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할 때 연인이 내게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 나는 그 말이 좋지만 뭔가 아쉬웠다. 보고 싶다는 열 번의 말보다 그 마음이 넘쳐 결국은 나를 만나기 위해 한 번의 시간을 내는 사람이길 원했다. 마음을 말로 표현해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행동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미래의 큰 달콤함을 약속하는 사람보다는 지금 소소한 기쁨을 전해주는 사람이 좋다.
사회초년생 때 직상상사는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앞으로 급여를 받으면 투자보다는 안전하게 저축을 하라고 했다.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잃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팀 우편함을 정리하면서 상사에게 온 우편물 봉투의 발신인을 보면 여전히 주식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도 잘 지켜지지 않는 다짐을 인생의 후배에게 권하는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지 말고, 그 원칙을 따르며 사는 모습을 보여 주자. 어떻게 먹는 게 바른 것인지 가르치려 하지 말고, 스스로 바르게 먹자.
-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아이를 일찍 재워라", "어린이집 하원 시간을 항상 같은 시간으로 지켜라"라고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 모르는 것을 알려주면 인생의 팁이 되겠지만 대부분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일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건 잔소리가 될 뿐이다. 잔소리는 좋은 관계를 망칠 뿐 우리를 변화시키진 못한다. 살면서 깨달은 진리를 말로 남에게 알려주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서 남들이 따라 하고 싶어 지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가르치지 않았어. 네가 배웠지. 그건 달라. 나는 너를 배우게 했어! 그리고 너한테서 배운 것도 많고!
-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누군가와 빠짐없이 이야기 나누고 공감받고 싶었던 적이 있다. 소통하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상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들어주며 상대방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구나 뒤늦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망설여지는 마음에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응원과 격려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는 내가 예상하고 바랬던 긍정적인 반응이 아니었고 그래서 나는 의지가 꺾이곤 했다. 누군가 나의 의견을 지지해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인 걸까? 내 마음의 소리보다 남들의 의견이 더 중요한 걸까?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일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마음을 꾹꾹 눌러 단단하게 하고 싶어 졌다. 입을 열어 마음의 밀도를 떨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 나의 관심사가 온통 하나뿐이라 구멍 난 풍선처럼 행동보다 말이 먼저 술술 나오곤 했다. 여물지 않은 생각들을 말로 뱉어내기보다는 모두가 잠든 새벽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일기에 내 마음을 기록하고 그 생각과 계획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도 여전히 어떤 이와는 서로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새벽이다.
자신에게 지극히 당연한 일.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 그냥 자신이 그것 자체인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연하니까. 그러니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서 너무 많이 이야기한다면, 어떤 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친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남을 의심하며 사는 것도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