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Feb 12. 2022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더라도 엄마에게 맛있는 한 끼를 선물하고 싶다. 좋은 여행지에 가면 다음번에는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가늠해 본다. 이런 걸 보면 나는 확실히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와 함께 하는 미래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면 따뜻하고 평화롭다. 엄마를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소란하고 피곤하다. 카페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엄마는 커피를 마실 틈도 없이 걱정을 토해내고 있다. 오늘도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 엄마는 내 앞에서는 우리 딸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빠와 남동생에 관한 불만과 걱정을 쏟아낸다. 나는 안다. 동생 앞에서는 아빠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엄마의 말을 듣는 내내 나는 한 가지 생각만 떠오른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엄마는  밤에는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한숨도 못 자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까무룩 잠이 든다고 했다. 끼니를 잘 챙겨 먹지도 못한다고 한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다 큰 성인이 본인의 밥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걸까? 멀리 떨어져 살면서 애 둘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전쟁 같은 하루는 보내는 와중에  당신을 좀 더 살뜰히 챙겨달라는 건가? 여유가 없는 상태의 나는 엄마의 말에 호응하지 못한다. ‘엄마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힘들어.’ 이러려고 남편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엄마와 둘이 카페 데이트를 나온 게 아닌데.

“엄마, 혼자 방에 앉아서 걱정한다고 뭐 달라지는 건 없어. 그리고 말하는 대로 된다잖아. 잔소리로 느껴지는 걱정보다는 잘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잘할 거라고 믿는다. 그런 긍정의 언어로 표현해줘.”

엄마에게 자식은 나이와 상관없이 마냥 철없는 아이로만 보이겠지. 엄마의 말보다는 엄마가 보여주는 행동으로 엄마를 판단한 지가 언제인데. 엄마를 닮고 싶지 않고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엄마의 조언이 가슴에 남을 리 없다. 자꾸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이 점점 더 곤욕스럽다. 피하고 싶어 진다. 엄마의 말에 동조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내면 다투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건 대화가 아니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가 어디 있나? 남이었으면 애초에 손절했을 사인데.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하나뿐인 엄마니까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려고 애쓴다. 엄마에게 이런 부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싫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다 못해 간곡하게 부탁했다. 부탁하면 그 순간 잠깐 말을 멈췄던 엄마는 금세 돌림노래처럼 하던 이야기로 돌아온다.

‘엄마! 나를 너무 사랑한다면서, 왜 사랑하는 사람이 싫다는 행동을 계속하는 거야? 적어도 지난번과는 다른 표현으로 말을 바꿔본다던지, 농담을 좀 첨가하던지 엄마도 좀 애를 써줘.’

엄마가 방구석에 앉아 가족들 걱정을 하는 시간에 차라리 TV를 켜고 즐거운 프로그램을 보며 얼굴이 아플 정도로 크게 웃었으면 좋겠다. 심리학자들이 추천하는 정신건강에 좋은 행동들 리스트를 엄마에게 보내줘야겠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기. 엄마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니까 혼자 있는 집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불러도 좋겠고. 더 욕심을 낸다면 건강을 위해 산책을 하거나 새로운 걸 배우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카페 가는 걸 좋아하는데 아빠는 한 번도 카페를 데려가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는 대신 혼자서라도 카페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커피 값은 내가 내줄게.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

엄마에게 긍정의 언어를 사용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나도 막상 새로운 일을 앞두면 설레는 마음보다는 두려운 마음에 압도되는 편이다. 엄마 딸이 맞다. 나도 모르게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해보곤 한다. 그런 내가 매사에 걱정부터 앞서는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두려운 마음을 내 가족들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말로 뱉지 않으려 한다. 과거의 나와는 다른, 내가 바라는 내가 되어보려고 힘을 쥐어 짜내며 나아가려 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멈춰 서도록 부르고 이야기를 시작하며 주저앉히려 한다. 그런 엄마까지 끌고 나아갈 힘이 부족해서 외면하고 싶어 진다.


작가의 이전글 민낯의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