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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Feb 06. 2022

명절 증후군 그리고 태교 못하는 엄마

아이가 참 순하다~ 엄마가 태교를 잘했나 보네.

2022년의 설날, 나는 비교적 시가와 사이가 좋지만 그래도 명절은 힘들어.



우리 부부는 요즘 금주(禁酒) 기간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앞서 소개했던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최대한 건강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고,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인해 9시에 시작하는 필라테스 수업은 제대로 수강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말마다 남편과 꾸준히 운동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나는 소싯적 아주 방 청소를 게을리해 부모님께 자주 혼이 나곤 했는데, 그래도 한 번 청소를 시작하면 아주 제대로 칼각을 세우며 청소를 열심히 했었다. 누구나 공감할 일이지만, 진짜 정말 청소하려고 했는데 그 타이밍에 공교롭게도 부모님이 방 청소를 하라고 나에게 핀잔을 주면, 그 순간 청소가 하기 싫어졌다. 진짜, 진짜로 공부하려고 했는데 왜 공부 안 하냐는 소리를 들을 때 공부가 더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이만큼이나 있었는데 오히려 반항심에 "에잇 안 해!" 해버릴 때도 있었다. 

이번 명절 설날 당일에는 시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시아버지 본가, 시어머니 본가에 각각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도대체 왜 그렇게나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는 결혼식 스냅사진 앨범을 같이 보며 손주 칭찬, 덤으로 손주며느리 칭찬도 많이 듣고, 할아버지께서 직접 깎으신 윷으로 윷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나 빠뜨리지 않으시는 증손주 이야기. 우리 남편이 장손인지라 증손주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시다는 건 이해하지만, 일단 아기는 빨리 낳아야 한다부터, 아기를 가지면 주변에서 다 배려해준다는 현실을 모르시는 이야기, 그래서 언제 가질 거냐 등등... 이미 다 말씀하셨으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꼭 하신다. 이 이야기에 나의 휴직이나 직장, 경력단절에 대한 내용은 화자가 누구이든 간에 빠져있다.

그리고 시어머니 본가에서는 두 번째 증손주가 탄생했다. 시아버지 본가보다 부담감은 덜했지만, 역시나 빠지지 않는 '그 이야기'에 준비 중이라고, 곧 좋은 소식 생기면 들려드리겠다고 말 한마디 안 하는 남편이 조금은 눈치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시가와 사이가 정말 좋은 편이다.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외동딸로 자라 외로운 나에게 가족이 하나 더 생긴 듯 시가에 가면 본가에 간 것만큼이나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도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명절 증후군을 세게 겪는 며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절은 힘들어.



설날 연휴는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우리 부부는 각자의 회사 휴일과 개인 연차를 사용하여 일주일 내내 쉬기로 했다. 시가에서 돌아온 후에는 나의 부모님을 뵈러 갔다.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 본가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하면서, 사촌오빠 부부가 최근에 출산한 아기를 보았다며 그 아이에 대해 대해 말했다.

엄마는 내가 아기였을 때에도 기저귀 하나 못 갈아주던 아빠가 조카의 아들은 신기하게 바라보며 좋아하더라고, 잘 놀아주더라며 아빠의 그런 모습이 의외라고 했다. 아기가 잘 울지 않고 성질부리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는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가 정말 순해, 엄마가 태교를 잘했나 봐." 나는 이 말에 왜 그렇게까지 발끈했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순하거나 예민한 건 기질인데, 기질은 타고나는 거야. 엄마가 태교를 잘했는지 못했는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라고 바로 대꾸했지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기질, 기질은 어느 정도 타고나겠지만 임신했을 때 산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애도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애가 차분하겠지." 정말 1차원적이고, 산모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딱 좋은 사고방식이다. 엄마, 아빠는 옛날 사람이니까, 그냥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부모님이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아니, 아이의 기질은 타고나는 거라니까? 의사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럼 나는 만삭 때까지 일하면서 태교도 못하는데?" 내 언성이 높아지자 아빠는 별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나며 대화를 끝내려 했고, "요즘 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보다." 라며 대화는 끝나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까지 이 이야기에 대한 짜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고, 남편이 내 기분을 알아챘는지 개의치 말라며, 내 말이 맞다는 것은 알지만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는 어른들을 내 기분 상해가며 설득하려 하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우리 부모님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꺼내버린 그 사고의 흐름이 너무나도 불편하고, 거북했다. 

지난 글에 전종관 교수님의 책을 소개한 이후로, 교수님께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셨는데, 유튜브에 클립 영상이 업로드되고 아주 많은 호응을 받았다. 특히 썸네일에 '산부인과 전종관 교수님, 태교를 권하지 않으신다고?'를 메인 자막으로 내세우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교수님은 태교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며,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때 엄마를 탓하는 나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교수님은 산모들에게 태교를 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이의 건강은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그 아이를 아홉 달 동안 품고 있는 산모의 삶에 대해서는 왜 관심을 가지지 않느냐며... 

나는 임신 중에도 태교음악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것이며,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것이다.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게 최고의 태교지.


이렇게 이번 명절도 쉽지만은 않았다. 휴-


유튜브 'tvN D ENT' 채널, 꼭 한 번씩 시청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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