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건조한 것 같다고 했던 남편이 코로나 확진이라니?
27주, 베이비페어 첫 방문, 그리고 4D 입체 초음파 촬영
28주, 남편의 코로나19 확진, 잠시 이산가족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남편은 요 며칠 목이 좀 건조한 것 같다고 했고, 우리는 물에 적신 수건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우리 둘 다 출근한 이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남편은 목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가야 하겠다며 반차를 쓰고 퇴근했다. 그전에 혹시 몰라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를 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양성.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급하게 최신 방역지침을 뒤졌다. 일단 회사의 방역지침은 동거가족 확진 시 PCR 검사를 받아 음성이 확인될 때까지 자택 대기. 남편은 내가 신속항원검사로 확진 판정을 받았던 집 근처 의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결국 확진되었다. 인후통을 심하게 호소하여 약도 3일 치 받아왔는데, 나는 일단 회사에서 강퇴를 당해야 하는 상황이고, 요즘은 재확진도 종종 사례가 있어서 쉽사리 집에 같이 머물기 어려웠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친정으로의 대피.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관할 보건소에 들러서 PCR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집안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두고, 남편은 안방에 감금(?)한 채로, 나는 드레스룸에만 가서 주말까지 입을 옷을 챙겼다. 그리고 남편과는 3미터 이상 떨어진 채로, 그리고 마스크를 쓴 채로 잠시 안녕...
부모님 댁에서의 재택근무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가 결혼 전까지 계속 썼던 방을 다시 쓰면서, 원래 내 방에서 공부하던 타입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아빠가 쓰던 책상, 그리고 이어받아 내가 쓰던 책상에 앉아 근무를 하는 기분은 남달랐다.
오전 중에 문자메시지로 통보된 PCR 검사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분간 내 몸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난 3월 확진되었을 때, 발열이 심하지는 않았었지만 혹시나 재감염되었을 때 열이 난다면 뱃속의 아기에게 좋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엄마가 챙겨주는 밥을 먹으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친정에 도망 오게 되어 이번 주 필라테스를 다 취소했는데, 그 대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점점 해가 빨리 지고, 저녁이 되면 부쩍 공기가 차가워졌다. 언제나 감기 조심!
PCR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기 때문에, 매일 자가 키트를 하며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친정에서 출근하는 길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지옥의 구간인데, 오늘도 역시나... 집에서 출근하는 것만큼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 집이 13km 정도 더 먼데, 왜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 건지...?
오늘은 마지막(아마도...?)으로 현장에 가서 내가 담당하는 부품을 시험해야 하는 날이다. 임신 초기 때 몇 번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다신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는데, 내 업무를 이어서 하게 될 신입사원이 들어오게 되면서 원데이 인수인계 겸, 업체 방문 겸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입어야 하는 작업복이 맞지 않아 나는 임부복에 안전장구를 챙겨 이동했는데, 확실히 몸도 무거워져서인지 우리 회사가 만드는 거대한 장비에 잠깐이라도 매달려(?) 있는 게 버거웠다. 그렇지만 인수인계는 해야지... 부디 후배 사원께서 한 번에 알아듣고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당분간 서해바다가 보이는 이 현장도 Bye!
오늘 회사에서는 올해 성과에 대한 피드백 미팅이 있었다. 연초에 세웠던 KPI에 대해 자기 평가는 이미 완료했고, 팀장님과의 1:1 미팅에서 1차 Calibration 결과와 한 해 동안의 팀장님 평가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 회사는 최근 인사, 승진 제도가 크게 개편되면서 평소 인사평가나 승진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던 나도 평가에 예민해졌다. 자세히 설명할 순 없겠지만, 나는 대리급으로 승진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먼 얘기이나 다음 과장급으로 승진하기가 쉽지 않아 졌다. 보통 한번 정도 승진 누락이 되더라도 그다음에는 무난히 승진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그렇지 않게 되어버렸다. 특히 나는 출산 및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었고, 복직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또 둘째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러다가 입사 10년 차 되어도 대리라서 신입사원들이 왜 저 사람은 아직도 대리예요? 그러는 거 아냐?' 싶기도 했다.
거기에 불을 지르는 팀장님의 말. 출산휴가로 1년 중 12월 한 달을 자리 비우기 때문에 점수가 생각한 것보다 낮을 수 있다.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인해 성과를 낮게 주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만약 출산 및 육아로 연초에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면, 달성 가능한 목표를 다시 설정하여 재설정한 목표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절대적 수치로 봤을 때 좋은 점수를 받긴 했지만, 최종 평가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고,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고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젠더 이슈가 있었을 때, 언제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왔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조직 내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니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저는 책임(과장급) 승진은 앞으로 어렵겠네요.'라는 말 한마디만 한 채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퇴근시간 직전, 나의 사수 책임(차장급)님께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피드백 미팅을 한 이후에 우리 파트원을 쭉 거쳐 마지막으로 미팅을 하고 오신 것 같았다. 나에게 팀장님이 말을 잘못 전한 것 같다며,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인해 점수를 깎는 것은 부당한 일이니,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미팅에서 돌아와서 한참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말들을 팀장님께 대신해준 것 같았다. 세상, 내가 좋은 사람과 같이 일하고 있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엄마로 직장생활을 이어나간다는 것,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워킹맘의 오르막길, 이제 시작인 거겠지.
아주 가까운 언니의 결혼식이 부산에서 있는 날이다. 원래는 남편과 함께 갈 땐 KTX, 올 땐 비행기를 타려고 했으나, 코로나에 확진되어버리는 바람에 나 혼자 이동해야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28주로, 비행기를 타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혼자 이동하기에 크게 무리가 될 것 같지 않아 부산으로의 당일치기 여행을 혼자 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데, 이 KTX 표로 말할 것 같으면... 10월 15일은 바로 BTS가 부산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다. 한 2~3주 전이었던가, 미리 예매를 해두어야지 하고 코레일톡 앱에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싹 다 매진이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남편이 '그날 부산에 BTS 온다는 날 아니야?'라고 했다. 정답이었다. 신부님에게 연락했더니, 똑쟁이인 언니는 나 같은 수도권 친구들을 위해 미리 티켓을 예매해두었다. 그렇게 티켓을 전달받아 보라색이 넘실대는 KTX 풀방 속 한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부산역에 내리니 생각보다 더 많은 보라색의 아미들... 그리고 그 무리와 함께 부산지하철 2호선에 탑승한 나... 감사하게도 임산부석 양보를 받아 서면역까지 앉아갈 수 있었는데, 지하철을 내리고 나니 드디어 보통의 부산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선 날씨가 쌀쌀해 핸드메이드 코드를 입었는데, 부산에 내려오니 세상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 정말 좋은 날, 정말 아름다운 신부, 결혼 축하해!
BTS의 콘서트가 한창일 시각,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날아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면 남편보고 김포공항 픽업을 나와달라고 했겠지만, 친정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해볼 만한 솔로 여행이었다. 써니와 함께한 오늘의 대한민국 횡단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