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덕거리며 살자

by 이나은

연애 2년 차에 오빠를 엄마에게 처음 소개한 날. 오빠가 돌아가고 우리 엄마가 나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저 남자는 널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나올 수 있는 표정이 아니라고 엄마는 걱정했어. 우리가 처음 만난 자전거 동호회에서 오빠에겐 별명이 있었지. 영화 신세계에서 박성웅 배우가 죽기 직전에 하는 말, “죽기 딱 좋은 날씨네”라고 말할 때의 그 표정이 오빠의 평소 표정이잖아.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다고 하니 오빠는 평소보다 더 긴장했을 거고 표정은 더 굳어 있었을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알잖아. 오빠가 나에게만 보여주는 얼굴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오빠는 많이 웃었어. 자전거를 타고 철원의 고석정으로 달려가다가 중간에 점심으로 닭볶음탕을 먹고 소화시킬 겸 발야구를 했잖아. 사실 나 그날 발야구 하기 싫었어. 의지와 상관없이 오른발과 동시에 움직이는 오른팔. 공을 꼭 중앙의 네트를 넘기겠다는 의욕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얍’이라는 소리로 세어 나웠지. 야무진 기합과 달리 공과 어긋나는 헛발질. 그날 나에게 날아오는 공을 상대팀에게 돌려주기 위해 몸을 쓸 때마다 오빠뿐만 아니라 모임에 참석한 모두를 숨 넘어가게 웃겨줬지. 그런 나 때문에 게임 진행이 안 됐잖아. 그래서인지 나에게 처음 각인된 오빠의 모습은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었어. 그 뒤로도 오빠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뭘 하든 잘 웃었어. 웃지 않으면 차갑다 못해 무서워 보이는 오빠가 나에게만 보여주는 바보 같은 미소가 좋아서 오빠 앞에선 더 말이 많아졌던 것 같아. 오빠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고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나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시의적절한 반응을 보여줬어. 그게 또 나는 웃겼어. 남들이 보면 저게 웃긴 건가 싶겠지만 둘만의 웃음코드가 잘 맞았어.

작년 여름에 한 번은 시간을 맞춰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집으로 오빠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물었잖아. 요즘 오빠는 나에게 불만이 없는지. 오빠는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는 말은 생략한 채 대답했어. 불만이 있지만 화가 나는 그 순간만 참으면 괜찮다고. 그래서 나는 또다시 물었지. 참으면 상대방은 왜 화가 났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지 않냐고.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할 텐데 왜 말을 하지 않냐고. 그랬더니 오빠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부터 내쉬고 말했어.

“살아보니까 얘기해도 바뀌는 게 없더라고.”

오빠의 대답을 듣고 나는 빵 터지고 말았네. 맞네 맞아. 나는 남편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변화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 고집불통인 내가 스스로 민망해져서 더 크게 웃어넘기고 싶었어. 그리고 생각했지. 이 남자 내 예상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구나 그래서 놀랐어. 그날 잠들기 전쯤 오빠와의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니 오빠가 나를 바꾸려 하지 않고 이해해 줘서 고마웠어.

요즘 오빠 일이 많아져서 야근도 잦아지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잖아. 올해 유난히 뜨겁고 긴 여름이 이어졌는데 휴가를 내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갈 수도 없었지. 일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업무 스트레스도 많아진 게 느껴져. 저녁도 먹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자정 무렵에 돌아오면 서둘러 샤워부터 끝내고 뒤늦게 허기를 채우잖아. 배가 차면 오빠는 TV 앞에 모로 누워 유튜브에 빠져. 아무 생각 없이 영상에 빠지는 일이 오빠에게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오빠의 하루 끝의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도 해.

그런데 오빠 그거 알아? 오빠가 일에 치이는 동안 나도 웃을 일이 많이 사라졌어.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오빠는 이미 출근해 있어.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내고 나면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운동을 해.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대화 상대 없이 거의 모든 걸 혼자 해. 가끔은 혼자 쇼핑도 하고. 어색한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것보다 혼밥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외롭게 느껴져. 퇴근한 오빠와 한 집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오빠가 잠이 쏟아질 때까지 TV만 바라보다 아이들이 먼저 잠들어있는 침실로 들어가면 외로웠던 감정이 결국 분노로 바뀌기도 해. 같이 살지만 대화도 없이 거실과 방으로 따로 떨어져 각자의 공간에 있을 거라면 우리가 함께 사는 게 맞는 걸까?

오빠와 눈 맞추고 웃으며 보내는 날들을 떠올려보면 사실 별거 없는 것 같아. 낮 시간 동안 떨어져 있으며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시간. 아주 잠깐이라도 아이들 없이 오빠랑 대화를 나누는 여유가 있으면 되는 것 같아.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나에겐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사실 그러려고 결혼한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 서로 조금씩 노력해 보자. 오빠는 바쁘고 피곤하더라고 하루 끝에 아내랑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나는 낮 동안에 혼자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친구를 만들어 볼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면 좋을 텐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육아(노동)로만 느껴질 때가 많아. 아이들이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알면 섭섭하겠군. 이것도 함께 좀 더 고민해 보자. 일에 지친 오빠에게 웃음을 찾아주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결국은 내 웃음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가 되었네. 나 원래 이런 거 알고 있었지? 이만 줄일게 나머지는 얼굴 보면서 말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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