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눈이 가는 복숭아 같은 그녀는 방송에서 말했다.
“칭찬도 평가예요. 사람들은 조언하는 척하면서 평가해요.”
수많은 악플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그녀의 말이라 그런지 잊히지 않았다. 돌아보니 칭찬을 받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경험이 떠올랐다. 데이트가 있어서 평소보다 예쁘게 차려입고 출근을 했던 날. 직장 상사가 격하게 반색하며 옷차림에 대해 칭찬을 했다. 그 순간 평소에 칭찬받지 못했던 내 스타일은 좋지 않은 평가를 동시에 받은 느낌이었다. 그 후 아침에 옷을 골라 입을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취향이 확고한 편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생각, 스타일, 취향이 바뀌기도 한다. 따뜻한 게 좋아서 신었던 양말을 보고 누군가는 본인의 할머니가 신는 양말을 신고 나왔다고 핀잔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양말이 갑자기 부끄러워지는 경험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나에게 이 구역 패테(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내 선택과 결정에 대해 남들이 어떤 평가를 할지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된다.
“그렇게 입지 말아라.”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강요하는 사람이 불편하다. 좋은 것을 추천해주고 정보를 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 조언과 정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나에게 달렸다. “왜 돌잔치를 그 장소로 선택했냐?”는 질문의 목소리와 말투에서 나라면 그 장소를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너는 왜 그 장소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피곤하다. 스스로를 감각적이고 남들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나는 그저 그들의 취향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존중을 받고 싶을 뿐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거 내가 해봤는데 별로야. 그거 말고 이거 해.” 본인에게 별로였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별로일 거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당장은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끝까지 살아보지 않고 어떤 시도가 지금 별로였다고 앞으로도 계속 별로일 거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 그 확신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이 버겁다.
어떤 사람에게서 이런 종류의 버거움과 피로감을 느끼면 우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구나 생각하며 뒤로 물러나게 된다. 나를 지키기 위한 거리를 확보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계속해서 좋아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 좋아했던 것들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의 변화가 남들의 평가나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집밖으로 나설 준비를 한다. 상의에 어울리지 않는 하의를 입고, 상의와 하의 모두에 어울리지 않는 구두도 신는다. 상의에 어울릴 하의와 신발을 떠올려보지만 내가 가진 옷 중에 그것들은 없다. 오늘도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듣겠지. 그 말이 싫어서 돈을 들여 쇼핑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 나는 패테다 마음을 비우면 옷차림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고 패테로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