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향한 글쓰기
작가와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는 북토크를 좋아합니다. 좋은 책을 읽다 보면 그 책을 쓴 작가와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자라나 있더군요. 학창 시절 선생님과 엄마가 읽으라고 할 땐 읽지 않던 책을, 대학에 가서야 스스로 찾아 읽게 되었어요. 주로 소설이었지요. 한 권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 끝에는 작가의 말과 해설이 있어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챙겨보는 독자였지요. 그러다 어떤 이름이 눈에 익기 시작했어요. 신형철 문학평론가. 어떤 소설은 작품보다 그 뒤에 붙은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이 더 좋게 느껴지기도 했지요. 주객이 전도된 셈이었지요. 나중에는 신형철 평론가가 추천한 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읽게 되었어요. <몰락의 에티카>라는 평론집을 시작으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인생의 역사>까지 읽게 되었어요. 그 흐름 속에서, 한 번쯤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랐지요. 그러던 중 2025년,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어요. 도서관에서 11월 토요 인문 특강으로 그분의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이래서 도서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특강에서는 좋은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를 구분하는 기준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어요. 좋은 책은 진짜 희망을 이야기하고, 가짜 희망은 그저 긍정만을 이야기한다고요. 그 중간에는 절망할 줄 아는 작가가 있다고도 하셨어요. 진짜 절망은 금방 잊는 것이 아니라, 해결을 향해 지속적으로 버텨내는 데서 온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절망의 지구력. 그렇다면 진짜 희망과 가짜 희망의 차이는 뭘까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적인 긍정만을 말하는 작가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지요. 반대로 근거 있는 희망이야말로 진짜 희망이며, 객관적으로 가능성이 없어 보일 때 더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보고 희망을 발견한다고요. 결국, 타인을 믿는 사람이 희망의 기원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지요.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요.
강연을 듣고 나니 아직 확실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의 기원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그 시작이 누군가를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라면, 당장 이 순간부터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어떤 사람의 행동에서 조용한 희망을 느껴본 적 있나요? 앞으로는 불쾌한 감정을 바로 표현하기보다는,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려고요.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길러온 고등 능력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남긴 북토크 후기가 어떠셨나요?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이라고 생기셨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언젠가 어떤 북토크에서 우리도 마주할 수 있다면, 그날이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