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이하여 ESL 수업에도 싱그러운 여름 햇살 같은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방학을 맞이하여 미국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온 15살 브라질 학생이었는데, 그 친구의 설명할 수 없는 반짝거림이 우리 수업에 분위기를 사뭇 바꾸어 놓았다. 뭐랄까 좀 더 활기차 졌다.
모두들 그 친구의 일상이나 주말 이야기에 주목했다. 미국에서 뭘 하면서 보내는지 사촌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브라질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는지에 대해서 들었다. 하루는 누군가 그 친구에게 꿈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등에 대해서 물었다.
그 학생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좀 더 멋진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 to make a better world라는 문장을 내 귀로 듣게 될 줄이야. 너무 드라마 같은 대사라서 듣고 나서 잠깐은 멍했다. 그리고 웃음이 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다 같이 웃었다. 그 학생의 순수함이 귀엽기도 하고 저 땐 저럴 나이지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친구는 한 달 동안 4번의 수업에 참석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날 내가 다가온 의미는 사뭇 컸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꿈이 뭐냐고 질문을 받았던 적이. 문득 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지내왔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꿈보다는 직업 혹은 직장에 대해서 늘 고민했다. 어떻게 먹고살지가 곧 꿈이었던 시절이었다.
직업은 결코 꿈이 될 수 없다는 멋있는 글귀를 책에서 보았던 것이 떠올랐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늘 직업이 곧 꿈이었다.
뭘 해야 할지 어떤 일이 나에게 맞을지 혼란스러운 사춘기 시절에는 꿈이 곧 좋은 대학에 가는 거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꿈은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위대하고 원대하고 암튼 좀 거창해야 했는데, 애매하게 철든 나는 어른인 척하면서 꿈보다는 취업을 생각했다. 적성보다는 어떤 쪽이 취업이 잘 되는지 찾아다녔다. 자연스럽게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게 꿈이 되었던 시절이었고, 취직을 하고 그다음에 결혼을 하고. 거기서 멈췄다. 그다음이 없었다.
나는 여태 꿈이 아니라 목표를 설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꿈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내 다음 목표만을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다음 목표는 가지고 있다. 건강한 가정 만들기다. 그런데 저건 내 꿈이 될 수 없다. 내가 주체적으로 이뤄서 할 수 있는 조금은 큰 희망이 필요하다.
반짝반짝 빛이 나고 싶다. 내 인생에 대한 나만의 설렘을 다시 찾고 싶다.
내가 과거에 꿈꿨던 것들은 현실과는 너무 큰 괴리감 때문에 나 스스로 이번 생애는 이루지 못할 일로 치부해버리기도 했었고, 또 무언가를 하기에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시작조차 못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꿈을 꾸고 싶은 지금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더 이상 꿈이 없다는 현실에 괴롭고 또 뭘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난감하기만 한다. 목표는 쉽게 설정할 수 있는데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꿈은 아득하게 느껴졌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to make a better world를 우선 사용해보기로 했다. 내가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거,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나만의 세상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 나아갈 수 있다. 어제와는 다른 내가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내가, 마지막으로 오늘의 삶에 충실한 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주인공이라고. 그게 내가 다시 찾은 첫 번째 꿈이라고.
두 번째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