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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ween time Aug 02. 2019

심심에 대한 죄책감으로

부터

어느 순간 심심하다는 말을 쓰지 않게 됐다. 심심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내가 되게 한심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여름, 겨울방학을 떠올려보면 나는 자주 심심하다고 엄마한테 말했었다. 부모님 모두 맞벌이였기 때문에 방학이 좋긴 했지만 때로는 너무 무료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자주 그 말을 하곤 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심심할 때는 많았는데 그때는 심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심심하다고 말하지 않기로 혼자 다짐했다. 왠지 그 말은 좀 꺼려진다는 이유로.


어떤 이유인지 콕 집어 생각해보니 나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고, 할 일이 없고, 그래서 나는 무능력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학생 때는 누구도 무능력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 혹은 습관이 그때 이후로 쭉 나를 옭아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진짜로 심심할 시간이 없었다. 취업준비를 했고, 취업했고 그 후로 평범하다 싶은 5년의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절대로 심심할 수가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자는 거 따로, 쉬는 거 따로, 노는 거 따로인데 대체 어떻게 시간이 난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심심한 시간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여름, 겨울방학을 연상시키는 그 시간들.


남편이 우연한 기회에 직장을 미국으로 옮기면서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때의 나는 미국에 대한 환상과 동경으로 미래에 내 삶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히 직장생활이 지겨울 쯤이라서 좋기도 했다.


훌훌 털고 미련 없이 미국으로 왔다.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심심한 삶으로 온 것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하고 남편과 나는 이곳 생활에 정착하기 위해서 정신이 없었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 집을 계약하고, 차를 사고, 필요한 집안 용품을 구입하고 등등 내 해야 할 일 목록에는 많은 일들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전업주부'로서의 삶도 시작되었다. 평생 안 해본 요리실력을 늘려야 하므로 아침, 저녁으로 요리했고, 미국 환경의 특성상 남편에게 점심 도시락도 싸줬다. 집안일에 서툴렀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하루가 짧다고 느꼈다. 일 하는 사이사이 찾아오는 무료함과 심심함을 애써 모르는 체하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흘려보냈다.


미국에서의 삶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너무 평온했다. 아니 솔직히 심심했다. 이 감정은 정확히 내가 꽁꽁 숨겨왔던 '심심하다'라는 감정이 맞다고.


물론 처음엔 인정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나는 심심할 틈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도 결국 다시 심심해졌다. 심심한 나로 돌아왔다. 심심하다는 내 감정에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드는 건지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나를 남편 앞에서 작아지게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그가 하는 일에 비해서 내가 하는 일이 사소하게 다가왔고, 더욱이 심심하다고 말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남편은 늘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늘은 뭐했냐고 물어보는데 (물론 이 질문은 남편이 내가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걱정돼서 일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질문에 좀 더 있어 보이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낮잠 자고 누워있고 싶었지만 일부러 밖에 나가서 산책을 했다. 혼자 여기저기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사람 구경도 하고 가게 간판도 일일이 읽어보고, 하늘도 구름도 아주 실컷 봤다. 또 도서관에 가서 어슬렁거렸다.


어슬렁거렸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때의 내 모습은 정확히 그랬다. 영어책을 빌려서 읽어볼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었다. 내 노력이 내가 심심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과 심심한 시간이 흘러넘쳤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생각났다. 그때는 아무리 자도 자도 시간이 안 간다고 개학이 아득하다고 느꼈는데, 어느새 개학을 했고 세월이 흘러서 지금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이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방학이라면? 하고 생각하게 됐다.


인생의 방학이라니 불현듯 너무 멋있어 보이고 내 인생이 다르게 느껴졌다.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거에 죄책감을 갖기보다는 충분히 심심한 이 방학을 그냥 심심하게 내버려두자고. 어린 시절 내가 그 방학을 심심하게 내버려뒀다고 잘못된 어른이 된 것도 아닌데, 지금도 내가 이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나쁘게 늙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결론에 이르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또 자존감이나 죄책감에서부터 자유로워졌다. 내 인생의 멋진 방학을 보내기 위해서? 아니다! 꼭 멋질 필요도 없다. 그냥 온전히 방학을 즐기기 위해서! 나는 마음껏 심심할 거고 내 감정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개학이 올 거고, 개학하게 되면 지금 모아놓았던 에너지들을 잘 쓰면 된다. 또 개학 이후에는 지루한 방학이었지만 그때가 너무 그립다고 말할 시간들이 올 것이다.


그렇게 결론지었다. 내 생각을 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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