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릴 땐

by 이나은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모자를 쓰지 않을 걸 후회했다. 이렇게 추운 날은 집에서 담요를 덮고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어야 했다. 그렇지만 집에 있었다면 아사나를 만날 수 없었겠지. 9살에 만난 우리는 20대 중반이 되었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만난 아사나는 검은색 더블버튼코트에 검은 털모자를 쓰고 있다. 한겨울에도 방한보다는 스타일을 선택한 그녀의 감각이 부럽다. 벙어리장갑도 챙기는 준비성을 보였다. 나를 발견한 그녀는 미소 지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환승하고 몇 정거장을 더 갔다. 버스정류장에서 주택 집 사이의 언덕을 따라 걷는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머릿속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걷는 중간 그녀가 장갑 한 쪽을 내게 건넸다. 유난히 하얀 피부를 가진 아사나의 코가 빨갛게 익었다.

미술관 입구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 오른편에 있는 기념품숍에서 티켓을 구매했다. 기념품숍이 따뜻해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전시를 보려면 실외로 나가 전시실로 이동해야 했다. 주말이지만 미술관엔 관람객이 별로 없었다. 한파 때문인지, 평소에도 사람이 없는 건지 환기미술관에 처음 온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림에 관심을 두게 되고 미술관 전시를 찾아다니게 된 건 두 친구 덕분이다. 그중에 한 명이 아사나다. 그녀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나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그녀의 그림을 보면서 내게는 그림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아사나는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포기했다. 포기할 꿈이 없다는 건 다행인 걸까? 전시는 1층과 2층으로 이어졌다. 1층과 2층의 중앙이 텅 비어 있는 공간이라 작품을 보며 나누는 대화가 크게 울렸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고 목소리를 낮춰 귓속말을 나눴다. 미술관 밖은 모든 걸 얼려버릴 날씨인데 안은 너무 포근했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의 몫도 컸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햇빛이 목과 등을 데웠다. 밝고 따뜻하고 한산한 곳.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몸의 긴장이 풀리며 펴졌다.

종종거리며 미술관으로 올 때와는 다르게 우리는 서서히 느긋해졌다. 2층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1층의 푸른 점화는 정면에서 볼 때와는 또 달랐다. 하얀 벽에 걸린 커다란 캔버스. 그 안에 수많은 파란 점. 비슷한 듯하지만 점 하나하나가 모두 달랐다. 그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나를 보며 아사나는 주책맞게 눈물 흘리지 말라고, 울면 같이 안 다닐 거라 말했다. 그녀의 경고에 눈물보다 웃음이 먼저 새어 나왔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무엇이 되든 먼 미래에도 아사나를 계속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엇도 되지 못해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도 붙일 수 없다 해도. 그때도 우리가 함께 그림을 보러 다닐 수 있기를. 마음이 시릴 땐 다시 환기미술관을 찾아야지. 그림 앞에 앉아서 뭉근한 햇빛을 받으며 따뜻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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