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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ween time Aug 21. 2019

초보주부 3끼 백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집밥

결혼 전 집밥은 내게 집에 돌아가면 풍겨오는 따뜻한 밥 내음과 오늘 반찬이 무엇인지 맞출 수 있는 집안 가득  맛있는 냄새였다. 지금도 눈감으면 여전히 미소 짓게 만드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밥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 집밥은 하나의 뚜렷한 사실이 추가되었다. 바로 집밥을 누가 할 것인가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결혼 후 집밥이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밥이다. 또 나에게 집밥은 더 이상 아름다운 추억에 젖을 수 없고, 남편이 오기 전에 시간 맞춰 만들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일상이다.


일상,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얼마나 놀랍고 무서운 일인지 매일을 겪고 또 겪는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없는 거고, 슬픈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 과거에 나에게 직장생활이 그랬다면 지금은 집밥이 그렇다.


남편과 미국으로 이사 오고 나서 평일 식사 준비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도와주는 엄마도 없었고, 가까운 반찬가게도 없었다. 이제 나와 삼식이 남편만 남았다.


남편이 처음부터 삼식이는 아니었다. 내가 요리를 하나도 못하던 미국에서의 초반 한 달은 남편은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었고, 저녁은 이틀에 1번 꼴로 외식했다. 그렇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 건강에 빠르게 이상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살이 급격하게 찌는 게 눈에 보였고, 여드름이 온몸에 나기 시작했고, 느끼하다며 매일 콜라를 2리터씩 마셨다.


이렇게 신호를 주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식탁이 달라져야 했다.


처음에는 저녁 한 끼를 만드는 데도 꼬박 2시간이 더 걸렸다. 2시간 동안 많은 반찬이나 국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메인 요리 하나만 만들었는데도 훌쩍 2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힘들게 만드는 데도 늘 결과는 처참했다. 결국에는 마법가루에 손이 가곤 했다. 색깔은 비슷하고 모양도 그럴싸하지만 도저히 엄마 손맛(?)이라는 맛은 나지 않았다.


천천히 하면 되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라며 애써 내 마음을 위로했었는데, 위로하는 시간과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시간에 격차는 매우 컸다. 남편의 건강관리를 위해서라도 부족한 솜씨라도 당장 점심 도시락도 챙겨줘야 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걸 외국에 나와서야 실감하게 됐다.


과거에는 한식 입맛만을 고수하는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파스타와 피자를 좋아했었고, 외식을 할 때 메뉴는 거의 밀가루였기 때문에 미국에 가도 음식은 전혀 걱정 없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큰 착각이었다. 미국에서 지낸 지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 이미 소화불량과 체중 증가를 몸소 겪어야 했고, 먹는 게 고통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모든 음식이 너무 짜고 달아서 뭘 먹어도 혀가 아팠다.


풍족하지 않아도 맛있지 않아도 우리가 만들어가는 집밥이 간절했다. 그래서 내가 만들게 된 우리 집 집밥!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의 원칙도 만들었다. 첫째는 엄마에게 배웠던 밥만 맛있어도 반은 성공!이라는 말을 명심하고 매 끼니에 밥을 새로 한다. 간단한 듯 힘든 나의 이 원칙은 아침에 밥을 해서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주고, 저녁 준비를 하면서 또 새 밥을 지어야 하므로 하루에 총 2번의 밥을 짓는다. 이때 압력밥솥이 아주 톡톡한 역할을 해낸다.


두 번째는 하나의 메인 반찬은 꼭 만든다. 국이어도 괜찮고 새로운 반찬이어도 괜찮다. 물론 아직 3가지 이상의 반찬을 상에 올린 경험이 전무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정도는 메인으로 매번 새롭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세 번째는 항상 신선한 재료로 요리한다. 글로 배운 요리실력이라서 재료가 싱싱하면 그래도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일주일에 2-3번은 귀찮더라도 새로 장을 보면서 싱싱한 채소와 고기로 요리한다.


이쯤 되니 내게 집밥은 이제 더 이상 푸근한 추억만은 아니다. 밥 냄새, 국 냄새, 반찬 냄새- 내가 하고 나면 그 냄새에 때로는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입맛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편이 맛있게 먹으면 그 모든 게 날아간다. 행복해진다.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맛있게 잘 먹고 배불러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엄마 마음을 생각한다. 엄마가 해준 집밥을 떠올린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사랑했구나 가슴 저미는 순간들도 있다. 이렇게 나를 아꼈구나.


엄마의 집밥 사랑을 나눈다. 나의 새로운 가족에게.

남편과 정말 가족이 됐다고 느꼈을 때가 바로 집밥을 나눠먹을 때였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밥이, 식탁이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어주었다. 누구보다 많은 식사를 같이 하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또 만들어주는 손길에서 내 정성 어린 마음이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주었다.


나중에 남편과 내가 아기를 낳게 된다면 이제는 우리 세 식구가 나누게 될 것이다. 집밥을 먹으면서 가족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주말에는 온전히 남편이 요리를 담당한다. 일주일 내내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이면서 내가 계속 남편에 도시락을 쌀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남편이 요리를 하고 나서 말한다. 네가 왜 입맛이 없다고 하는지 알겠다고 음식을 하고 나면 음식을 만든 사람은 아무래도 냄새에 압도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우리는 집밥을 만들면서 서로의 역지사지를 배운다.


또 남편이 만들어준 밥을 먹을 때마다 그가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 느낄 수 있다. 엄마가 해줬던 반찬들이라고 기억을 더듬고 레시피를 찾아서 만들어준 요리들은 그가 가진 집밥에 대한 추억과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그래서 집밥은 내리사랑이기도 한가보다. 내가 많이 받아서 많이 줄 수 있고 또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 집 식탁에는 나만 있지도 남편만 있지도 않다. 우리가 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집밥이 있다. 이제 우리가 가족이 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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