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Dec 15. 2019

좋으면 그냥 좋아해

엄마가 뭔가 보태려 하지 않을게


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면 카시트에 앉은 딸은 궁금한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다. 낮에는 창 밖으로 새, 강아지, 고양이를 찾기 바쁘고 해가 저물면 달을 찾는 재미에 빠졌다. 동물과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 기쁨을 엄마, 아빠와 나누고 싶어 한다. 반가운 목소리로 저기 달을 보라고 외치는 딸. 그런 딸을 볼 때면 내가 얼마나 무감각해졌는지 느낀다. 딸 덕분에 예쁜 달을 나도 모처럼 오랫동안 바라본다. 넋을 놓고 달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딸이 묻는다. 왜 달이 나를 따라오냐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달이 딸을 좋아해서 따라오는 거라고 짧게 대답한다. 그러면 딸도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고 자기도 달이 좋다고 고백한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딸은 문득 우주선을 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고작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말뿐이 못 하는 엄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또 우주선을 타고 싶다는 딸에게 아주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이 우주선도 타고 싶고 달도 좋아하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밥도 반찬도 골고루 먹어 몸을 튼튼하게 해서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면 어떻겠냐고 딸에게 묻는다. 엄마의 의도와는 상관없어 딸은 순진하게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의 특징인지 했던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곤 하는데, 며칠이 지나 또 우주선이 타고 싶다는 딸에게 이번에도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선을 타고 달을 보러 가면 되겠다고 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밥도 많이 먹고 반찬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 다르게 우주비행사 되기 싫다며 우주선 운전은 다른 분이 하고 자기는 그냥 우주선을 타고 가기만 하겠다고 하는 딸. 그새 엄마의 검은 속내를 알아차리기나 한 걸까? 더 이상 우주선을 타고 싶다는 너의 순수한 마음에 엄마의 현실적인 바람을 보탤 수 없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싱글인 친구가 나에게 딸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돌잡이를 할 때는 딸이 판사봉을 잡고 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가 또 어느 때는 딸이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바람들로 딸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무언가를 바라기보다 딸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가 키워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보다 넘치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최대한 딸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우주선을 태워주는 건 무리다. 딸아.



2019년 12월 8일, 생후 1104일, 36개월 8일


작가의 이전글 관계의 취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