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과 거리 두기
2016년 12월은 두 가지 키워드로 말할 수 있다. 도깨비 그리고 출산. 12월이 시작된 1일, 예정일보다 일주일 빠르게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다. 출산을 끝내고 마무리 처치를 받으며 생각했다. 방금 태어난 아이도 언젠가 임신하게 될까? 그렇다면 내가 겪은 이 고통을 내 아이도 피할 수 없겠지? 탯줄을 자르고 분만실 밖에서 대기하던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고 말했다.
“우리는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일로 강요하지 말자.”
아이는 신생아실로 가고 나는 병실에서 회복에 집중했다. 자연분만했기에 출산의 고통이 끝나자 크게 아픈 곳은 없었다. 아이의 탄생은 큰 기쁨이었지만 기쁨은 혼자 오지 않았다. 기쁨 뒤에는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출산 2일 차에, 병실 침대에 누운 채 공유가 나오는 드라마 도깨비를 보았다. 그 시간만큼은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매주 드라마 방영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집으로 돌아오니 조리원 생활이 그리웠다. 신축 투룸 빌라 5층의 거실, 2인용 소파에 앉아 수유한다. 낮에도, 밤에도.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은 침실에서 자고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만 깨어 있는 기분이다. 불투명 유리창이 세상과 나를 가른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둘째는 없다”라고 되뇌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지. 4년이 지나 생생했던 기억은 흐릿해졌다. 나는 다시 입덧을 겪는다. 다 알면서도 다시 겪을 각오를 했다. 둘째를 만나기 위해선 필요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고령 임산부는 임신성 당뇨에 걸려 하루에도 몇 번씩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 혈당을 체크한다. 허벅지에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 일도 익숙해졌다. 두 번째는 더 수월할 줄 알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1박 2일의 진통 끝에야 둘째를 품에 안아볼 수 있었다.
남자였다. ‘너는 아이를 낳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첫째가 잠든 침실을 빠져나와 거실에서 둘째에게 수유한다. 두 번의 출산 사이 우리는 이사했다. 창밖 풍경이 달라져 있다. 저 멀리 101동이, 그보다 가까이 104동이 보인다. 새벽 4시 무렵에도 불 켜진 집들이 꽤 있다. 깨어 있는 이들 중 나처럼 수유 중인 엄마도 있겠지. 둘째가 단지 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 그 엄마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같은 처지의 동지를 떠올리니, 처음보단 덜 외롭다. 시선을 돌리자, 식탁에 위 화병이 보인다. 두 품종의 장미가 꽂혀 있다. 블랙뷰티와 가브리엘라. 블랙뷰티는 붉은 벨벳 같은 질감과 뾰족한 화형이 인상적이다.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가브리엘라는 딸기 우윳빛처럼 부드럽다. 장미 사이의 배열에서 묘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 나는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 이 시간을 견디는 게 아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블랙뷰티처럼 강해지고 싶다. 아이들에겐 부드럽고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 어딘가 깨어 있을 육아 동지를 떠올리며, 오늘도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