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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Dec 12. 2018

슬픔을 밟고 다시 시작할 용기

나의 슬픔


 
발레리나, 모델, 탤런트, 작가.
유치원 때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누가 알게 되면 나를 비웃을까 내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장래희망의 순서다. 공통점을 찾는다면, 과연 밥벌이가 가능할지 확신이 없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현실의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버틸 여유가 없었다. 꿈이라는 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할 수 있는 사람만이 꿀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전문대 졸업 전, 21살의 가을부터 직장인이 되었다. 첫 직장에서 맡은 업무는 사무직으로 단순했다. 반복되는 일을 분명하게 처리하지도 못하면서 금세 지겨워졌다. 통장에 잔고가 좀 쌓이자 마음이 흔들렸다. 퇴사를 하고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했지만 잠시 방황으로 끝나고 나는 다시 월급쟁이가 되고자 채용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보통은 2년 미만의 경력은 있으나 마나 한 시간으로 여겼다. 24살의 나이만 많은 신입이었고 업무와 관련된 스펙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좁았다. 통장의 잔고를 보며 마음은 급했다. 그 사이 기업들은 근로파견제도*를 최대한 활용하여 인건비를 줄이고 있었다. 여러 면에서 첫 직장보다 다운그레이드 된 회사에서만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회사를 다니려 하는데 정규직이 아닌 파견직만 면접에 합격했다. 2년 뒤면 다시 백수가 되는 상황이었다. 끝이 뻔히 보였지만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병원에서 서비스직으로 일을 하게 되니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그때 의국에서 일하는 비서를 보니 단정한 모습으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가 너무 부러웠다. 부러워하는 그 순간에도 내 머리는 흐트러져있고 얼굴엔 땀이 번져 있었다. 나도 근무환경이 쾌적해 보이는 비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면 뭐든 좋을 것 같았다.

25살의 가을. 나는 처음으로 비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비서가 되어보니 대상(환자에서 상사로)만 바뀌었지 여전히 서비스직 같았다. 비서는 센스가 있어야 했고 상사의 취향을 잘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상사의 말 속 의중을 읽는 능력이 필요했다. 세 가지가 다 같은가? 센스는 어디 가면 배울 수 있는 건지. 상사의 눈치를 살피고 업무를 주저하며 실수도 많이 했다. 그런 나를 상사는 답답해했다. 1년의 근로계약 후 다시 1년 연장 계약. 총 2년을 파견직으로 일하고 나니 이제서야 비서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통장에 퇴직금이 입금되었다. 정부에서는 근로자를 위해 파견직으로 2년 이상 근무하게 되면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기업에서는 2년이 지나면 근로자를 해고했다. 예정된 미래를 대비하지 못했다. 아니 한다고 했는데 충분하지 않았는지 승무원 시험에서 불합격했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고 했던가.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이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는 파견직으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몇 군데 중소기업을 다녀보니 또 마음이 바뀌었다. 파견직으로 일하던 회사에서는 정규직과의 차별은 있었지만 적어도 나에게 “야”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지는 않았다. 정규직이지만 급여는 더 작았고 복리후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마음 편히 화장실을 갈 수 없었다.
 
결국 29살의 봄, 다시 대기업 파견직 비서가 되었다. 그 사이 내 마음의 그릇도 업무능력도 성장되었는지 일을 즐기며 할 수 있었고 상사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해야 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하고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업무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려 애썼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점점 중요한 일도 나에게 맡겨질 거라 기대했다. 진심은 통하는 걸까 내가 모시고 있는 상사와 손발이 척척  맞았고 심지어 상사의 상사(CFO)와도 호흡이 맞았다. 그 때문인지 2년 계약만료가 되었지만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2년이 지났으니 정규직이 되었냐고?

대답은 아니오. 회사에서는 다 방법이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하는 일도 같지만 소속만 기존 회사의 지주회사*로 변경되었다. 지주회사는 계약만료가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줬다. 소속도 바뀌고 업무분장을 새롭게 하면서 비서일 외에 세무업무도 맞게 되었다. 매달 10일이면 임직원의 소득세와 주민세를 국세청에 신고하는 일이었다. 모든 직원의 급여를 알 수 있는 대외비 업무를 맡게 되며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면서 좀 더 자신감 있게 정규직 비서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곧 그들과 막역해졌다.

친해진 비서들과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업무 외 시간에도 사적인 만남을 가질 정도로 친해졌지만, 문득 내가 받지 못하는 복리후생의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말이 없어졌다.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우리는 연봉이 다르고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다른지 나만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관심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늘 정규직 비서들은 나보다 운 좋게 일찍 들어와서 정규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경로를 알게 되었다. 회사가 전문대에 공문을 보내 각 과의 수석과 차석에게만 입사지원서를 받았다고 했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다니고 있던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정규직 직원이 될 수 있었던 거다. 내가 대학 때 지금의 회사의 채용공고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학과에서 적당히 상위의 성적만 유지했던 나는 입사지원서를 낼 수도 없었다.

다시 2년의 시간이 지났고 정규직 전환이 아니면 퇴사를 앞둔 시점에서 CFO가 나를 임원실로 호출했다. 내가 계속 일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바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규직이 아닌 비서 중에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고 가장 높은 인센티브를 받았다. 정규직으로의 전환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이 인사발령에서 사장(CEO)이 교체되었다. 새로 부임한 사장은 이제 더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서는 없다고 하며 사장의 새로 들어온 세컨드 비서는 정규직 전환의 예외를 두었다.

인사팀에서는 나의 소속을 자회사로 한 번 더 변경해서 2년 동안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대신 서울이 아닌 판교로 근무지를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고민 끝에 나는 결국 퇴사하게 되었다.
 
왜 이번에도 나는 같은 실수를 했을까? 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4년 동안 인정받기 위한 나의 노력이 아까웠고 상사가 계속 일하게 해준다는 모호한 시그널을 정규직 전환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업계 최고 대우의 직장에서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것을 가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직장에서 다시 적응하는 노력이 싫었던 것이다.

아직도 생각한다. 세무업무를 인수하게 되었을 때 내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정규직이 되거나 회사에서 잘리거나 둘 중에 하나였겠지. 차라리 그때 잘렸다면 더 빨리 노선을 변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잘리면서까지 버티는 나를 겪어본 회사가 나의 후임에게는 나보다 좋은 대우를 하거나,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나의 좋지 않은 선례로 인해 나의 후임자의 미래까지 어둡게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전임자도 그렇게 했는데 후임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을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불만만 품고 어떤 항의도 없이 착실한 을로 지냈던 내가 싫다. 슬프다.

내 앞에 있던 갈림길에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조직의 일원이 되는 선택 말고 확실한 건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어야 했다.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 보려 한다. 이번에는 적당히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가고자 하는 방향을 생각하며 걸어가야겠다. 그 길 끝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13년 봄.

비정규직원 중 처음으로 싱가폴/빈탄

4박5일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근로파견제도 : 근로자는 파견회사에 고용되어 있으면서 실제 업무는 사용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아 수행한다. 총 파견(일할 수 있는)의 기간은 2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지주회사 :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여 그 회사를 지배하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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