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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Feb 17. 2022

엄마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목표에서 벗어나기


우리 가족은 서울의 한 변두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한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로 지하주차장은 없다. 주차장이 부족해서 늦은 밤 주차를 하려면 이중주차를 해야 한다. 엄마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종종 차를 빼 달라는 인터폰을 받으면 운전을 못하는 나는 차키를 들고 내려가 경비원 아저씨게 부탁드렸다.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하기엔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어느 늦은 밤 엄마가 운전하는 낡은 무쏘의 보조석에 앉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당연히 주차공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입구 맨 앞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내일 엄마가 출근할 때 일방통행인 아파트 한 바퀴를 돌아 후문으로 빠져나가지 않아도 되는 명당자리였다. 엄마는 주차공간을 발견하자 기뻐하며 말했다. “엄마는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엄마의 말에는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응 엄마. 그런데 작은 일에 크게 기뻐하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크게 슬퍼하더라.” 그뿐인가 화도 잘 낸다. 아빠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운다. 식당에 가면 큰 소리로 컴플레인도 잘했다. 감정 기복이 심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법석을 떨 일인가 싶을 때도 많았다. 감정이 격해진 엄마에게 내가 말 한마디를 보태면 엄마의 화가 나에게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침묵으로 방관하는 생존 전략을 취했다.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지. 엄마 같은 어른은 되지 않겠어! 좋은 일이 있어도 떠들썩하게 좋아하지 않고 슬픈 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다짐하곤 했다. 모든 일에 해탈한 사람처럼 평온하고 싶었다.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가 장난을 걸어오면 즐겁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그런 나의 반응은 상대의 흥을 반감시키곤 했다. 직장에서 만난 상사는 꼭 엄마와 같은 사람이었다. 경력과 별개로 아마추어처럼 일을 하며 본인의 기분을 섞는 사람이었다. 담배를 태우러 옥상에 올라가면서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비흡연자인 나를 꼭 데리고 갔다. 추워서 코 끝이 빨개진 채로 담배 연기를 뿜으며 상사는 내게 물었다.

“나은 씨는 어떤 사람을 싫어해?”

나는 상사에게 대놓고 욕을 해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망설임 없이 평소에 했던 생각을 말했다.

“본인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렇구나.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 제일 싫더라.”

상사의 이어지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당했구나 생각했다. 처음부터 나를 공격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하필 어떤 사람을 싫어하지 물어봤겠는가. 나 스스로도 내가 재미없다고 생각했기에 내상이 컸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었던 나는 재미만 잃은 게 아니다. 타인(특히 엄마)의 감정과 내 기분을 분리시키려는 노력은 공감 능력까지 야금야금 퍼내고 있었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메말라서 바스러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 이것 봐.” 아이는 자주 자신이 그린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유치원에서 배운 춤을 춘다. 그리고는 칭찬을 기다리며 말없이 엄마를 바라본다. 아이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엄마의 반응에 시무룩해진다. 실망한 아이가 엄마와의 소통에 벽을 쌓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의 사랑을 통해 얻는 기쁨과 행복을  조금 더 격하게 아이가 만족할 만큼 표현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아이는 엄마가 표현하는 기쁨과 슬픔을 보며 감정을 학습해 나갈 텐데. 아이가 나처럼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면 어쩌지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김지윤 작가의 <모녀의 세계>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발버둥 치며 항상 엄마와 반대로 노를 젓는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를 젓는 목표점이 맹목적이라면, 당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면 한 번쯤 따져보자. 엄마처럼 살지 않는 것보다 나답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니까 말이다.” 내가 육아를 하며 가려웠던 부분을 책은 정확하게 긁어주었다. 내가 되고 싶은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아직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 더 이상 ‘나의 엄마’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와 마주 보며 목젖이 보일 정도로 소리 내어 웃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이의 감정을 누구보다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싶다. 아이에게 엄마와는 어떤 감정이든 나눌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고 싶다. 살면서 만나게 되는 어렵고 힘든 문제 앞에서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아이가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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