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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ween time Jan 30. 2020

우리 집에 사장님이 산다

보스 남편과 다정 남편 그 어디쯤

미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건 곧 전업주부로서의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 나의 다짐은 '전업주부 하면 되지!'였다. 미국에 오고 나서야 전업주부에 대한 나의 안일한 생각에 어퍼컷 제대로 날려주고 픈 날들이었다. 처음 하는 일은 모두 서툴고 어렵듯이 주부 라이프에 적응하는 것도 무척이나 어려웠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눈물 둑이 사방에서 터지기 일쑤인 날들이었다.


가장 첫 번째 직면했던 숙제는 바로 자아붕괴 혹은 자아분열이었다.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나는 왜 여기 있지? 나는 미국에 밥해주러 온건가?' 나에게 물어보고 상기되는 질문들이었다. '내가 선택한 거야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전혀 괜찮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내가 나를 밥해주러 온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그 시간들은 모두 나락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스스로 그렇게 정하고 나 자신에게 내가 말하고 그래서 해야 해 라고 의무를 부과했다. 이러한 붕괴 과정 속에서 내가 배운건 "왜 내가 나에게 고통을 주는가?"


또 이런 시간들 내내 우리 부부는 싸웠다. 나는 틈만 나면 울었고 피해자인 척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나 너에게 밥해달라고 한 적 없고, 네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자유다! 

밥 안 해도 된다. 밥하는 게 싫어서 울었으니, 해결되었다. 그런데 정작 기쁘지가 않았다. 좋지도 않았다. 오히려 의기소침해지고 더욱 남편 눈치를 보게 됐다.


여기서 발견한 나 자신에 자아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고 뭐고 나는 시키는 일 되게 잘하고, 수동적이며 게다가 의무 없는 일상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뭐라도 해서 내가 나의 가치와 존재를 증명해야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 스스로 이런 나 자신이 싫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선언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그렇지만 언제든 하기 싫은 날은 외식을 하자."


우리 부부가 같이 미국에서 잘 적응하는 데 있어서 나의 미국 의무는 남편을 잘 내조하고 보살피고, 그가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반면에, 그는 그의 역할이 있고 이건 엄연히 역할분담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전업주부보다 근사한 '코디네이터'라는 별명을 붙였고, 또 가계경제를 내가 도맡아 잘 지휘해볼 테니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해달라고 했다. 남편과 나, 둘 뿐인 감투인데도 난 기분이 좋고 조금 으쓱해졌다.



두 번째 과제는 외부 압력이다. 나에게 외부는 남편이다. 즉, 남편에 컨디션과 기분 강도에 따라서 나도 좌지우지됐다. 남편이 기분 좋은 날은 모든 일이 무사통과, 남편이 힘들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식탁 위에 형광등까지도 흔들거렸다. 


초창기에 멋모르는 코디네이터(나)는 사장님(현 남편)과 대차게 싸웠다. '남편, 네가 기분이 안 좋은데 뭐 어쩌라고 등등' 집에 그릇들이 남아나질 않을 때쯤 불현듯 이런 말을 남편에게 했다.

"자기야 자기 작은 사람이네 집에 와서 큰소리치고 자기 반만 한 와이프 잡고, 큰 사람은 집에서 큰 소리 안쳐 나가서 큰 소리 친데."


남편은 뜨끔 했는지 말이 없었다. 와 세상에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오다니. 내가 하고도 나 너무 멋져-!! 하는 순간이었다.


이 말이 다음부터 우리 가족 좌우명? 이 됐다. 남편이 짜증 내거나 화낼 때 입틀막 용으로 아주 딱이었다.


그렇지만 이 말이 만병통치약이 안 되는 날도 있었다. 나도 기억이 좀 흐려지긴 했지만 남편보다는 오히려 내가 회사생활은 더 오래 했었다. 나름 n:연차 직장인으로 회사에서 살아남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어땠는지 회상해보았다. 나는 폭군이었다. 엄마 표현에 따르면 매일 문을 부수며 들어왔다고 했다.


남편도 타지에서 언어도 잘 안 통하는데 직장 생활하려니 스트레스가 오죽할까 이해는 되는데 또 눈앞에 펼쳐지는 짜증 앞에서는 나는 또 '아니 내가 엄마도 아니고 왜 나한테 화풀이야!!'의 반복이었다.


우당탕탕 탕- 싸움 없이는 배우는 게 없나 보다. 긴 싸움 끝에 나는 남편의 사장님 모드를 만들었다. 우리 사장님 마음 편하게 잘 모셔야 나가서 회사생활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하고 등등. 나는 코디니까 기분도 잘 코디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퇴근 후 나만 아는 사장님 모드는 우선 인내 시간을 갖는다. 대략 퇴근 후 2시간 이내로 그 이후에는 나도 나의 인내심이 바닥에 다다랐음을 느낀다. 그래서 인내심에 빨간불이 들어올 때쯤 말한다.

"오늘 많이 무따 사장님 고마해라."

그럼 남편이 피식 웃으며 넘어가곤 한다.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새로 부임한 우리 집 사장님을 잘 모시기 위해서 내가 찾은 해결책은 일단 내 자아를 건강하게 바로 세우고,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기 위해서 내 자아가 늘 건강한지 수시로 체크한다.


또한 사장님에게 확실한 사장님 시간을 준다. 그렇다고 남편이 나를 인격 모독하거나 그런 건 아니므로 적당히 내가 예전에 엄마에게 찡찡거렸던 찡찡 시간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미해결 과제가 남았다. 바로 부부싸움, 여전히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싸울 때마다 현명하게 싸우고 어쩌고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상처투성이인 우리 둘만 남는다. 미국집에 단출함 때문인지 아니면 밤에 못 나가는 이곳의 특성이 우리 발목을 잡는 건지 아무리 싸우고 화가 나도 집 밖에도 나갈 수 없고 누굴 만나러 갈 수도 없다. 그저 그 시간들을 오롯이 견디며 단단해지기도 하고 부서지고 다치고 아무는 시간을 견디곤 한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 집 사장님과 함께 부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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