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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Where Is She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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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ween time Feb 06. 2020

어떤 기다림

미래의 삐약이에게

이번 달에도 플러스 표시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미국에 임테기(임신테스트기)는 한국과는 다르게 (+ -)표시가 임신 성공 신호이다. (- -) 두 개의 작대기가 너는 마이너스라고 말해주는 듯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다.

처음 미국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남편도 나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으므로 차차 시간이 지나면 생길 거라고 기대했었다. 어느새 11개월 차,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조급 해지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결혼 이후에 피임을 따로 한 적은 없었다. 결혼했으니 생기면 언제든 자연스럽게 낳자고 얘기했었다. 우리가 뚜렷하게 딩크족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나를 낳을지 둘을 낳을지는 일단 낳아보고 결정하자는 주의였다. 한국에서 신혼생활을 보내는 대략 8개월 동안은 임신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우리가 꼭 피임을 하지 않는다고 바로 임신이 되는 건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국에 오기 전, 산전검사도 다 받았었고 건강한 자궁이라고 얘기까지 듣고 왔었다.

본격적으로 베란 테스트기를 사고 임신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면서 점점 그런 마음이 초조함을 바뀌어갔다. 왜, 대체 왜 생기지 않는 걸까?

무슨 문제가 있는데 병원에서 찾지 못한 건가? 미국에 온 그 사이에 내 자궁에 문제가 생긴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초조해지고 조급해지자 주변에 모든 사람이 내 임신에 대한 안부만 묻는 것 같았다. 양가 어른들도 물론 기다리는 눈치였는데, 내가 이 일에 너무 예민해지자 남편이 시댁 쪽에는 아예 미리 말씀을 드린 것 같았다. 우리 집도 만만치 않은 걱정의 눈치인데 나는 시종일관 침묵했다.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고 하면 걱정할 테고 엄마랑 전화기를 붙잡고 임신이 안돼서 너무 속상하다고 어디에 얘기도 못한다고 울고불고할 수도 없었다.

우리 부부가 결혼 이후에 피임을 하지 않고 근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난임이라고 판단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자니 애매한 그런 2년 차다.

불안은 처음 아주 작은 눈 한 송이 같은데 자고 일어나면 아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눈덩어리가 되어있었다. 때로는 그 눈덩어리가 점점 거대해져서 나에게 굴러오고 있었다. 나는 막다른 골목을 혼자 소리 지르며 뛰어내려 가는 기분이었다 그 불안이라는 눈덩어리가 나를 잠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임테기는 얌전히 내려놓고 3-5분 정도 후에 확인하라고 하지만 그 결과는 야속하게도 혹은 너무 잘 만들어진 이 작은 기계는 1분도 채 안돼서 선명한 색의 선을 표시하곤 한다. 잠깐의 기대 혹은 기다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처음 임테기를 사용했을 때는 미국 임테기를 의심했다. 아니 분명 나는 임신인 것 같은데 왜 얘는 아니라고 하는 거지? 이 작은 기계를 의심하며 종류별로 다른 브랜드의 임테기를 구입했었다. 너무 저렴한 걸 구입해서 확률이 떨어지는 거라고 불명하면서 말이다.

정신없이 그 모든 임테기를 다 뜯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떤 날은 현자와 같은 마음으로 언젠가 오겠지 남편과 나 모두 건강하다고 했다. 그럼 기다림이 답이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이 세상에 임신되지 않은 여자는 나뿐인 거 같다. 세상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임신소식과 밖에 나가기만 하면 만나게 되는 많은 임산부들. 남편에게, "아니 정말 세상에 나 빼고 모두 임신한 거 같아?"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은 늘 초조해하고 걱정할수록 더 안 좋을 뿐이라고 마음을 편안히 하면 된다고 진정한 이 시대 마지막 현자 같은 얘기만 늘어놓는다.

물론 남편까지 초조해했다면 내가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도 나도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면서도 나에게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늘 내쪽에서 먼저 야단법석이 나고야 만다.

2세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에 대한 질문도 늘어갔다. '왜 아기를 낳고 싶은지, 나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었는지, 아기를 낳고 나서 내가 나로서 온전히 잘 살 수 있을까?' 등등 나에게 묻곤 한다. 어떤 날은 일단 엄마가 되기만 하면 난 다 할 수 있어!라고 열정이 넘치다가, 어느 날엔 가는 그래 다들 쉽지 않다고 너무 힘든 길이라고 했어 그래서 좀 천천히 가져도 괜찮을 거야 지금의 자유를 잘 즐겨보자!라고 내 마음을 다독이고 또 기다림의 생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 미래에 아기가 엄마를 너무 잘 알아서 엄마 미국 생활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거라면 너무 고맙고 기쁘고 또 기특하기 그지없어서 이제는 준비가 됐노라고 그만 와도 되겠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

여자인 나에게 한 달에 한 번 마법의 기간이 찾아왔다면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또 임테기의 기간도 찾아온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마이너스 임테기가 지나가고 나면 어김없이 울고불고 싸우고 짜증내고 온 집안을 내 온 정신을 다 무너뜨리고 또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이 지나간다. 그 하루가 지나고 나면, 남편이 으레 화해의 제스처로 말한다. 테스트기 사러 가자고. 마트에 가서 테스트기를 사며 우리가 미국에 와서 가장 많이 산 게 있다면 그중 하나가 물이고 그다음이 테스트기 일 거라는 가벼운 농담을 건네곤 한다.

어느 날은 내가 하도 삐약삐약거린다고 남편이 '삐약이가 안 찾아왔나 보네.'라며 애칭도 불러주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에게 2세가 찾아온다면 태명은 삐약이로 하자고 말했다. 이제는 내가 임테기를 마친 후에 늘 삐약이가 삐약삐약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는 난임부부인가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또 인터넷에 많은 후기와 이야기들을 찾아보곤 한다. 다양한 사람들처럼 무수히 많은 사례들이 있어 우리를 아직은 난임부부라고 속단하기 이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자고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이 찰나의 순간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이렇게 계속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시간 동안에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잘하고 있노라고 나 스스로를 잘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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