혼자였다. 일 다니며 피곤한 딸이 당신 때문에 깰까봐 불편한 소파에서 밤을 보낸 엄마, 이럴 거였으면 집에 가서 쉬라고 할 걸...

엄마가 챙겨주는 아침 식사를 들고 출근하는 길, 나도 엄마가 되어야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화이팅!


6월 29일 수요일 (13주 3일)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마지막 날이다. 임신 초기 12주까지, 그리고 36주 이후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인데, 보통 36주 이후에는 출산휴가를 사용하니 12주까지 쓸 수 있는 제도라고 알고 있으면 좋다. 12주 6일까지 오후 3시에 퇴근할 때는 정말 좋았는데, 막상 단축 근무 기간이 종료되니 세상 억울하다. 나는 똑같이 힘들고, 아니 어쩌면 더 힘들고, 입덧도 아직 안 끝났는데.

오늘이 13주 3일인데 12주까지의 단축근무가 이제서야 종료되는 이유는 나의 분만예정일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최초 임신 진단 시에는 아기집의 크기로 임신 주수를 계산하는데, 아기가 점점 커서 9주쯤에 잰 아기의 머리-엉덩이 길이로 분만 예정일이 확정되었다. 아기가 무럭무럭 잘 자라서인지 나는 점점 분만예정일이 앞당겨졌고, 처음 1월 5일이던 예정일이 지금은 1월 1일이 되었다. 써니에게 고마운 일이다. 엄마가 덕분에 3일 정도 더 일찍 퇴근할 수 있었어!

단축 근무가 종료된 건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젠 남은 연차휴가를 힘들 때마다 열심히 소진하겠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퇴근하겠습니다!

정말요.


6월 30일 목요일 (13주 4일)

나는 회사를 옮겨보기도 했고, 팀을 옮겨보기도 했다. 회사 또는 팀 이동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실, '일'보단 '사람'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나는 IT부서의 DBA로 근무했었다. 지금은 전산에서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기에, 현재 IT업계에 대해선 감이 많이 떨어졌지만, SM DBA로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건 꽤나 좋은 기회였다. 나도 예상치 못하게 주어진 기회에, 대학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재수강하고도 C+을 받았지만 (그때 알았어야 했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좀만 버티다 몸값 올려 이직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개발자는 외주 포함 100명 정도였는데, DBA는 단 두 명이었다. 흔한 인력구조이긴 하나, 경력 10여 년 차 시니어와 신입사원의 조합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사수 DBA는 항상 나에게, "너는 너무 개성이 강하고 뾰족뾰족한 돌이야. 회사생활을 잘하고 싶으면 (적어도 이 회사에서) 뾰족뾰족한 걸 다듬어서 예쁜 둥글둥글한 돌이 되어야 해."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날 보고 뾰족뾰족한 돌 같다고 한 워딩은 아주 정확히 기억난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쳐, 남자친구를 바쳐, 건강을 바쳐, 남은 건 단일 회사 DBA 경력 10년이라는 메달 하나를 가지고 나를 조련하고자 했다. 조련이라는 표현이 맞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으니까. 매일 출근해서 그녀의 오늘 컨디션과 기분을 살폈고, 할 일이 없음에도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었으며, 10시까지 야근하며 내 일을 끝냈어도, 본인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우리'의 업무가 끝나지 않았다고 그는 생각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가 퇴근하겠다고 했다는 이유로, 인격이 부서지는 고통을 받아야 했었다. 나는 그렇게 "꽤나 괜찮은 커리어"를 버리고 다음 회사가 정해지지 않은 채 퇴사했다.

나는 그다음 회사로 뜬금없이 기계제조업 회사를 선택했고, 처음 발령받은 팀은 회사에서 그때 당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이끌던 팀이었다. 그때 당시 사수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였고, 가끔 천재 같은 면이 있었으나 대화가 어려웠다. 말 그대로 의사소통이 모두와 어려운,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의 팀장은 모 책임님을 자리에 세운 채로 팀원들이 다 들리도록 한 시간 동안이나 혼내는('혼낸다'라는 단어 선택이 맞다.), 나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게 "꽤나 주목받는 팀"을 버리고 다른 팀으로 도망쳐왔다.

진리의 부서바이부서, 팀바이팀이다. 현재 속한 팀과 조직에 적응하고 나니 회사생활이 조금은 즐거워졌다. 특히 빠르게 고령화가 시작된 우리 회사에서 내가 속한 조직은 다른 부서보다 젊은 직원들, 주니어급 직원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주니어 간 유대관계가 강하고, 동기 몇 명 말고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내가 마음 열고 회사 동료와도 친목을 나누게 되었다.


그중 한 사람이 퇴사 소식을 전했다. 우리 회사보다 좋은 곳으로 가기에,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퇴사 이후에도 연락하고 지낼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 모두가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나에게는 정말 오랜만의 저녁 외식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좋아하는 술을 즐기는 것을 보고만 있다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그날 이 가게에 입고된 별빛청하를 거덜 낸 그들.. 그리고 이제야 보이는 컵의 프린팅, "결혼전에 존나놀걸 그랬어"

이직은 목적지의 날씨가 어떨지, 누가 마중을 나올지, 함께할 사람들이 누구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여행이다. 그러나 항상 그중에서도 최고의 운이 함께하기를. High Risk를 감수하는 당신에게, High Return이 당신에게 함께하기를. 항상 건승하길 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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