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챙기는 아빠 딸

부모님에게 배우거나 닮은 점

by 이나은

성인이 된 후, 남동생은 나에게 밖으로 나가 운동 좀 하라고 잔소리했다. 그런 동생에게 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책 좀 읽으라고. 그렇다고 내가 책만 보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살 때의 나는 집순이였다. 대학에 다닐 때는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 친구들과 놀다가도 일일 드라마를 챙겨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곤 했다. 주말 중 하루는 집에서 온종일 있는 쉬는 날이 필수였다. 궁금한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책이 쌓여 있었다. 극 내향인인 나는 친구와 술 마시고 놀기보단 혼자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당시의 내가 생각한 운동은 여럿이 모여 시끌벅적 땀 흘리는 일이었다.

부모님 중에선 아빠가 유독 운동을 좋아했다. 57년 닭띠인 아빠의 출생신고는 2년 후로 되어있다. 그 시절엔 영아기 때 죽는 아이들이 많아 그렇게 하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빠의 남동생도 빠른 이별을 했다. 아빠는 어린 시절 폐결핵에 걸려 고비를 넘겼다고 들었다. 지금도 건강검진에서 흉부 X-ray를 찍으면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아빠는 건강을 챙기는 일에 진심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아빠를 따라 집 근처의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아빠는 사람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다. 벤치에 앉아 공을 따라 달리는 아빠를 보면 유난히 목이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닭띠라 그런가. 젊은 시절 태웠던 담배는 내가 국민학교 입학 전에 끊었다. 엄마는 담배 끊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걸 해내는 아빠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모른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엄마가 먹으려고 사놓은 영양제를 실제로 챙겨 먹는 건 아빠였다. 엄마는 아빠 혼자 얼마나 오래 살려고 저러는지 꼴 보기 싫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아파서 누워있는 아빠보다는 다른 사람(배우자인 엄마까지도)은 챙길 줄 몰라도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는 게 나은 것 아닐까? 나보다 26살 많은 아빠는 내가 20대 때 마라톤과 사랑에 빠졌다. 하루를 쉬면 내 몸이 알고 이틀을 쉬면 남들이 알까 그런지, 하루도 달리기를 거르지 않았다. 외할머니 생신이어서 한남동에 있는 외갓집에 가야 하는 주말이었다. 아빠는 집 앞 중랑천에서 달리기를 시작해서 한강을 따라갈 테니(대략 14km) 동생과 나에게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나도 그날만큼은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좀 하루 달리기를 쉬고 말끔하게 차려입고 같이 차를 타고 가면 되지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주차하고 할머니 댁에 들어섰더니 아빠는 먼저 와서 샤워 중이었다.

그랬던 내가 달라졌다. 평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가 되면 운동부터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받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중엔 매일 골프 연습장에 간다. 필라테스는 어린 시절부터 구부정했던 자세로 서른이 넘은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찾아와서 시작했다. 골프는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먼저 시작했다. 배는 불러오고 입덧으로 누워만 있고 싶지만 하원한 첫째를 챙겨야 했다. 그런 나를 두고 혼자서 공을 치러 가는 남편이 꼴 보기 싫었다. 둘째를 낳고 그다음 해인 여름부터 남편이 하면 나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남편은 타고나길 운동신경이 좋았고 나는 그렇지 못하다. 운동신경이 좋았다면 어릴 때부터 운동을 즐겼을지 모르겠다. 39살에 시작한 골프. 남편이 바쁜 요즘, 나는 혼자 연습장에 간다. 남편은 몇 년째 연습장에 거의 가지 못해도 매번 나보다 점수가 좋다. 언젠가 한 번 골프장에서 점수로 남편을 이겨보려면 연습을 쉴 수 없다. 어릴 땐 아빠는 운동을 시작하면 왜 그렇게 남에게 지기 싫어할까, 생각했는데 아빠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과거의 나는 공부든, 운동이든 남보다 못하는 나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하지 않는 걸 선택하기도 했다. 작년 10월엔 다니던 스포츠센터가 한 달 동안 문을 닫았다. 꾸준히 프로에게 받던 지도를 쉬게 되고 딱 보름이 지나자, 공이 전혀 맞지 않았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흡해 보이는 골프. 평소 어떤 일을 할 때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골프를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먼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나는 나이가 들고 내 아이들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라운딩 가는 모습을. 그 미래에 다가서고 싶었다. 더 노력해 보자 마음을 다잡으며 올해는 여성 골프 동호회에 가입했다. 동호회에선 내가 막내고 점수도 꼴찌다. 체력 좋고 부지런한 언니들은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 연습장에 가서 공이 잘 맞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내가 정한 루틴에 따라 스윙을 휘두른다. 어제 잘 맞는다고 오늘도 잘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길게 보면 작년보다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 5회 이상 운동을 한다. 9월부턴 수영 초급반에 다시 등록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발차기를 멈추지 않고 호흡을 할 수 있기를. 그래서 자유형을 능숙하게 할 수 있기를. 필라테스에 가는 날이면 하루에 3가지 운동을 한다. 골프, 필라테스 그리고 수영. 어쩌다 내가 이렇게 운동을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누가 뭐래도 아빠 딸이 맞다. 그런 내가 싫지 않다. 앞으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로 아이들 곁을 지킬 거다. 곧 고희를 맞이할 아빠는 요즘 탁구에 빠져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무'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