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봉봉

이야기 구조 만들기

by 이나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이 먼저 겨울로 들어선다. 가을을 좋아하면서도 이 계절만 되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하다. 어젯밤, 오랜만에 꿈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왔다. 함께할 땐 늘 넷이었고, 장난처럼 서로의 이름 끝에 ‘봉’을 붙여 유봉, 정봉, 가봉, 나봉으로 불렀다. 우리는 봉봉이들이었다. 유봉은 20대 초반 결혼과 출산으로 만나기 어려워졌고, 정봉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수험생이 되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봉과 나는 서른 무렵까지 서로의 일상을 나눴다. 가봉도 나도 각자 개성이 강한 편이었는데, 서로의 다름을 좋은 자극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친구가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작은 말다툼 한번 없었던 우리가 서른이 넘어서 의견충돌이 생길 줄은 몰랐다. 가봉은 결혼 후 환경이 바뀌었고, 나는 회사에서 근로 계약 연장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우리는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졌다. 한번 균열이 생기고 나니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가까웠던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도 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만큼 더 멀어지다가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친구와 마지막으로 본 건 내 결혼식 날이었다. 가봉과 전처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결혼과 함께 임신하게 된 나는 변화에 적응하기에 바빴다. 신혼집 전세 계약 2년을 채우기 전에 남편과 나는 서울을 떠나 마산으로 가게 되었다. 장거리 이사를 앞두고 친구를 만나고 싶어 연락했다. 연락이 뜸했던 시간만큼 통화를 하는 우리는 어색했다. 만나서 얼굴을 보자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마산으로 온 뒤로는 서로 연락이 없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며 혼자서 가봉의 근황을 확인하곤 했다.

꿈에서 친구들은 셋이서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길을 걷다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나를 빼고 세 친구는 여전히 만나고 있었구나. 질투를 느꼈다. 질투는 꿈속에서도 존재감이 컸다. 꿈속의 나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나도 불러달라고 했다. 잠에서 깬 뒤 시간이 지나자, 질투의 감정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바쁘게 지내느라 잊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보고 싶었구나.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열고 가봉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고 싶다고. 어쩌면 친구는 갑작스러운 나의 연락으로 당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통하지 않더라도. 내가 내 마음을 인정하고 용기 낸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멀어진 우정도 언젠가 다시 맞닿을 수 있을까. 그런 희망을 품어본다. 표현해야만 알게 되는 마음을 봉봉이들에게 전해본다. 가을이 지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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