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Feb 21. 2022

잊지 마. 체벌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어.

90년 03월. 서울의 한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운동장에 모인 8살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구령대를 마주 보고 서게 되었다. 배정된 반의 자리에 가서 키 순서대로 여자와 남자가 따로 두 명씩 짝을 지어 섰다. 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큰 편이었다. 뒤로 뒤로 밀리다 줄 거의 끝에 서게 되었다. 나보다 키가 큰 여자아이가 한 명 더 있었나 보다. 그 아이는 짝꿍이 없이 혼자 서있었다. 내가 그 아이보다 키가 조금 더 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낯선 이 상황에서 처음 만나는 짝꿍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내 옆에 있어서 좋았다. 학부모들은 우리들 뒤에 바짝 서 있었다. 앞줄에 선 아이들보다 나는 엄마와 가깝게 서있었다. 입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 뒤에 혼자 서 있던 아이는 중간중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때마다 상체와 고개를 뒤로 돌려 친구가 될 그 아이에게 대답했다. 엄마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슬쩍 다가와 귓속말로 뒤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고 했다. 나는 엄마를 무서워했고 엄마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악수를 두었다.

"우리 엄마가 너랑 이야기하지 말래!"

목소리의 톤이 좀 높았다. 그 아이도 그 아이의 엄마도 그리고 우리 엄마도 빠짐없이 내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엄마는 우리 엄마에게 항의했다. 엄마는 난처해졌다.


입학식이 끝나고 엄마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한껏 웅크린 채 차가워진 엄마 옆에 바짝 따라붙어서 걸었다. 엄마가 방향을 틀어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멈춰 섰다. 나를 골목의 담벼락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다그쳤다. 왜 그렇게 말을 했냐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엄마는 손으로 나의 따귀를 때리고 발로 나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찼다. 엄마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나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버텨야 했다.


맞을 때 내 기분이 어땠더라? 억울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 아이와 놀지 말라는 걸로 받아들였다. 어떤 친구를 콕 집어서 놀지 말라고 하는 엄마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맞기 싫어서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그 상황을 넘기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기억을 더듬어 글을 써보는 과정에서야 알게 된다. 엄마는 다른 이야기를 한 거구나. 자꾸 뒤를 돌아 친구와 잡담을 나누지 말고 구령대에 계신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때려서 나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화가 난 감정을 참을 수 없어서 나를 때린 걸까? 확실한 건 나는 체벌을 당했지만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교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통증과 멍 그리고 마음의 상처만 남았다.


육아를 하면서 버거울 때면 오은영 박사님의 상담프로를 보곤 한다. 오은영 박사님은 유독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다. "절대로 체벌하지 마세요." 자식을 낳으면 아이는 부모와 다른 인격체이고 부모와 다른 인간인 남이다. 아이를 때리는 부모는 아이를 사랑해서, 너 잘되라고, 너의 잘못을 뜯어고쳐주기 위해서 체벌을 한다고 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는 가장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어릴 때 물건을 훔쳤는데 종아리 다섯 대를 맞고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체벌을 좋게 해석하는 것은 당신이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당신이 원래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때리지 않고 말로 했으면 당신은 더 잘 컷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체벌로 인해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본인을 기준으로 나는 맞고도 잘 컸다고 말하면 안 되고 아이를 체벌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물리적 힘에 의한 공포는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는 공포가 된다고 한다. 엄마에게 맞고 자랐던 나와 동생은 성인이 된 후에 박사님이 말씀한 것과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사춘기 때 삐뚤어지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어쩌면 엄마가 때려서라도 그런 나를 잡아준 게 도움이 된 게 아닐까라고. 이제는 확실하게 안다. 그건 아니다.


육아를 하면서 나도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나는 순간을 경험했다. 아이를   쥐어박고 싶은 순간이 물론 있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입덧이 한창 심했을 무렵이었다. 누워만 있고 싶었지만 아이를 등원시켜야 혼자서   있었다. 등원 준비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은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등원 준비를 마치고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 . 아이는 주차장을 걸어가다  자리에 멈춰 서더니 팬티에 쉬를 해버렸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는지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이를 때리면  된다는  알기에 화를 꾹꾹 눌렀지만 결국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체벌처럼 소리를 지르는 행동에서도 얻은 것은 없다. 아이에게 공포감만 심어주었다는  안다. 고치려고 하는데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를 생각해보니 카시트에 쉬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서 다행이지 않은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대신 알려줬어야 했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늦었지만 그래도 쉬가 마려우면 참지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