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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ween time Nov 26. 2020

신혼살림에 대한 소회

feat. 미국 하루살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신혼살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중고만을 고집했다. 언제 이사 갈지 모르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지 미정이므로 이 집을 떠날 때 쉽게 팔거나 버려도 아깝지 않은 범위 내에서만 물건을 구입했다. 그렇게 하나, 둘 살림을 채우고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새 주부로서의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조리기구 중에 사고 싶은 것이 늘어났다. 작게는 야채 다지기부터 크게는 각종 브랜드 냄비 세트 및 칼 세트 등.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세트다! 현재 우리 부엌에 냄비들은 너무 통일성이 없고 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트로 사고 싶다. 그런데 막상 사려고 보니,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가 발목을 잡는다.


이렇게 확대를 하다 보면 TV를 사려고 해도, 소파를 사려다가도 큰 물건을 자꾸자꾸 사면 나중에 어떻게 처분하지?라는 생각으로 시간이 흘러 어느새 미국 살이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다. 나름의 미니멀 라이프라고 자부심도 생겼다. 또한 있을 때의 편리함을 몰라서인지 갖고 싶다는 생각들도 다행히 금방 사라지곤 했다.


문제는 엉뚱하게 터졌다. 이제 제법 친구가 생기고 서로를 초대하고 집에 방문할 일이 많아졌다. '비교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지만 번번이 식사 초대 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우리 집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뭐하나 쓸만한 물건도 없는 거 같고, 그동안 잘 썼던 것들도 다 낡아 보인다. '우리 집만 다 중고네.'라는 말을 되뇌며 나 스스로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이런 생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패턴이 되었는지 어느 날은 남편이 우먼스 모임도 좋지만 다녀와서 너무 짜증을 안 부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잉??? 내가 언제??? 너무 찔렸다. 내가 속으로만 되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티가 났나? 내가 막 밖으로 말하고 그랬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생각을 해보다가 "그렇지만 다 사실이잖아! 우리 집 물건은 다 낡았잖아!"라고 결국 싸움을 일으켰다.


남편은 이제 미국 생활이 안정되었으니 그럼 다 팔고 새로 사라고 했다. "뭐 다 팔고 새로 사라고?" '그럼 내가 못할 줄 알고!

그렇지만 좀 막상 팔자면 아쉽고, 딱히 버릴 만큼 쓸모가 없어진 것도 아닌데..? 중고라고는 해도 여태 잘 쓰던 것들인데? 왜 새삼? 그럼에도 동시에 낡아 보이고, 초라해 보이는 이 마음은 대체 누구 탓이란 말인가?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 안에 마음끼리 서로 충돌을 일으켰다. 그래서 불행을 가져왔다. 잘 지내던 행복이라는 자리에 불행의 씨앗을 가져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싸움을 일으켰다.


미니멀 라이프 이건 다 빛 좋은 개살구다. 난 애초에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본 적도 없거니와 중고물품은 태어나서 머리 털나고 사본적도 없다. 처음엔 미국에 와서 '오 중고물품도 생각보다 괜찮구나. 굳이 비싸게 새 상품으로 사지 않아도 이렇게 잘 쓸 수 있구나.'라고 나 스스로 만들었던 자부심과 뿌듯함이라는 탑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위선이라고도 생각했다. 중고를 써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좋은 점을 찾았던 거야. 한국에서는 한 번도 쓰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좋아지고 괜찮다는 생각이 든단 말인가.


그래서 화도 나고 억울했다. '신혼살림인데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보통 신혼은 모두 다 새로 구입하고, 새 거로 시작하는데.' 새 거, 새로운 거, 신상에 목말랐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플렉스를 했다. 비싼 건 못 사더라고 평소에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소파의자와 식탁 테이블 그리고 행거를 구입했다. 얼추 $300불 정도를 지출하니 시원섭섭했다. 너무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사고 나니 뭔가 20% 정도의 찝찌름함이 내게 남았다.


좋긴 좋은데 말이야. 돈을 좀 너무 많이 쓴 거 같기도 하고, 충동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300불이 그렇게 큰돈은 아니잖아 싶기도 하고, 혼돈의 카오스가 되었다. 집에 와서 테이블을 설치하고, 행거를 조립했다.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제품들이었고 사고 나니 당장에 편리함이 내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위인(?)은 될 수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사지 않고 깨달았다면 나는 위인이었을 텐데 사고 나니 알게 되었다. 결국 하나의 물건이라는 것을. '물건을 향한 내 마음이 문제였구나.'라는 것을. 그랬다. 사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어차피 월급은 한정적이고, 이걸 샀으니 다른 걸 아껴야 했다.


중고물품으로 채운 대신 우리 부부는 식도락을 즐겼다. 먹고 싶은 거에는 늘 플렉스 했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는 플렉스 할 수 없어졌다. 물론 절대적으로 돈이 많아서 이곳저곳에 모두 플렉스 할 수 있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렇지만 그건 내 삶이 아니다. 부러워만 한다고 그 삶을 내가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가진 돈으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 생각해보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저 남이 가진 거에만 눈이 돌아갔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거에 더 집중했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어떤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는 사람인지를 좀 더 돌아봤다면 '이 집은 이렇게 사는구나. 우리는 이렇게 사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위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경험으로 극복했다. 중고물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나의 위선이 실은 정말로 중고물품이 내게 주는 가치가 새 상품을 사고 난 이후에 나에게 주는 가치와 비슷했다. 그전에는 몰랐기 때문에 새 상품만을 의례적으로 샀던 것이고 기회가 되어 다른 새로운 경험, 즉 중고물품을 사고 사용하면서 나만의 가치관을 재정립한 거였다. 내가 만든 가치관에 나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제동을 건 것도 나고 다시 깨닫고 돌아온 것도 나였다.


그래서 원래의 나에서 조금 한 뼘 성장한 나로 되돌아왔다. 물론 여전히 새 상품이 좋다. 그것들이 주는 편리함과 기쁨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다만, 다양한 구입의 방법 및 활용에 대해서도 폭넓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가치관을 늘 재정립하면서 사는 것도 역시 나 자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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