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싶은 사람

나의 사람

by 이나은


유치원생인 나는 엄마에게 언니를 낳아달라고 했다. 엄마는 어떤 설명도 없이 언니 대신 남동생을 낳아주셨다. 20살 이후 그런 나에게 쌍둥이 자매와 같은 친구가 생겼다. 아르바이트에서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우리는 알바를 그만둔 후에도 계속 만났다.


나는 그 친구와 모든 걸 함께 하고 싶었다. 새로 개봉한 영화가 있으면 함께 극장에 가고 싶었고 새로운 맛집을 알게 되어도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친구와 함께 하고 싶었다.


내가 읽은 책, 내가 본 영화, 전시회에서 본 사진과 그림들, 그리고 내가 들은 음악. 어느 날 잔디밭에서 받은 햇살과 여행지에서 본 풍경들. 나를 조금씩 달라지게 하는 이런 사소한 것들 마저도 그 친구와 함께 하고 싶었다.


둘이 만나면 별것 아닌 일로도 숨넘어가게 웃던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로 직장인이 되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2008년의 봄. 스물여섯의 우리는 시간을 맞춰 여행을 가기로 했고 나는 그때까지 가보지 못한 제주도에 가자고 했다. 친구는 제주도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줬다. 제주에 도착해서도 내가 가고 싶어 하는 한라산 등반을 함께 해줬다.


성판악 코스.


해가 뜨기 전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서 매점에 가방을 맡겼다. 매점 주인분께서 산에는 아직 눈이 있을 거라고 아이젠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셨다. 한번 쓰고 말 가장 싼 아이젠을 사서 등산을 시작했다. 백록담을 향해 오르는 길에 친구는 나에게 왜 너랑만 여행을 하면 극기훈련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농담 같은 푸념을 했다. 백록담에는 예상과는 다르게 물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눈 때문에 젖은 신발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하산하는 길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을 친구와 나는 계속 넘어져 반은 엉덩이로 내려왔다. 이럴 거면 아이젠이 아니라 깔고 앉을 비료포대를 준비했어야 했다. 10시간 넘게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우리가 먹은 건 컵라면과 삼각김밥 하나씩, 그리고 물. 점점 체력은 떨어져서 말할 힘도 없었다. 이미 웃음기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다시는 한라산 등반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지금은 한라산이 그립다. 그리고 힘든 일정을 불평 없이 함께 해준 친구에게 고맙다.


지금은 둘 다 육아를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통화하기도 어려운 사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학부형이 된 친구와 두 돌을 넘긴 아기를 둔 나. 육아 후배가 되어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육아를 하게 되면 한정된 체력과 시간으로 어떤 것들은 포기를 해야만 한다. 아기의 끝없는 요구를 채워주며 지친 친구를 위해 잠시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들을 내가 만들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칠 때면 친구 생각이 많이 난다. 함께 오르던 한라산도 그립고 힘든 일정을 불평 없이 함께 해준 친구에게 고맙다. 동갑이지만 언니처럼 항상 나를 배려해줬던 친구. 어린 나는 친구의 배려를 너무 당연하게만 받아들였고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멀어진 건 아닐까 후회가 든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한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멀어진 걸까. 그때와 나는 얼마나 달라져있는 걸까.


다시 친구와 여행 가고 싶다.

이번에는 네가 원하는 여행지와 코스로.





이전 09화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