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돌아가는 글쓰기
지금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떤 부끄러움에 관한 고백입니다. 수능이 끝난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용돈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민들레영토>라는 카페를 아실까요? 2000년대 초반에 대학생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었습니다. 웨이터 차림의 남자 알바생, 알프스의 소녀를 연상케 하는 여자 알바생의 패션이 인상적이었고, 시급도 높았습니다. 저도 빨간 체크 원피스를 입는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면접을 통과한 뒤 저는 카운터에서 전화 예약을 받고, 손님을 빈 테이블로 안내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세미나실’이라는 공간도 있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스터디카페 같은 형태였습니다. 3시간씩 예약해 토익 공부를 함께 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혼자 세미나실 예약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사고가 터졌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두 팀을 동시에 예약해 버린 것입니다. 점장이 급히 수습해 두 번째로 예약된 팀에게 양해를 구하고, 걸어서 5분 거리의 분점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분점에는 식사 주문이 불가능했는데, 그 손님들은 공부하며 식사까지 주문하려 했던 겁니다. 결국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 선배 알바생들이 분점까지 배달했습니다. “알바하면서 배달까지 하는 건 처음이다”라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카운터를 비울 수만 있다면 사고를 친 제가 직접 배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사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근무할 때면 일 시작 전 식사를 하고, 중간 쉬는 시간에는 간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간식 공간은 1층 가장 안쪽이었고, 그곳에는 판매용 곰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곰 인형이 너무 귀여워서 갖고 싶었지만 하나를 사려면 10시간 넘게 일해야 할 만큼 비쌌습니다. 어느 날 컵라면을 먹고 정리하려던 순간이었습니다. 국물만 남은 컵라면 3개를 쟁반에 얹은 채 동시에 무언가를 꺼내려다 중심을 잃었고, 인형 머리 위로 국물을 모두 쏟아버렸습니다. 그 뒤로 저는 이름을 잃었습니다. 대신 ‘죄인’이라 불렸습니다. 제 잘못을 알았기에 별명을 부르는 사람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알바비에서 인형값을 제하지 않은 점장이 오히려 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짤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제 실수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큰 민폐였습니다. 전무후무한 ‘최악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스스로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다시는 마음만 앞섰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확실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살면서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아지고자 노력합니다. 한 번 했던 실수는 다시 하지 않으려 합니다. 타고난 일머리가 없다고 느끼기에, 저는 늘 타인을 관찰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묻게 됩니다.
“이런 걸 언제부터 알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누구한테 배웠어요?”
요즘의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수첩부터 꺼냅니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적고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그리고 효율적인 동선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