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할 결심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

by 이나은

분명 싱글일 때보다 남편과 둘이 함께하는 순간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었겠지. 과거의 단단했던 결심은 10년을 채우기도 전에 균열이 생겼다. 아이까지 네 식구가 된 지금은 다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 더 그런 것일까? 친정엄마는 요즘 들어 부쩍 외롭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한다. 아이들만 엄마 집에 보내고 싶지만 마산에서 서울까지 아이들만 보내기는 힘들다.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는 시부모님과는 함께 식사하는 날이 잦다. 친정은 너무 멀고 시가는 너무 가깝다. 살아보니 멀어도 문제 너무 가까워도 탈이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어 혼자일 때보다 챙겨야 할 가족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빛나고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내가 가장 빛나는 시간으로 느껴진다. 나의 독립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가족들에게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시아버지와 함께 일한다고 했을 때 그 결정이 싫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창원에서는 소설 수업을 찾기 어려웠다. 문예창작과로 재입학하고 싶다고 생각한 지 좀 되었지만, 옆 도시 부산에도 문예창작과 대학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부산소설가협회가 있고 협회에서 이번에 소설창작반이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12주 동안 부산에 가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소설창작반을 듣기 위해선 수업 중에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할 결심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간 평일 낮의 수업이었다면 다른 가족의 도움 없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수강 신청을 했을 것이다. 수업은 저녁 6시 30분부터 시작되어 8시에 끝날 예정이라고 했다. 집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적어도 오후 5시 전에는 출발해야 했고 그렇다면 수업이 있는 날에는 남편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을 맡아줘야 했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부산에서 토요일마다 12주 동안 에세이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은 반대했다. 주말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서. 본인은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 주말에도 필요하다면 출근해야 하지만 내가 하는 글쓰기 수업은 취미가 아니냐며. 나에게 글쓰기는 취미가 아니다. 계속해서 쓴다고 해서 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장담은 못 하겠지만. 그때 남편과 크게 다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쟁취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번에는 남편이 화요일 저녁마다 일찍 퇴근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업이 시작되고 2주 차에 갈등이 생겼다. 수업과 시할머니의 제사가 하필 같은 날이었다. 시아버지는 장남이었고 시댁에서 제사를 챙겼다. 남편은 이번 주는 수업을 빠지고 제사에 참석해 달라고 했다. 수업 시작 전부터 나도 말했었다. 제사와 수업이 같은 날로 겹치는데, 수업에 가고 싶다고. 얼굴도 뵌 적 없는 시할머니에게는 손주며느리가 셋이 있는데 그중 둘은 서울에 살고 있다. 멀리서 산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사에 참석한 적이 없고 가까이 살고 직장에 다니지 않는 나만 제사에 참석해 왔다. 그동안은 별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듣고 싶은 수업을 빠져가면서 손주도 참석하지 않는 제사에 나만 꼭 참석해야 하는 상황은 공평하지 않아 보였다. 결국 남편과 또 크게 싸웠다. 아내의 불만보다는 부모님의 서운한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남편이 남의 편으로만 보였다.

남편과 대립하며 이제는 시부모님과의 평화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제사 당일 정오 무렵 전화를 하셨다. 얼마 전 남편이 아파서 어머니가 잣죽을 한 솥 끓여주셨다. 그때 곰솥째 가져다주셨는데 탕국을 끓이려면 그 냄비가 필요하다고 올 때 챙겨 오라고 당부하셨다. 진작 냄비를 반납했야 했다. 수업 전까진 시간이 남아있었고 제사음식을 하고 계실 어머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옆동으로 넘어갔다.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 보다 14평 넓은 시가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만 고요히 계셨다. 며느리인 나를 보자 두 분의 얼굴이 환해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수업 시간에 맞춰 시댁에서 나오려 했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강사에게 연락해 문의했다. 혹시 이번 주 수업만 화요일 대신 목요일반 수업에 참석할 수 있을지. 그렇게 나는 또 평화를 선택했다.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 이제는 싸워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나보다 남을 배려하며 쉽게 져주지 않아야 한다. 또한 갈등을 회피하는 나 자신도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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