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학생

전환점

by 이나은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전, 우리 가족은 서울 변두리 투룸 빌라에서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집에선 5살 어린 남동생과 한방에서 2층 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만의 방이 생겼다. 엄마는 우리 남매를 전학시키지 않았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여름 방학식 날. 담임선생님은 방학 동안 <좀머 씨 이야기>를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셨다. 숙제를 알려주시며 한마디 덧붙이셨다. ‘아무’도 숙제를 해오지 않겠지만 일단 숙제를 내주긴 한다고. 담임선생님은 국어과목을 맡고 계셨다. 방학에도 부모님은 평일이면 평소처럼 출근하셨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공부는 하기 싫었고, 볼만한 TV 프로그램은 방송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려면 등교할 때처럼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고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야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멀리서 살고 있는 나에게 만나자고 연락하는 친구는 없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으면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화보가 나온 잡지를 사준다고 했다. 달콤한 제안에도 넘어가지 않았지만, 순정 만화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 읽었다. 이사 온 집 근처의 책 대여점을 찾기 시작했다. 2주에 한 번 발행되는 만화잡지 <이슈>를 빌렸다. 제일 먼저 한승원 만화가의 [프린세스]를 찾아 펼쳤다. 처음엔 전체적으로 빠르게 후루룩 읽었다. 줄거리를 파악한 뒤에는 한 컷, 한 컷을 빠짐없이 눈에 담은 뒤에야 다른 연재만화들을 읽었다. 2박 3일 동안. 만화를 읽은 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오늘 본 만화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떠올랐다. 다음 이야기를 보려면 2주를 기다려야 했다.

방학 전, 같은 반 친구가 학교에 빌려왔던 만화책이 떠올랐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 작가가 그린 순정 만화였다. 만화에 몰입해 읽는 동안 발바닥이 몇 번이나 찌릿찌릿했는지 모른다. 그 만화책 단행본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대여점에 가서 직원에게 만화를 설명했다. 일본 만화. 여자주인공이 성별을 속이고 남자기숙사 고등학교에 전학을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 남자주인공은 높이뛰기 선수. 부상을 당해서 운동을 그만둔 상태. 직원은 책방에 있는 만화책을 다 읽어본 게 아니라 설명을 들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제목이나 작가의 이름을 알아 오라고 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방학 전에 비상 연락망으로 내 앞번호 친구의 집 전화번호와 내 뒷번호 친구의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나는 뒷번호 친구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 친구 이나은이라고 하는데 00이 집에 있을까요?”

마침, 친구가 집에 있었다. 앞뒤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만화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 모르겠어? 그럼 혹시 네 뒷번호 친구 전화번호 나 알려줄 수 있어?”

그렇게 나는 친구들에게 계속 전화를 돌렸고 결국은 그 만화책의 제목을 알아냈다.

매일 책 대여점 문턱을 넘던 나는 만화 코너 옆 소설로 눈길을 돌렸다. 낯선 제목들 사이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하얀 바탕에 지팡이를 들고 걷고 있는 한 사내. 사내의 머리 위로 제비꽃색의 구름이 몇 겹으로 층을 이루고 있었다. 책은 생각보다 얇았다. 100페이지가 살짝 넘는 것 같았다. 이 정도 라면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이 이야기한 ‘아무’에 포함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의 예상을 벗어나는 학생이 되고 싶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꼭 써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 부담을 느끼고 하기 싫었을 것 같다. 해야 한다고 하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춘기의 엇나간 마음이었을까.

개학을 하고 2학년 7반 학생 중 누구도 국어 과목 방학숙제를 해오진 않았다. 나는 책을 완독 하긴 했지만,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씨라 읽긴 읽었지만 좀머 씨가 왜 매일 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를 걷고 또 걸었는지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도 선생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15살 아이였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서, 선생님의 예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읽긴 읽었지만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 감상문은 쓸 수 없었던 책. 나의 독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책을 읽지 않던 소녀는 28년이 지난 후, 매일 밤이면 두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읽고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향수>와 <깊이에의 강요>를 완독 했다. 다시 읽기 위해 <좀머 씨 이야기>도 구매해 뒀다. 다시 읽는다면 과거에 못 한 숙제를 끝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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