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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Mar 10. 2022

매달 찾아오는 불청객, 월경: 첫 번째 임신 실패

월경님...? 당분간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왜 오셨어요?

어느 날은 임신한 꿈을 꿨다가, 임신 못한 꿈을 꿨다가. 월경 전까지 얼리 임신테스트기를 4개나 사용했다. '하-, 나는 아직 hCG 농도가 낮아서일 거야.' 그렇게 월경 예정일은 다가왔고, 애석하게도 정확히 예측한 날짜에 월경은 시작되었다.



모든 여성들에게 월경은 반갑지 않은 존재다. 월경이 시작되는 순간, 월경통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를 재빨리 챙겨 먹어야 하고, 직장에, 학교에, 지금 내 가방에 생리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유독 들쑥날쑥했던 내 기분이 이것 때문이었나 하루를 되짚어보게 되고, 밝은 색 하의 입기를 꺼리게 되며, 찝찝하고 축축한 일상이 시작된다.


월경 시작의 순간들 중 각자가 꼽는 최악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순간은 장기 지방 출장을 다니던 때 갑자기 시작된 월경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 회사는 원래도 남녀 비율이 9:1인 데다가 (사실 92:8 정도가 최근 공시 기준으로 더 정확한 비율이다.) 출장지에 상주하던 직원 중 여자는 나 혼자였다. 싸한 느낌에 화장실을 찾았지만 이미 월경이 시작돼 하의까지 묻기 직전인데, 생리대는 없었다. 출장지는 지방에서도 산골짜기 외곽이었고, 해당 주차에는 내 차를 가져오지도 않아 마음대로 차를 몰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간다고 해도 20분은 이동을 해야 하는 말 그대로 오지에 있었다. 너무 막막해서 미리 준비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며 화장실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는데, 이 근방에 있는 여자가 누굴까 떠올리다가 화장실에서 여러 번 마주쳤던 미화 담당하시는 여사님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미화 여사님께서 화장실에 들어오셨고, 조심스럽게 생리대를 갖고 계신지 여쭤봤다. "제 건 아니지만 누가 세면대 밑 서랍에 갖다 놨더라고요. 누구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급하니까 그거 먼저 써요." 하면서 꺼내 주셨다. 오늘 퇴근해서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의 분량만 미지의 생리대 주인께 빌리고, 다음날 나처럼 갑작스러운 생리에 놀랄 누군가를 위하여 생리대 한 통을 같은 위치에 사다 두었다. 

이렇게 여성으로서 피할 수 없는 월경이지만, 때 맞춰 찾아와도 불청객 같은 존재이고, 때 맞춰 오지도 않으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임신 계획이 없을 때)


이번 달 월경은 나에게 당분간 오지 않기를 바란 불청객이었다. 이번 달에 처음으로 임신을 시도하면서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인지, 임신과 관련된 꿈을 너무 많이 꿨다. 어떤 꿈은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고는 두 줄이 표시되는 걸 보고 뛸 듯이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비임신도, 임신도 두 줄로 표현되는 총 3줄짜리 임테기였다. 어떤 날에는 만삭의 상태로 진통을 겪는 꿈을 꾸기도 했다. 임신과 관련된 꿈이 아닐 때에도 꿈속에서 나는 온통 임신 생각뿐이었는데, 어느 날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너무 슬펐는데, 손주 보시기 전에 돌아가셨다는 슬픔이 제일 커서 지금 내가 얼마나 임신에 온 정신이 몰두되어있었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 보통 얼리 임신테스트기는 월경 예정일 4~5일부터 검사를 권하는데, 어느 휴일엔 임신과 관련된 꿈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꾸고는 새벽에 일어나 임테기를 해보았다. 음성, 음성, 음성, 그리고 또 음성. 월경 예정일 전 10일 동안 총 4개의 얼리 임테기를 사용했고, 결국 이번 달 임신은 나의 월경과 함께 실패했음이 증명되었다. 불청객 방문의 순간 중 최악이다.

 

월경으로 인한 호르몬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망감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와서, 나는 아직 만 30세가 넘지 않았는데, 건강한 편인데, 술도 끊었는데, 의학적으로 준비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온갖 미신에 매달리는 부부들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내 마음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을 다잡고, 준비할 시간이 더 주어졌음에 안도하기로 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젊다. 만 30세 이전의 여성이 가임기에 임신 시도를 하여 성공할 확률은 3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더 높은 확률에 속했던 것이고, 임신 확률은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다. 월경해서 슬픈 마음에 남편에게 맥주 한 캔만 사다 달라고 부탁했지만, 마시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해서 다음 달에는 우리에게 올 지 모르는 천사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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