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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Jan 24. 2019

내가 원했던 날들

나의 행복

혼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둘이 되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나누고 싶었다. 이성을 만나게 되면 내 짝이 될 사람인지 가늠하기 바빴고 그런 소모적인 일에 지쳤다. 결혼한 친구들은 연애할 때 좋은 거라며 즐기라고 했다. 남들에겐 쉬워 보이는 연애가 나에겐 왜 이리 어려운지.

어느 날 잠에서 눈을 뜨면 내 옆에는 남편이 누워있고 나는 임산부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략이 가능한 일이라면 연애를 내 삶에서 빼버리고 싶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때 취미로 시작한 동호회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살면서 결혼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을 비우고 있던 때라 내 짝이 될 남자인지 따져보지 않아도 되었다. 편안한 마음에서 시작한 연애는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바람처럼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었지만 삶은 동화처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았다. 결혼하고 곧이어 출산까지 하고 숨 좀 돌리나 했더니 내 앞에는 또 다른 넘어야 할 산들이 버티고 있었다.

육아.

그리고 경단녀에서 벗어나는 일.

한 아이를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히 키워내는 일은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던 어떤 것보다 큰 무게로 다가온다.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되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도 많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어가면서 힘들어서 싸우는 일도 잦다. 그럴 때면 둘이서 연애를 하며 좋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지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산들을 오르고 내려야 따뜻하고 안정된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헤아릴 수 없으니 지름길을 찾는 일도 멈춘다.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에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시간은 없다.

산보하듯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딸에게 한 번 더 웃어주고 더 많이 안아준다.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자주 표현한다. 오늘 내가 내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순간들이 모두 내가 원했던 날들이다.





산보



저기로 가고 싶다.


걷다 보니 산을 마주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뒤돌아 평지를 바라본다.


정상을 밟고 한숨 돌리니

산세가 다른 산들이 길 위에 버티고 있다


얼마나 더 걸어야 닿을 수 있는지


헤아릴 수 없으니 첩경을 찾는 일도 멈춘다


계곡에 발도 담가보고

멈춰서 들꽃도 바라본다


산보하듯 한 걸음 내디딜 뿐


발길이 닿은 모든 곳이

내가 가고 싶어 했던 그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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