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가족을 소개해야 한다는 현실이 불쑥 다가왔다. 상견례를 생략하고 결혼까지 가는 커플도 있을까? 남자 친구가 나의 엄마와 아빠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남자 친구가 나의 부모님과 같은 예비 시부모님을 소개한다면, 나는 오히려 결혼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밥 한 끼를 먹는 짧은 시간 동안 엄마 아빠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첫 만남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거나, 우리 가족의 민낯이 드러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미 남자 친구의 가족과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차도 마셨다. 이제 내 차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고민만 깊어지던 중, 도서관에서 서양화를 배웠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래, 작가님이라면 지금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 주실지도 모르겠다. 작가님은 결혼도 하셨고 대학생 딸도 있었다. 연애를 넘어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 경험한 인생의 선배.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셨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업 중 내 그림에 대해 건넨 조언은 언제나 그림만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삶에도 적용되는 지혜가 담겨 있었다.
마침, 작가님이 작업실을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작업실이 우리 집 근처였다. 퇴근 후에 작업실에 방문하기로 했다. 작업실은 5평 정도의 정사각형 공간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벽면에 걸린 그림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출입문 옆 벽의 반을 가득 채운 찔레꽃. 어두운 배경 속에서 밝은 분홍빛으로 활짝 핀 꽃들. 화병에 담겨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가지들이 야생에서 자란 것처럼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그림이, 그린 이를 닮아 보였다. 작가님은 따뜻한 녹차를 머그잔에 담아 건네며, 맞은편 스툴에 앉았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반달눈이 되던 분이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잘 지냈어요?”라며 먼저 안부를 건네겼다. 못 보는 사이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며, 화장도 하고 정장을 입은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고 하셨다. “만나는 사람은 생겼어요?”라는 질문에, 나는 말문이 트였다.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나는 나니까. 본인이 가진 가치관과,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한 거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묶여 있던 매듭 하나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랬다. 내 부모님을 내가 선택한 건 아니었다. 세상에 태어나 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홀로이기도 하다. 내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배경보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결혼한다면 그런 사람과 하는 게 맞다.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앞으로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